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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3 15:38 (화)
손을 내밀었으므로 쥐고 있던 것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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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내밀었으므로 쥐고 있던 것을 주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06.13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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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안은 어제처럼 혼잡했다. 어디론가 가는 사람들로 가득해 서로 몸을 부딛쳤다. 그의 죽음을 모르고 있기나 한 것처럼 어제처럼 오늘도 하던 일을 계속하기 위해 그들은 버스에 올라탔다.

민구는 그것이 이상했다. 어른 들은 도대체 생각이라는 것이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창밖의 풍경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걷는 사람들로 좁은 인도는 분주했다. 절대자가 죽었는데 사람들은 왜 버스를 타고 왜 걷는지 이래도 되는 것인지, 누구에겐가 물어야 했다.

답답한 가슴은 내내 이어졌다. 잘못 먹은 것을 억지로 소화해 내려는 위장처럼 속이 뒤틀렸다. 그가 누구인가, 먹은 것을 토해내서 되새기는 소처럼 민구는 그를 위로 들어 올려 생각했다.

모든 것은 그로부터 출발했고 그에게서 끝났다. 그런데 그는 더는 라디오 뉴스에서도 들을 수 없고 텔레비전에서도 볼 수 없게 됐다. 카랑카랑하고 때로는 엄숙하고 경고하는 듯한 목소리가 없는데 이 나라라는 것은 서 있을 수 없었다.

작지만 다부진 체격과 단정한 모습은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는데 숨을 쉬고 밥을 먹을 수 없었다. 살아있는 절대자를 볼 수 없다는 것은 그가 명령해야만 수행해야 할 수 있는 일들이 멈춰서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버스를 타고 이 많은 사람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내가 가는 길의 목적지는 확실했다. 차가 청량리 로타리를 돌았을 때 한 무더기의 학생들이 올라탔다. 그들은 아는 사이였는지 평소처럼 왁자지껄했다.

교복과 교모가 나와 같은 모양이었다. 민구는 후크가 제대로 채워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손으로 목을 잡았다. 이럴 때일수록 복장을 단정히 해야 했다. 본능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은 그렇게 해야 했다.

버스에서 내릴 때는 차표를 내야 할지 잠시 망설였으나 안내양이 손을 내밀었으므로 손에 쥐고 있던 것을 주고 말았다.

버스가 떠났을 때 민구는 학교까지는 한 정거장을 더 가야 했다는 것을 알았다.

절대자 생각에 다른 학교 학생들이 내릴 때 덩달아 내린 것이다. 이러다 늦는 것은 아닐까 아차 싶어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그러다가 다시 절대자가 죽었는데 지각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아주 하찮은 것으로 여겨졌다.

교문 앞에서 선도대에 잡혀 운동장을 돌아도 창피할 것이 없었다. 담임 선생이 떡두꺼비 같은 손으로 따귀를 올려 쳐도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이 서두르고 있는 것을 알았을 때 민구 역시 발걸음을 빨리할 수밖에 없었다.

골목길에서 느꼈던 무거운 공기 같은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가게 문을 열고 있는 꽃집 아줌마의 분주한 손길도 유리창에 보이는 거대한 뱀의 형상도 모락모락 피어나는 만두가게의 커다란 솥단지도 빠르게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저런 것은 하굣길에 걸어오면서 천천히 구경하면 될 것이다. 다행히 지각은 없었다. 민구가 안도하면서 자리에 앉았을 때 아이들도 절대자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을 서로에게 확인하기 위해 그가 죽었다는 말을 뉴스처럼 되풀이 했다.

그들은 죽은 자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가 죽었다고 말했다. 어떤 아이는 이름 뒤에 붙는 호칭을 빠트리지 않았으나 어떤 애는 그냥 이름만 불어댔다. 그래도 되는것인지 민구는 걱정이 앞섰다.

경찰서로 끌려가 수갑을 차고 감옥에 갇혀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 죄는 너무 커서 적어도 10년 이상은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절대자가 죽은 것을 호떡 집에 불난 것처럼 떠들어 댔다.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형이 있다면 속 시원히 답해 줄 수 있을까. 생각은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떤 행동을 하고 앞으로 벌어질 일이 어떤 것인지 말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대학에 다니던 형은 군대에 갔다. 철원이라고 했고 그곳은 전방이라고 했다. 소리를 지르면 괴뢰군이 대답할 정도로 가까운 곳인데 서로 총을 쏘기보다는 노려만 본다는 것이었다.

휴가를 나온 형은 이 말이 사실인지 묻는 내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민구가 물었다고 해도 절대자의 죽음에 대해 궁금한 것을 풀어줄 수 없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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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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