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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을 즐기는 것은 단련된 힘 때문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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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을 즐기는 것은 단련된 힘 때문에 가능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1.15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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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 상황에 대해서 미리 예단하는 것이다.

그와 유사한 경험을 과거에 많이 했거나 그 사람의 행태를 잘 알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안 봐도 비됴’라는 말은 그런 가운데서 유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큰 착각이다. 타인을 안다는 것은 넌센스다. 자기 자신도 알지 못하는데 독립된 인격체를 안다고 하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다.

부모와 자식 혹은 형제자매, 부부관계도 마찬가지다. 알 수 있는 것은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걸음마 단계의 수준에 해당된다고나 할까.

그러나 보지 않고 알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흔하지 않다. 이것은 오해를 불러오기에 필요 충분 조건이다.

아내가 미국에서 호스피스 병동 일을 하는 것은 눈에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녀가 직업과 구성원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그러나 이 역시 다 알지는 못한다. 영화의 제목처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의 일종인 것이다.

하지만 환자를 대하는 그녀의 행동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무엇이든 허투루 하는 일이 없고 꼼꼼하게 처리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고 그런 그녀의 습성은 타고난 것이며 오랫동안 습관으로 굳어져 있어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다.

한때는 그것이 답답해 고쳐보기 위해 잔소리를 숱하게 해봤다. 대충해도 되는 것에 너무 신경 쓴다고. 사소한 것은 무시해 버리라고.

그러나 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반찬 하나를 하더라도 얼마나 정성을 들이는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물론 맛있고 정갈하기는 했지만 들이는 정성이 너무 심해 그러지 말라고 했던 것이다.

맛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둔한 것도 한 원인이었다. 먹는 것에 그 정도 정성이 들어간 것을 먹을 자격이 없다는 생각도 들기도 했다.

어느 철학자의 말을 빌려 먹는 것이 얼마나 바보스러운가, 하는 놀라운 소리도 한 적이 있다. 그러면 실망한 눈길이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그녀가 그것을 하면서 느끼는 만족감에 대한 배신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식구를 위해 정성과 맛을 다하는 것은 책임 이전에 당연히 그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대한 모욕이었다.

그런 의중을 파악한 다음부터 나는 그런 소리는 다시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청소나, 옷수선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했으면 10분이면 하는데 같은 일을 30분 정도는 더 해서 보기에 안쓰러워도 모른척 했다.

그것은 안쓰러운 것이 아니라 그녀의 행복이었다. 나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의 행복을 가로 챌수는 없었다.

내가 아는 그녀는 이런 정도였다. 이를 근거로 다른 것을 추론해 볼 수는 있지만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었다.

더구나 순간, 순간 닥쳐오는 감정을 알아낸다는 것은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같은 병동의 남자와 여행을 가는 것 까지는 이야기해서 알 수 있으나 상황에 따라 느끼는 감정까지 일체가 될 수는 없었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다고 해서 내 영혼이 순수해지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러나 서로는 서로를 크게 의지하고 있었다. 무려 3년간 떨어져 있었으나 마음마저 그렇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멀리 떨어져 있는 몸과는 달리 마음은 전선줄처럼 얽혀 있었던 것이다.

각자 할 일이 있었고 그것에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불편함은 없었다.

먹고 자고 세탁하고 하는 일에 남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고( 귀찮다거나 하기 싫다는 감정이 전혀 없었다. 그것은 걷는 것처럼 때로는 즐거운 행위의 일종이기도 했다.)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이 곁에 있어야만 위로와 안정을 찾는 것이 아니었다. 되레 홀로 있을 때, 누가 옆에 없을 때 완전한 자유를 느꼈다.

고독을 사랑할 줄 알고 즐길 줄 알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단련된 힘 때문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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