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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5 23:31 (목)
첫번째 시도가 불발되자 플랜 B가 가동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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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시도가 불발되자 플랜 B가 가동됐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07.20 1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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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문에 손을 짚고 밀었다. 그러나 허사였다. 힘을 더하기 위해 손 대신 등을 이용해도 마찬가지였고 셋이서 함께 그래 보아도 미동도 없었다.

미는 것은 등이었으나 앞쪽에 있는 심장은 박동수를 더해갔고 대원들은 다급했다. 작전의 성공 여부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길어지면 승산이 없다. 게릴라전에 능숙한 그들은 이것은 말이 아닌 몸으로 알고 있기에 뛰는 심장을 억제하기 힘들었다.

다행히 주변은 아직 밝아오지 않았다. 움직이는 물체도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무언가 시도하기에는 아주 늦지는 않았다.

완고한 자물쇠의 벽에 막힌 대원들은 서두르는 마음을 억누르면서 플랜 비를 머릿속에 그렸다.

문 만 열렸더라면 작전은 완수됐을 거라는 가정은 의미가 없었으나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이곳까지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순조롭게 당도한 때문이었다.

적들과 마찬가지로 대원들도 강을 건너고 휴전선을 넘었다.

건너는 쪽이 남쪽이었고 북쪽인 것만 달랐다. 그들이 누구와도 부딛치지 않고 서울 앞마당까지 왔던 것처럼 대원들도 누구의 눈에 띄지 않고 평양에 도달했다.

들을 건너고 산에 숨고 어떤 때는 길을 잃어 마을로 접어들기도 했다. 직접 말까지는 아니어도 얼굴이나 그 얼굴에서 나오는 냄새를 맡을 정도로 밀 접촉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서로 웃고 지나쳤을 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저항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웃는 얼굴 때문에 나오던 냄새의 주인은 더는 좋든 싫든 입안에 있던 것을 밖으로 뱉지 못하고 못하고 그것 때문에 산자가 아닌 죽은 자로 누군가에게 기억될 것이었다.

끼니는 훔쳐 먹지 않았다. 보급품이 충분했기도 했고 때는 가을이라 추수 전의 먹거리를 표나지 않게 확보하는데 별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너무 조용히 지나치자 일부는 긴장의 끈을 조금 늦추기도 했고 또 일부는 아쉬운 듯 무언가를 해치면서 지나치지 않은 것을 전투력 손실의 하나로 보기도 했다.

실력 발휘를 할 욕망이 대원들 사이에서 발작적으로 피어났으나 그러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그랬더라면 침투의 흔적은 발각되고 쫓기는 신세가 된 그들의 진군은 더뎠고 일부는 목표물에 도달하기도 전에 그야말로 전투력 손실을 봤을지도 몰랐다.

대장은 잠시 쉬는 틈을 타서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깃발도 보였고 수령의 큰 얼굴도 있었고 익히 보던 구호 같은 것도 있었다.

그러나 구호가 걸린 건물의 높이나 뚜렷한 붉은 색의 흔적이 지워진 것은 텔레비전에서 보던 것과는 달랐다. 대장은 그런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도달한 곳이 애초 정한 목표지점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대원들은 그런 것까지 확인해 보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목표물을 파괴하고 정해진 타격에 총격을 가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런데 그 만족의 시간이 늦춰지고 있었다. 그들은 애초 정한 시간보다 늦어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다. 운동선수가 대회 날에 맞춰 컨디션을 최대로 끌어 올리듯이 그들은 침투 전에 목에 차도록 적의를 불태웠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면 먹이를 눈앞에 두고도 먹지 못하는 사나운 짐승과 같은 꼴이 되고 만다. 눈은 이글거리고 입에서는 소화되기 위해 거품이 나오지만 이빨이 씹지 못하는 형국과 같은 것이다.

대장은 결정을 내려야 했으나 또한번 주저하면서 3일에 걸쳐 여기까지 온 과정을 되짚었다. 빠르면 빨랐지 북의 침투조보다 늦지는 않았다.

비슷하다면 인정할 것이나 지체됐다는 표현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반대 의견을 내리라고 마음 먹었다. 이것은 자신은 희생하더라도 부하들은 살리겠다는 대장의 숭고한 마음에서 나온 발로였다.

누구의 저항도 받지 않고 심지어 바람조차도 역풍이 아닌 순풍을 타고 온 것은 잘해서이기도 했지만 신의 뜻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모든 것은 신의 뜻에 달렸다, 대장은 이번 작전도 반드시 성공할 것 같은 예감에 몸을 떨었다. 먼저 왔던 북의 그들과 우리는 달라야 했다.

비참한 최후가 아닌 영웅적 칭호를 받아 마땅했다. 대장이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주먹을 쥐자 대원들도 따라서 주먹을 거머 쥐었다. 결심이 섰다는 표현이었다.

비록 상부의 작전 명령 없이 단독으로 실시한 망나니 원이었지만 성공하면 모든 것은 용서될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다.

그것은 곧 죽음이었고 죽음 이후를 상상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시간은 지나가고 있었다. 손목에 찬 시계 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각자 세고 있는 마음속의 시계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앞으로 진군하고 있었다.

시간이 가고 있다는 것은 작전이 실패로 끝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낮이 밝으면 광장에 사람들이 모일 것이고 지난 밤 허투루 섰던 근무조는 아침 조로 바뀌면서 폭파의 흔적을 찾을 것이다.

처음 마주친 그들 가운데 하나가 누구냐고 물을 것이고 그러면 대원들은 뭐라고 대답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비가 없었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상황에 처한 대원들은 당시에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대답을 하지 못할 것이고 대답을 하지 못하면 수상한 자로 몰릴 것이 뻔했다.

그들처럼 수령의 목을 따러 왔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말이란 그 사람의 인격이며 품행의 결정체다. 그런 천박한 말을 쓰고 싶지 않았다. 최후의 순간이라면 적어도 조국 통일을 위해 왔다는 정도가 어울릴 것이다.

대장은 다른 방법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기둥에 등을 뗀 대원들은 급히 계단 아래로 모여 들였다. 오라고 손짓 했기 때문이다.

가까운 거리에 있을 때는 호각을 불거나 돌격 앞으로 같은 구호를 외치는 대신 손짓으로 하던 평소 훈련을 따른 결과였다.

그들의 대장의 지시라기보다는 본능에 가까운 행동으로 몸을 날렸다. 그들이 도착하자 남아 있던 대원들은 동시에 눈을 한 번 껌뻑 감았다 뜨는 눈짓을 보였다.

플랜 B의 돌입이었다. 이런 때를 대비한 훈련은 적절했다. 그들은 모두 머릿속으로 다음 동작을 위해 몸을 움직이려고 근육을 세웠다. 아직 써먹지 않은 것을 포함하면 두 개나 더 남았으나 이것이 실패하면 다른 것은 의미가 없었다.

그들은 거칠게 내려왔던 계단을 신속히 올라가 밀었던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세 명의 대원들의 모습을 기둥 아래서 지켜보고 있던 나머지 대원들은 그들이 매우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감탄했다.

자신도 그 일원이었다면 남은 대원의 이런 칭찬을 받을 만큼 훈련인지 실전인지 구분이 안 될 앞선 대원들의 행동은 그야말로 민첩했다.

빠르면서도 일사불란한 움직임은 여명조차도 간파하지 못하고 수수방관하고 있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어제와 같은 오늘이 펼쳐 지고 있었다.

계단 아래의 대장은 생각보다 적의 방어가 매우 허술하다고 생각했고 주변에 모여 있던 나머지 대원들의 생각도 비슷했다.

허술한 적의 대비에 대한 플랜은 없었다. 전혀 그것은 대비의 과정에서 언급되지 않았다. 만약 지금과 같은 상황을 기대했다면 지금과는 다른 대책이 분명히 나왔을 것이다.

대장은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무모했지만 다른 방법보다 효과적이라는데는 이견이 없었다. 대원들이 달려나간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다이너마이트를 기둥 사이에 설치하고 계단 아래로 날 듯이 뛰어왔다. 비호가 옆에서 그 모습을 봤다면 나와 같은 녀석들이 배고 고픈지 새벽부터 날뛰고 있는 꼴을 아니꼽게 지켜봤을 것이다.

대원들이 앞을 보고 달려 나올 때 그들 뒤로 전선 줄이 길게 꼬리를 물었다. 휴지 하나 없는 깨끗한 문의 입구는 이물질로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 지그재그라기보다는 일직선으로 검은 줄이 길게 퍼져 뱀의 모양과는 달랐다.

전방은 주시하던 대장은 눈길을 아래로 돌려 손에 차고 있던 시계에 고정했다. 그리고 10을 거꾸로 세기 시작하더니 3에 오자 고개를 들고 눌러, 하고 말했다.

거침없고 단호한 목소리에 응답하기라도 하듯이 거침없이 단호한 폭발음 소리가 새벽 공기 속에 깊이 파고들었다. 나보다 일찍 일어난 무엇이 소란을 피우는지 궁금했던 광장의 비둘기 몇 마리가 화들짝 놀라 땅에서 지붕 위로 급히 올라갔다.

그걸 신호라고 파악한 듯이 대원들은 화염이 채 가시지 않은 대문을 향해 일시에 달려들었다. 열린 문을 통해 안으로 달려 들어가 닥치는 대로 총을 쏘려던 계획은 그러나 다시 뒤로 미뤄졌다.

작전이 미뤄진 것처럼 돌진의 상황도 바로 오지 않았다. 문은 상처를 입고 깨졌으나 사람 하나 들어갈 공간은 나오지 않았다.

문에 부딪쳤던 대원 하나가 어깨에 손을 대고 부딪칠 때의 충격으로 아프다는 시늉을 하면서 다른 대원들과 함께 대장이 있는 계단 아래로 뛰어왔다.

그들은 등으로 문을 밀 때와는 달리 약간 긴장하고 있었다. 눈빛이 흔들렸다. 돌발상황에서는 누구나 그러지 마련이다. 그래서 훈련이라는 것이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 훈련 미진을 탓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강한 훈련이라 하더라도 머릿속에 없었던 작전이 두 번이나 실패하면 누구나 당황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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