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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숙이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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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숙이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1.28 1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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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름은 잘 익었다. 척 봐도 지금 먹어야 한다. 마침이라는 표현처럼 어울리는 말이 지금 순간 있을까 싶다.

막 도착한 나무 아래, 큰 나무를 타고 올라간 으름 줄기 사이 사이로 벌어진 열매가 어서 와서 따 달라고 손을 내밀고 있었다.

갈색을 사이에 두고 흰 열매가 검은 씨를 주근깨처럼 박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마의 땀을 소매로 닦을 새도 없었다. 달려오느라고 뛰던 심장을 멈출 새도 없었다.

황홀했다. 그 장면은 밤하늘의 별과 같은 것이었다. 언젠가 내가 말을 한 적이 있던가. 새벽녘 친구 집에서 잠을 자다 깨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마도 정월 초하루 근방이었을 것이다. 오줌을 누고 하늘을 쳐본 순간 믿을 수 없는 장면에 그만 넋을 잃었다. 밤하늘의 별이야 시골에서 자랐으니 늘 쌍 보던 것이었다.

새로울 것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날의 별은 그 전의 별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것은 별이 아니라 달이었고 해였으며 움직이는 행성이었다.

별이 얼마나 큰지 바로 머리 위에서 반짝거렸다. 팔짝 뛰기라고 하면 닿을 것 같아 머리를 조금 움츠렸던 기억도 있다. 그만큼 선명했다.

크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주변이 온통 광채를 띠었는데 그것은 붉기도 했고 노랗기도 했으며 파랗기도 했다. 뭐, 이런게 있지?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고 그때 더 큰 일이 벌어졌다.

만한 별이 저쪽에서 이쪽으로 대각선을 그리며 떨어지고 있었다. 행여 맞을세라 자치기 피하듯이 몸을 숙였고 그때 나는 풍경이라는 것, 자연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생각했다.

별이 떨어진 하늘에는 무수한 은하수가 빛났다. 지금은 시골에서도 은하수를 보기 어려운데 당시는 은하수가 사방천지에 널려 있었다. 특히 북극곰 주변에 솜사탕처럼 무더기로 몰려 있었다.

초등학교 3, 4학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는 바로 잤다. 그 풍경을 상상하기보다는 따뜻한 이불속에서 곤히 잤다. 그리고 그날의 일은 어린아이들이 으레 그렇듯이 쉽게 잊었다.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밤하늘의 별을 본 것이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었다. 다음날에는 어두워진 후 마당으로 나와 평나무 사이로 별을 관찰하지 않았다.

그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날 이후로 나는 별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나서 문득문득 그날 그 장면이 떠오른다.

고부라진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멍하니 서 있던 모습과 ( 나는 지금 그 위치를 정확히 집어낼 수 있다. 당시 그곳은 작은 언덕이었고 여름에 홍수가 나면 물이 그 위로 넘쳐흘러 양쪽으로 갈라졌다. 지금은 차가 다닐 만큼 넓게 정리됐다.)

고개를 숙이고 가던 길을 계속 갔던, 그래서 이웃집을 거쳤던 기억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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