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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 나가면 나는 자연인”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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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 나가면 나는 자연인” 이다
  • 의약뉴스
  • 승인 2006.0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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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신경정신의학회 장환일 회장
의사 중에서도 특히나 신경정신과 의사는 드라마나 소설의 주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인간 정신을 치료하는 직업이다보니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또 자신이 혹시 갖고 있을 수도 있는 문제를 얘기해 줄 수 있지 않겠나 하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상은 복잡다단하다. 경희대학병원 신경정신과 교수이자 대한신경정신의학회를 이끌고 있는 장환일( 張煥一, 64 ) 회장은 할 말이 많은 것 같았다.

“정신 분석이나 치료는 서구에서 백년 넘게 쌓아온 임상 경험과 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것입니다.”

장회장은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한방의료의 정신요법 인정에 비판적이다. 한의학의 정신 치료가 세분화된 접근이 아닌 통합적 치료라는 점에서 전문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또 인성 검사, 치매 검사 등 양방의 심리 검사를 차용하는 것도 한의학의 정체성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본다. 여기에 신경정신의학 분야의 열악한 처지가 겹쳐 학회 차원의 노력이 필요한 실정이다.

“우선 눈에 보이지도 않는 병에 대한 정신치료라는 것에 선입견을 가지고 있어요. 수술과 내과 검사 등이 없으니 수가가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고요. 종합 병원은 좀 낫지만 개인병원은 건강보험공단에서 재정부담 때문에 고가약 처방을 제한하고 있어요. 그러면 잘 듣는 약을 써서 소신 진료를 할 가능성이 떨어집니다.”

이렇게, 솔직하게 말해서 돈도 안 되는 분야에 투신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

“신경정신과를 선택하는 데에는 개인적인 취향이 맞아야 합니다. 인간의 정신적인 문제, 대인 관계 등에 관심이 많았지요.”

의대생들이 타 과에 비해 수가가 낮은 현실을 모르기 때문에 신경정신과를 전공으로 선택한다고 하며 잠깐 웃었다. 그는 그 순수한 학문적 열정을 잘 알고 있다.

학창시절에 책을 즐겨 읽었다. 고교 시절 부친이 지방 근무를 가게 되자 보문동에서 하숙을 했다. 그 때 근처 대여 책방에서 책을 빌려보는 것이 낙이었다. 이 시절에 읽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 지금도 인상이 깊은 소설이다.

“인간의 갈등과 내면 세계의 변화가 잘 표현되어 있어요.”

어쩌면 청소면 시절 이 심리 소설을 좋아했을 때 진로가 정해진지도 몰랐다.

“문학뿐만 아니라, 민속학과 심리학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인간에 대한 흥미랄까요. 신경정신과를 전공하겠다고 하자 주변 사람들이 혹시 정신이 어떻게 이상해지는 것은 아니냐고 했지만 이 분야가 취향에 맞았어요.”

그의 학문적 관심 영역은 동아시아로 확대되어 20여 년 전부터 한국, 일본, 대만 3국의 학자들이 모며 문화정신의학 심포지엄에 참가하고 있다. 2년에 한 차례씩 열리고 지금까지 총 열 차례가 진행되었다.

“거기서 나오는 주제들은 우울증, 사회 공포증, 가정내 폭력 등인데 지역과 문화권에 따라 사람들이 겪는 증상이나 영향도가 달라져요.”

그를 주로 찾는 중년기 우울증 환자들은 두통이나 복통같은 신체적인 증상을 호소하며 찾아온다.

“내과, 외과에 갔다가 진료와 검사 다 받고도 아무 이상이 없거든요. 그게 마음의 병인지 알고 그제서야 신경정신과로 찾아옵니다. 미국같은 나라만 해도 상담기관과 시설이 잘 되어있어서 미리 발견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 점에서 미흡해요.”

진료할 때, 내가 생각하는 것이 다 옳다는 아집을 버리고 환자를 ‘공감적 이해(empathic understanding)'를 하려는 노력을 중시한다. 신경정신학입문서의 첫장에 나오는 이런 자세를 소홀히 하고 선입관과 자신이 신봉하는 이론의 틀에 환자를 끼워 맞추는 젊은 의사들의 방식은 고쳐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장회장은 진료실과 연구실을 나가 집에 돌아가거나 친구들을 만나면 흰 가운을 벗듯이 진료실의 자신을 잊어버린다. 그래도 인간의 정신과 심리를 치료하는 전문가인 만큼 가족들이나 친구를 대할 때 상대방의 반응이나 심리 상태에 따라 직업의식이 발휘되지는 않을까.

“이름난 요리사가 집에 오면 가족들에게 그 요리 해주고 싶지 않듯이, 오히려 라면을 끓여먹고 싶듯이 저는 진료실을 나가면 개인적인 존재로서의 자연인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그는 적어도 자신에게는 전문가의 소질이 발휘하고 있는 듯 했다. 가족 및 지인과 있을 때는 진료실과 연구실의 의사라는 역할 가면을 벗어버려야 정신 건강에 좋다는 것은 오랜 진리이기 때문이다. 특히 ‘자연인’이 못돼서 마음의 병이 난 사람을 상대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아내와 댄스 스포츠를 추는 것이 취미다. 8년 가까이 친구들과 그룹을 만들어 일주일에 두 번씩 춘다. 탱고, 라틴 댄스, 룸바 등 12개의 춤이 있다. 60대 중반에 가까운 나이지만 정력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던 듯하다.

“제가 주례설 때 꼭 말하듯이 신의와 의리가 참 중요합니다. 친구와 선후배 관계, 부부와 부자지간에도 이 가치를 지키면 평화로워집니다.”

이러한 신조를 믿음과 그에 바탕한 굳건한 인간 관계가 우울증과 정신적인 불안을 겪고 있는 현대인에게 정신적 버팀목이 된다는 뜻으로 해석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의약뉴스 김유석 기자 (kys@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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