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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검은 고양이>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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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검은 고양이> (1843)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01.12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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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세게 밀쳐 낸 적이 있다. 그때 돌아서서 보던 그 눈빛을 잊을 수 없다.

그 고양이가 검은색이었는지 흰색이었는지는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발가벗고 놀던 시절 친척 집의 가마니 위에는 고양이 서너 마리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는데 내 또래 아이가 내게 그중 한 마리를 집어서 던졌다.

나는 얼결에 받았고 받은 즉시 물건을 놓치듯이 땅으로 떨어뜨렸다. 여름 밤이었다. 받을 때 나는 고양이의 앞발에 할퀴었고 세 줄로 난 상처에는 피가 고였다.

화풀이를 하기 위해 고양이를 쫓아갔으나 녀석은 이미 줄행랑을 친 뒤였다. 그 후 그 집의 쇠락으로 고양이는 한동안 나에게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간혹 길을 가르는 고양이를 보거나 겨울 공원에서 해바라기를 하는 녀석들을 만났다. 그때마다 나는 고양이는 개와 다르다는 말을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특히 걷는 모습을 볼 때면 그 여유로움, 그 우아함에 빠져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언젠가는 애완견처럼 고양이를 집에서 키울 날이 오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다.

그것이 다가와 꼬리치는 대신 몸을 비벼대며 가르랑거리는 소리를 내면 매우 행복할 거라는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기분좋은 생각을 하면서 에드가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를 읽었다.

내용은 대충 알고 있어서 색다른 감회는 없었으나 검은 고양이를 대하는 주인공의 태도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필 고양이에게 이렇게 잔혹해야 했는지 포우에게 따지고 싶을 정도다.

중세시대도 아니고 마녀니 그것과 한통속이니 하는 말로 고양이를 학대하던 시절도 지났는데 해도 너무 했다. 그만큼 고양이 말고 인간의 심성에 이렇게까지 깊숙이 침투하는 것이 없다는 반증이라고 이해하고 넘어가면 속편하다. (달리 도리가 없다.)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단편이기 때문에 분량이 아주 짧다. 하지만 속도감이 있어 중간에 책을 놓기 어렵다. 시작해서 끝나기 까지 짧은 시간이었으나 다 읽고 나면 긴 장편을 읽었을 때와 같은 깊은 떨림이 있다.

고양이 때문에 한 인간의 영혼이 철저히 파괴됐다. 주인공은 중범죄를 저지르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러기 전에 그는 고양이와 얽힌 괴이한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달해 준다.

그가 전하는 이야기는 이렇다. 나는 어려서부터 성격이 온순하고 사려 깊었다. 남들에게 놀림감이 되기도 했으나 동물들을 사랑했고 그런 나를 위해 부모님은 애완 동물을 이것저것 구해 주었다.

결혼 후에도 나와 성정이 비슷한 아내도 그렇게 했다. 어느 날에는 몸집이 아주 크고 멋지며 몸은 칠흑 같은 검은 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왔다. 녀석은 똑똑했다. 워낙 영리하다 보니 아내는 고양이가 마녀가 변신한 것은 아닌지 하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 고양이 이름이 플루토다. 플루토는 내가 사랑했으므로 그 역시 나를 잘 따랐다. 하루종일 내 꽁무리를 졸졸 좇았으며 밖으로 나갈 때도 따라 나올 지경이었다.

나와 플루토의 우정은 한 동안 지속됐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고양이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에. 내 온순한 성격이 폭음으로 인해 괴팍해 졌던 것이다. 침울하고 쉽게 화를 냈으며 다른 사람의 감정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아내에게 손찌검까지 했다. 바뀐 나를 플루토가 본능적으로 알아보고 어떤 때는 슬슬 피하기도 했다. 화가 나서 나는 그를 외면했고 심지어 학대하기까지 했다.

만취한 어느날 플루토를 잡고 한쪽 눈을 도려냈다. 끔찍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나중에 올 더 끔찍한 일의 전조에 불과했다. 후회와 반성을 해보았으나 그것은 영혼 깊숙한 곳까지 미치지 못해 나는 다시 술독에 빠졌다.

그 사이 플루토는 상처를 회복했지만 나를 볼 때마다 극도의 공포로 도망가기에 바빴다. 나는 이번에는 나머지 한쪽 눈을 마저 도려내는 대신 줄로 목을 감아 나무에 매달았다.

나를 한때 사랑했던 동물이 나를 배신하자 분노가 끓어올랐던 것이다. 그 날 밤에 불이 나서 집이 탔다. 기둥만 남은 벽의 한쪽에는 목에 밧줄이 걸린 엄청나게 큰 고양이 형상의 부조가 뚜렷하게 남아 있었고 그것을 보고 마을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물론 재난과 나의 잔혹행위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 관계가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다시 술에 절어 사는 나날이 계속됐다. 그때 술통위에 턱하니 앉아 있는 검은물체가 눈에 띄었고 플루토와 비슷한 검은 고양이라는 것을 알았다.

주인에게 고양이를 사고 싶다고 말하자 주인은 그 고양이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다고 대답했다. 내가 나오자 고양이도 나를 따라왔다. 집에 온 고양이는 마치 자기 집에 온 것처럼 행동했고 이내 나는 물론 아내의 사랑을 듬뿍 받기 시작했다.

녀석이 완전히 나를 따르는 것을 알자 녀석을 좋아하기 보다는 싫어하는 마음이 생겼다. 급기야 짜증이 나고 혐오감이 생겨 피하기 까지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녀석을 자세히 보니 플루토 처럼 한 쪽 눈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 이후로 녀석이 더욱 싫어졌다. 그러나 녀석은 내가 싫어하거나 말거나 더욱 더 내게 밀착해 왔고 나는 어느 날은 다리에 걸리기도 했다. 드디어 결정적인 순간이 왔다.

필요한 물건을 가지러 계단을 내려갈 때 고양이 때문에 거꾸로 넘어 질 뻔 했다. 그래서 화를 참지 못하고 도끼로  내리쳤으나 아내가 그 것을 막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도끼를 아내의 머리를 겨냥해 찍었고 아내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아내가 죽고 나서 나는 시체를 어떻게 처리할 지 궁리하다가 중세 수도사 들이 했다는 벽에 시체를 묻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벽은 회반죽이 채 마르지 않은 상태였기때문에 벽돌을 뜯어내는 일은 쉬웠다.

시체를 감쪽같이 치운 나는 완전 범죄를 확신했다. 경찰이 왔으나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돌아가는 경찰에게 내가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각인시키기 위해 쓸데없는 말을 지껄였고 그 순간 벽에서 고양이 울음 소리가 들렸다.

나는 체포됐다. 벽을 뜯었을 때 선채로 있던 아내의 머리위에 고양이가 앉아 있었던 것이다.

: 고양이 때문에 아내의 살인현장이 적발됐다. 

내가 여러분의 의심을 누그러뜨릴 수 있어서 기쁘다는 말을 하지만 안했어도 고양이가 울었을지 아니면 조용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나의 범죄를 숨길 결정적인 기회에 이 집, 아주 튼튼하게 지어졌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 순간 벽쪽에서 어린아이 같은 울음 소리가 났고 범행은 들통났다. 나는 곧 교수형에 처해질 것이다. 나를 따랐던 하찮은 짐승을 무자비하게 학대했고 눈을 도려 냈으며 목에 줄에 감아 죽였고 아내까지 그렇게 했으니 벌은 당연하다.

그러니 곰곰히 생각해 보면 고양이의 학대와 아내 살해가 어떤  연관성이 없다고는 볼 수는 없다. 

동물을 학대하는 자는 사람도 학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따르자 더욱 더 밀어내고 싶은 욕망을 버리지 못했던 주인공의 행동은 어떤 변명에도 용서 받을 수 없다. 동물학대니 동물권이니 하는 용어가 없던 시절이라해도 말이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면 나는 처음에는 고양이를 밀쳐 냈으나 지금은 내게 상처를 낸다고 해도 녀석을 너그럽게 용서할 마음이 있다. 실제로 그런 경험이 있다. 노려 보기는 했지만 그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

용서할 뿐만 아니라 그 전보다 더 녀석을 사랑하고 애정을 듬뿍 주고 싶다.고양이처럼 사랑스러운 동물을 미워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녀석이 가만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라. 

리드미컬한 근육의 움직임, 먹이를 노릴 때 드러나는 예리한 이빨, 숨겨진 날카로운 발톱. 혀를 내밀고 길게 하품을 하면 방금 깨어 났어도 또 옆에 눕고 싶다. 부드럽기가 솜사탕보다 더하고 봄바람 보다 더 포근하니 곧 잠이 들것이다. 

고양이는 서양에서 행운의 상징이었다가 마녀로 격하됐다가 다시 사랑받는 존재로 인간에게 부각되고 있다. 필요에 의해 버려졌고 다시 받아들여지는 고양이의 눈에 과연 인간은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까.

 유령일까, 악마일까 혹은 집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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