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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0-07-03 17:03 (금)
324. 초록 물고기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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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 초록 물고기 (1997)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1.20 14: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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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팔로 난간을 잡고 고개를 앞으로 내민다. 그리고 가슴을 편다. 세상 사는 맛이 난다. 이런 기분 오래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객실로 들어오는 대신 버티기에 들어간다.

오래전에 사라진 비둘기호 기차를 타면 나는 그런 자세로 밖을 봤다. 이런 풍경이 칸칸이 이어진다. 그러다가 앞에서 쓰레기라도 버리면 뒷사람 얼굴에 맞기도 한다.

담배꽁초 대신 예쁜 장밋빛 스카프라면. 온종일 맞아도 아프기는커녕 그야말로 기분 째지지 않을까. 막동이 (한석규 )의 처음은 나쁘지 않았다.

더구나 오늘은 제대하는 날이 아니냐. 푸른 군복에 실려 갔던 젊음이 되돌아 왔다. 그런 들뜬 기분에 난간에 잡고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있다.

배운 것도 써먹을 기술도 돌아갈 학교도 없으나 지금은 세상이 아름답다. 피보다도 더 붉은 장밋빛 스카프가 막동의 얼굴을 덮고 있다. 숨쉬기가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는 애교다. 앞으로 전개될 파란만장한 생을 돌아보면. (나는 여기서 윤항기가 부른 ‘장밋빛 스카프’ 노래를 듣느라고 잠시 지체한다. 한때 십팔 번으로 삼을까 생각했으나 음정과 박자를 따라가지 못해 포기했다 .그 노래를 들으면서 막동이의 운명을 생각했다. 막동이의 현재와 과거를 생각했다. 스카프만 얼굴에 닿지 않았어도 그래서 분 냄새가 그의 코를 찌르지 않았더라면 막동이의 인생은 짧지 않고 길었을지도 모른다. 아,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를 되돌리기 위한 가정이란 얼마나 서글픈가.)

주인을 찾아줘야지, 순진한 막동이는 앞칸으로 이동하는데 그때 열차의 칸과 칸 사이에서 작은 소란이 벌어진다. 바로 스카프의 주인공 미애 ( 심해진 )가 봉변을 당하고 있다.막동이가 점잖게 참견한다. 군복까지 입었으니 없던 용기도 생길 터.

그는 그러지 말라고 건달들에게 훈계한다. 훈계를 받아들였더라면 막동이의 미래는 어찌 됐을까. 건달들은 그러는 대신 막동이를 죽사발 만든다.( 화장실에서 막동이는 피떡이 된 얼굴을 씻는다. 그리고 빨간 스카프로 얼굴을 닦는다. 화장실에서 그는 손가락을 자해하고 화장실에서 살인을 저지른다. 모든 것은 화장실에서 시작됐고 끝났다.)

일산의 어느 역에서 그들이 내린다. 건들거리면서 그들이 히히낙락이다. 뒤따라가는 막동이. 그의 손에는 제대할 때면 후배들이 챙겨 주는 크리스탈로 만든 일명 ‘방패’가 들려 있다.( 용산역 부근에서 흔히 제작됐다. 휴가 나온 후배가 귀대하면서 제대 말년 병장의 무공을 적은 상패를 만들었는데 그것을 방패라고 불렀다.)

그가 무리 중의 한 명을 골라 뒤통수를 갈긴다. ( 뒤에서 공격했다고 반칙이라고 시비 걸기 없기. 숫자도 적고 먼저 당한 것을 복수한다고 치면 그 정도는 봐줄 만하다. 절대로 ‘파울 플레이’ 아니다. )

막동과 미애의 첫 만남은 이렇게 막강하다. 결코 그들은 밤거리의 시시한 존재가 아니다. 막동의 의협심, 슬픈 몰골의 미애.

막동이 레온사인이 요란한 길 위에 서 있다. 휘황찬란한 간판들이 어서 들어오라고 유혹한다.

▲ 막동이는 보스 태곤의 애인 미애를 사랑한다. 그 사랑 애처롭다. 그래서 둘은 이뤄지 못한다. 일산의 어느 밤거리에서 막동과 미애가 서성인다.
▲ 막동이는 보스 태곤의 애인 미애를 사랑한다. 그 사랑 애처롭다. 그래서 둘은 이뤄지 못한다. 일산의 어느 밤거리에서 막동과 미애가 서성인다.

그는 뉴스 나이트클럽의 가수인 미애를 사랑한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미애에게는 검은 세계의 보스 배태곤 ( 문성근 )이 있기 때문이다.

막동은 태곤의 주선으로 지하 주차장 관리원으로 취직한다. 그러다 태곤의 수하가 된다. 순진하나 의리가 있어 맹목적 충성이 필요한 태곤이 그를 눈여겨봤다. 그리고 1년도 안 된 신참에게 형님이라 불러도 좋다고 허락한다.

판수 (송강호 )가 서열을 무시한 처사라고 반발한다.( 송강호의 거들먹거리는 몸짓과 말투는 양아치 세계의 표본으로 삼을 만큼 멋들어 졌다. 충성을 누구보다도 맹세했던 그는 나중에 배태곤을 배신한다. 자주 충성 약속하는 자, 그자가 바로 배신자다. )

시간이 지나면서 막동은 태곤의 절대적 신임을 받고 어느 날 특명이 떨어진다. 태곤은 으슥한 건물로 데려가 김구 선생님처럼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하고자 하는 꿈이 있는지 덧붙인다. 마치 친형처럼 다정하게. (태곤은 상대 패와는 달리 깡패 세계에서도 지켜야 할 금도가 있다고 강조한다. 마치 <대부>에서 말론 브란도가 마약에는 손대지 말자는 것처럼 해서는 안 되는 것을 은연중에 내비친다. 태곤의 철학과 인간미라고나 할까. 이것 때문에 막동이가 그에게 충성을 다했는지도 모른다. )

막동은 미리 준비한 칼로 태곤을 망신주고 이권을 빼앗는 자의 가슴에 칼을 깊숙이 찌르고 또 찌른다. 살인이다. 겨우 26살인 어린 나이에 그가 살인을 저질렀다. 아무리 죽어 없어져야 할 악의 무리라 해도 살인은 큰 사건이다. 막동이의 영혼이 흔들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막동이는 상상할 수 없는 큰돈을 거머쥐었다. (그런 장면은 나오지 않지만 정황 상 그렇다. 막동은 꿈을 묻는 보스에게 어머니 모시고 형제들끼리 작은 가게를 하면서 화목하게 사는 것이라고 대답한 바 있다.)

그즈음 막동은 앞서 말한 대로 태곤의 애인 미애를 사랑하고 있다. 순진한 그가 닳고 닳은 그녀에게 연정을 품고 있다. (보스의 애인과 관계를 맺은 자 중에서 살아남은 자를 나는 영화에서 본 적이 없다.)

그의 사랑은 그녀에 대한 육욕이 앞서서라기보다는 애처로움 혹은 연민의 정 같은 것이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태곤에게 학대를 당하고 술을 먹고 취하고 억지로 노래를 부르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남자로서 그녀가 불쌍하다고 생각했을 터.

어쨌든 그는 그녀에게 그런 감정이 있고 그녀 역시 그가 그녀에게 갖는 감정과 비스무리한 감정이 섞여 있다. 그러나 밤의 세계는 이런 남녀의 이상한 사랑으로 한가하게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태곤은 막동이로 인해 골칫거리를 제거했다. 재개발로 떼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막동은 그 공을 인정받아 이인자로 올라섰을까.

배포가 크고 약자를 보호하는 듯한 태곤의 평소 인품으로 보아 막동은 그런 대우를 받아도 문제가 없다. 그러나 검은 세력들에게 이런 생각은 순진하다.

겨울, 호흡하면 김이 서리는 어느 추운 날. 막동이가 태곤이 탄 차 앞에 엎어져 있다. 앞 유리에 김이 서린다.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다. 그가 피를 흘리고 있다. 미애가 울부짖는다. 잠깐 아주 잠깐 사이 서렸던 김이 사라지고 더는 서리지 않는다.

주인공이 죽었으니 영화도 끝났다. 그러나 조금 더 신을 이어가자. 이창동 감독은 친절하게도 막동이 가족의 행복한 가족 모습을 앤딩 언저리에 배치했다 .

막동이의 꿈은 이루어졌다. 가족들은 어머니를 모시고 새로 지은 집에서 토종닭집을 운영하고 있다. 아이들은 웃고 떠들고 마당 가득 행복이 넘친다. 그때 검은색 신형 그랜저 한 대가 들어오고 배가 부른 미애와 태곤이 차에서 내린다. 커다란 버드나무가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 집이 막동이의 집인 것을 안 미애는 울지만( 그 울음 진심일까, 아니면 가증스러운가.) 태곤은 예의 기품있는 태도로 언젠가 본 적이 있는 지금은 은퇴한 형사였던 막동이의 둘째 형을 보고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죠? 하고 능청스럽게 묻는다.

막동이의 죽음으로 가족은 행복을 찾았다. 형제의 자식들은 삼촌이 그랬던 것처럼 빨간 철교 아래 강가에 놀러 나가 초록물고기를 잡다가 신발을 잃어버려 한바탕 소동을, 여름이 오면 벌일 것이다.

국가 : 한국

감독 : 이창동

출연 : 한석규, 심혜진, 문성근

평점 :

: 막동이의 가족관계를 잠깐 언급해 보자. 늙으신 어머니가 있고 몸에 큰 장애가 있는 큰 형이 있고 ( 감독은 2002년 <오아시스 >에서 여자 주인공 문소리를 등장시켜 큰 형과 같은 중증 뇌성마미 장애인 역을 맡겼다.) 알코올 중독자이면서 경찰인 둘째 형, 트럭 행상을 하는 셋째 형이 있다. 여동생은 티켓 다방에 나간다.

불행한 가족의 전형은 아닐지라도 어딘지 모르게 그런 가족들과 비슷비슷해 보이지 않은가.

막동이가 쉽게 패거리에 끼어든 것은 돈을 벌어서 이런 가족이 모여서 행복하게 살아보고자 하는 욕망에서 발동됐다. ( 가족 행복은 장남보다는 막내에게 더 크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감독이 이걸 알고서 막동이를 막내로 배치하고 그런 역을 맡겼는지는 모르지만.)

그 욕망은 순수했으나 그 순수함을 간직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너무 많았다. 재개발로 당시 일산 부근은 크게 들썩였다. 한 몫 챙기려는 자들은 검은 세력과 결탁했고 이권이 있는 곳에 파리가 끼듯 태곤 일당이 모여들었다.

이창동 감독은 이 작품으로 일약 우리나라 대표 감독 중 한 명으로 올라섰다. 데뷔작으로 너무 잘 만들었다.

까칠한 영화광들도 이 영화에 대해서는 후한 평점을 준다. 배우들의 세련된 연기, 시나리오의 짜임새, 물 흐르듯 흘러가는 화면구성이 흠잡을 데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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