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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해서 들면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 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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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해서 들면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 말랐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3.03 1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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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할머니의 죽음에 대한 특별한 기억은 없다. 집안의 분위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럴 나이가 아니었다. 설사 그런 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상여 행렬을 따라갔고 마당에서 도끼로 돼지를 잡은 것만은 생생하게 살아 있다. 마당에 흥건했던 돼지 피는 오랫동안 그대로 있었다. 비가 몇 번 오고 나서야 핏빛 색깔은 원래 흙색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학교에 들어갔다. 초등학교는 집에서 4 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다. 먼 거리 일수도 있지만 다니면서 멀다고 투덜 대지는 않았다. 학교 근처에 사는 애들을 부러워하지도 않았다.

그들이 지각하지 않는 것처럼 나도 지각이라는 것을 해보지 않았다. 부지런했다기보다는 딱히 집에서 할 일이 없었기에 일어나서 밥을 먹으면 바로 학교로 향했다. 형들이나 친구와 같이 다닐 때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혼자였는데 그때가 나는 좋았다.

이것저것 구경하면서 다녔다. 같이 떠들다 보면 주위 보다는 이야기에 더 집중하기 마련이어서 같이 있을 때는 보지 못했던 것을 혼자 일 때 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 시절 소똥구리에 대한 추억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길가에는 사방에 소똥이 널려 있었다. 소를 키우는 사람들이 걷기 좋은 등굣길을 이용했고 소들은 그런 길 위에 쟁반만 한 똥을 싸질렀다.

똥 누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가다 소가 멈추면 필시 오줌이나 똥을 쌌다. 주인은 학생들이 오면 비키라고 고삐를 잡아채는 수도 있었으나 대개는 그대로 두었다.

소가 똥을 누는 모습은 사람과는 아주 달랐다. 그들은 앉지 않고 서서 그대로 용변을 보았다. 오줌과는 달리 똥은 떨어질 때 아주 큰 소리를 냈다. 물론 오줌도 물 내려가는 소리를 분명히 인식할 정도로 컸으나 똥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똥이 땅에 떨어질 때 나는 소리는 한 대 얻어맞을 때 나는 소리와 흡사했다. 퍽 퍽 퍽 연달아 맞으면 입술에서 피가 터졌다. 그러나 똥은 피 대신 얼큰한 냄새를 선사했다.

퍽 소리가 나면서 똥은 퍼지지 않고 한군데로 모였다. 가면서 똥을 싸기도 했다. 똥 싸는데는 소가 명수라는 생각을 한 기억은 없지만 소는 똥을 아주 쉽게 쌌다. 걸어가면서 싸는 똥은을 소는 밟지 않았다. 한번쯤 밟을 만도 한데 영락없이 피했다. 소도 자기가 싼 똥을 밟는 것이 별로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나 보다.

싼 똥은 쉽게 굳기도 했고 오래 가기도 했다. 등굣길에 쌌던 똥은 하굣길에 바짝 마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손으로 잡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조심해서 들면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 말랐다.

똥을 손으로 잡는 것은 그것이 좋아서라기보다는 그것을 들었을 때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막대기나 자치기 대 등으로 쑤셔 볼 수도 있었지만 나는 손으로 그것을 들어 올리는 것이 좋았다.

들었을 때 묵직한 것에 대한 기분과 따라 올라오는 그 무엇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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