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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6 16:37 (금)
빈 자루를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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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자루를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12.11 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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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연설명을 하자면 내가 그들은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다. 나의 의중을 파악한 절대자가 미리 손을 써 놓았던 것이다.

노심초사하고 있던 내 마음을 간파한 절대자는 자신의 조치를 감히 거부한 그들에게 일말의 용서도 하지 않는 대신 다른 일거리를 주어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스스로 깨닫게 했다.

이 점에서 나와 절대자는 이심전심이었던 것이다. 스티로폼 제조업자들은 파산한 날 바로 다음 날부터 환경부가 주관한 일일 해변가 청소부로 등록됐다.

마침 환경부는 해변가에 쓰레기가 넘쳐난다는 언론의 집중 보도로 직장을 잃거나 파산한 개인들에게 그 일을 맡기려는 계획을 세웠고  스티로폼 제조업자에게 그 일을 하도록 했던것이다.

그들은 모두 13명이었다. 그 가운데 조장 한 명이 있었고 그를 중심으로 조원들은 하루에 해변 한 개를 맡아 주변을 청소하는 일을 했다.

일이 끝나면 환경부 직원은 해변가가 어떻게 정리됐는지 청소 전과 청소 후의 사진 수십장을 비교해 하루 일당을 지급했다. 건성건성 하거나 놀면서 일할 분위기를 애초에 원천차단하겠다는 방책을 세운 것이다.

처음에 그들은 청소부로 낙점된 것을 못마땅해했다. 사업이 파산한 것도 억울한데 청소까지 해야 해서 비굴함을 느꼈다. 그러나 자신은 물론 가족의 생계가 달린 문제여서 자존심은 버려두고 일터로 향했던것이다.

그들은 하루일과 전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온갖 쓰레기 더미들을 핸드폰으로 촬영했다. 일부는 파노라마 사진을 찍었다. 환경부 직원이 그렇게 시켰기 때문이다.

해변은 모두 3개 구역으로 나눠 3명씩 할당을 받았고 남는 인원은 거칠게 먼저 청소하고 지나간 자리를 세심하게 치우는 일을 맡았다. 말하자면 이중의 그물을 치고 빠져나가는 고기를 잡겠다는 계획이었다.

버스에서 내린 그들은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는 것을 피하기 위해 복면을 했다. 도둑 혹은 시위에 나선 사람처럼 알아보지 못하도록 얼굴을 가린 것은 자신들의 직업에 만족하기보다는 창피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각자 자루를 하나씩 받아든 조원들은 쓰레기를 하나씩 주워 담기 시작했다. 누군가 먼저 시작하자 멈칫거리던 나머지들도 그 사람을 따라 자신의 빈 자루를 채워 나갔다.

자루는 순식간에 꽉 찼다. 13걸음도 지나지 않아 손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자루 속은 쓰레기로 넘쳐 났다. 그들은 새로운 자루를 받아 들고 앞으로 나아갔다.

쓰레기를 담으면서 그들도 엄청난 양에 압도당했다. 이렇게 쓰레기가 많이 있다니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가운데서 가장 많은 쓰레기는 스티로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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