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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틈에 낀 것은 꺼내기가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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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틈에 낀 것은 꺼내기가 힘들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10.08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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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 내렸을 때 나는 떠나는 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쪽에서는 뱃머리를 이미 돌린 상태라 호응하지 못했다.

동력선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주변의 풍광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섬들과 해안선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길지 않은 곡선의 모래사장이 100 미터 남짓으로 짧게 펼쳐져 있었다.

당연히 사람의 흔적은 없었다. 배가 떠나고 나자 고요하고 적막했다. 혼자였을 때 느끼는 자유와 고독 뭐 그런 이중의 감정이 잠깐동안 왔다 갔다.

그러나 그런 기분도 잠시, 나는 쉴새 없이 손을 놀려야 했다. 밀려온 쓰레기가 어마어마했다. 우선 비닐과 스티로폼 그리고 플라스틱을 위주로 치웠다.

가지고 온 쓰레기 봉지는 모두 200개였다. 너무 많지 않느냐고 동료들이 말했으나 어차피 일주일간 머물 예정이었으므로 그렇게 많은 양은 아니었다. 하루에 대형봉투 30여 개를 채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일과시간만 일해도 충분했다. 그러나 나는 ‘9 TO 5’는 개의치 않았으므로 첫 날에만 무려 63개의 대형봉투를 채웠다. 전과를 올렸다는 표현도 쓸만했다.

그만큼 열심히 일했다. 일한 자의 보람이라고나 할까. 고단한 것보다는 엄청난 양에 압도됐다. 예상했던 대로 무인도의 섬은 유인도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흐르는 땀을 닦고 잠시 고개를 들어 먼바다를 바라봤다. 석양이 길게 꼬리를 물며 저쪽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호사스런 일정이었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섬에서 하루종일 쓰레기를 주웠으나 힘들지 않았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저런 장관을 인류가 앞으로 얼마나 더 볼 수 있을지 그것이 걱정이었다.

실컷 보고 또 보았다. 내가 나에게 주는 휴식은 바로 이런 때였다. 얼마 후 해가 사라지고 어둠이 밀려왔다. 미리 쳐 놓은 텐트로 이동했다. 아직 주위는 사그러 들지않아 물건의 식별은 가능했다.

이동식 도시락으로 식사를 마쳤다. 도시락은 곧 쓰레기 봉지 속으로 들어갔다. 묶어 놓은 봉지를 옆으로 밀면서 겨우 공간을 마련했다. 다음 부터는 일회용이 아닌 도시락통을 지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두워져서 더는 일을 할 수 없었다. 어둡지 않아도 그만둬야 내일 일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나의 일과는 지금 순간 부로 완전히 끝났다. 그래서 나는 옷을 갈아 입고 편한 상태가 됐다.

여름은 지나갔고 가을은 시작됐다. 저녁이라 조금 한기가 밀려왔다. 나는 텐트 속으로 들어가 술 한 병을 들고 나왔다. 술은 내 친구였다. 아무도 없는 섬에서 술 한잔 먹는 것은 피로회복제였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먹는 술은 혼자가 아니었다. 저 멀리서 달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잔을 들고 나는 달에게 건배를 제의했다. 달이 술친구였다. 그림자도 비쳤다. 나와 달과 그림자와 셋이서 대작을 하니 기분이 아니 좋을 수가 없었다.

내일 일을 생각하면서 나는 세 잔의 술을 먹었다. 누우니 피곤이 몰려왔다. 노동의 기쁨은 이런 것인가. 내일 일어나 쓰레기 주울 일을 생각했다. 예정된 봉투를 다 채우면 오후 세 시쯤 될 것이다.

내일은 해변가 모래사장이 아닌 바위 주변을 훑어야 한다. 그러면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 모은 쓰레기는 많지 않을 것이다. 바위틈에 낀 것을 꺼내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위험에 대비해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830개의 쓰레기봉투를 추가로 주문했으나 당장 내일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어차피 섬에서 머무르는 기간은 일주일이므로 음식과 함께 모레 가져오도록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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