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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을 나누는 사이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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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을 나누는 사이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02.18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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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누구의 냄새도 아닌 그녀의 냄새가 리처드를 자극했다.

병동에서 그녀는 그에게 이런 냄새를 풍기면서 그에게 생명을 불어넣었다. 다 죽었다 살아난 리처드는 언제나 그녀의 냄새를 맡고 있었다.

그는 눈을 감고 있어도 그녀가 오는지 알았다. 죽음이 손짓하는 그 순간에도 그는 그녀의 냄새로 저승사자의 손짓을 물리쳤다.

그는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그녀의 냄새와 병동의 냄새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어쩌다 다른 사람이 간호를 맡을 때면 그는 금방 숨이 끊어 질듯 괴로웠고 그녀가 왔을 때 새 생명이 용트림 쳤다.

이런 냄새는 리처드가 어린 시절 맡았던 엄마의 냄새와 같은 것이었다. 엄마는 비록 그가 크기도 전에 집을 나갔지만 언제나 엄마가 생각날 때면 냄새가 먼저 다가왔었다. 잊었던 엄마 냄새를 살린 것은 그녀였다.

비누 냄새가 아닌 바로 그 냄새를 맡으며 리처드는 살아 있는 동안 그녀로부터 자신이 떨어져 나가는 일은 없을 것 임을 알았다.

그녀는 그의 이런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지만 리처드가 그녀에게 기울이는 정성의 정도를 가늠해 볼 수는 있었다.

그녀는 나이도 그렇지만 리처드를 이성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어린 동생 정도로, 이국에서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의견을 나누는 친밀한 사이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실제로 그녀는 자신의 일 이외의 다른 일에 더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일보다 중요한 것은 그녀에게 없었다.

한국에 있는 남편도 일을 하는 동안에는 전혀 생각나지 않았고 그 어떤 다른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살아 있다는 것을느낄 때는 언제나 죽어가는 환자의 손을 잡고 그녀의 영면을 기원할 때였다.

그녀는 신부였으며 성자였다. 사람길의 마지막을 보내는 안내인이었으며 슬픔에 빠진 가족을 다독이는 위로자였다.

그녀는 자신도 다른 누가의 손에 의해 그런 길을 가겠지만 지금은 그걸 생각할 겨늘도 없이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음에 이르는 길이 고통이 아닌 환희의 길이 되도록 정성을 다했다.

그것은 무신론자에게 신의 형상을 덧입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인간의 정을 보여줄 뿐이었다. 부모의 손길이나 형제애 같은 것을 느낄 때 환자는 죽음을 비로소 사실로 받아들인다.

손을 잡아 주고 그윽한 눈길을 보내고 있으면 나이와 상관없이 그녀는 어른이었고 환자는 어린아이였다. 아이가 잡은 손이 따뜻하고 그 따뜻함에서 위로와 안정을 느끼면 그 손은 엄마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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