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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억척어멈과 자식들>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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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억척어멈과 자식들> (1939)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11.13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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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군기자가 있다면 종군상인도 있다. 전쟁터를 따라다니면서 물건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종군상인의 역사는 매우 깊다. 브레톨트 브레히트의 희곡 <억척어멈과 자식들>에는 무려 1618년에 이미 종군상인이 있었다.

눈치 챘겠지만 군대 때문에 먹고 사는 종군상인은 억척 어멈이 되겠다. 엄마가 아닌 어멈인 것은 아마도 억척스러움에 있어서는 그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 근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안나 피어링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어멈에는 세 명의 자식이 있는데 아들 둘과 딸 하나가 되겠다. 참고로 그 아들과 딸은 각자 성이 다르다. 이유는 묻지 말자.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전쟁의 시기 였다’ 라는 상황을 염두에 두자.

어쨌든 전쟁 상황이니 아들은 군인의 길을 피할 수 없다. 큰 아들 아일립은 1624년 봄 스웨덴이 폴란드 원정을 위해 군대를 모집하는 모병관을 만나기까지 엄마, 두 동생과 함께 마차를 끌고 행상을 돕고 있다.

모병관과 마차가 도시 근방의 국도에서 운명적인 만남을 하면서 극은 시작된다. 모병관은 평화가 오면 번식만 하는 인간들 때문에 세상이 엉망진창이 되고 전쟁이 있어야만 비로소 질서가 유지된다는 생각에 동의하는 진짜 군인이다.

 

그런 군인들에게 억척어멈은 대포 세례를 물리치고 전장을 누비면서 물건을 판다. 더 잘달 릴 수 있는 신발, 힘을 내게 하는 소시지, 심신의 고달픔을 해소하는 포도주가 마차에 실려 있다.

모병관은 아들을 군대로 끌고 가려고 한다. 아들은 처음에는 핀란드 제 2연대 소속이라고 속이려들고 엄마와 말다툼을 벌이는 모병관에게 주먹을 날리고 싶을 만큼 화가 나 있다.

하지만 행상은 계집들이나 하는 일이고 전쟁은 부와 명예를 가져다준다는 말에 마음이 조금씩 흔들린다.

어떻게 해서든 아들을 뺏기지 않으려는 엄마는 저 애는 아직 병아리라거나 장 화속에 칼을 숨기고 다닌다면서 달래고 을러 보지만 통하지 않는다.

근육이 있는지 만져 보자고 달려드는 모병관은 군대에 입대하면 모자와 접이식 장화를 받는다고 꼬드긴다.

아들은 전쟁이 무섭지 않다며 결국 모병관을 따라 간다. 남들이 비웃고 애송이라고 욕해도 영리하게 굴지 않으면 아비처럼 전쟁터에서 개죽음을 당한다는 어미의 최후통첩도 통하지 않는다.

억척 어멈은 남은 아들과 딸을 데리고 전쟁으로 먹고 살려면 뭔가 기여 해야지 하는 말을 뒤로 들으며 다시 행상을 떠난다.

2막이 시작되면 억척어멈은 스웨덴 군인을 따라 폴란드 국경을 통과한다. 그 곳에서도 종군상인의 역할은 변함이 없다.

취사병과 거세한 수탉을 비싼 값에 팔기 위해 흥정을 벌인다. 막사에서는 용병대장이 아일립에게 경건한 기마병으로 영웅적인 행동을 했다며 아들이라고 부르면서 그를 대우한다.

아들은 용병대장에게 농부들의 재산을 약탈하다보니 배가 고프고 고기가 먹고 싶다고 칭얼댄다. 용감한 군인으로 아일립을 이미 평가한 용병 대장은 그의 요구를 들어주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엿들은 억척어멈은 순간 머리를 굴려 취사병에게 더 높은 값을 부른다. 한편으로는 용병대장의 이런 대우가 아들의 용기를 더 복돋아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으므로 나쁜 용병대장이라고 욕설을 퍼붓는다.

모성애가 발동한 것이다. 어멈은 아들의 용맹스러움에 화가 나서 아들의 따귀를 때린다. 사내 4명이 달려들어도 항복하지 않는 그 무모함을 저주하면서 네 몸을 지키라며 무식한 놈이라고 소리를 지른다.

3장이 시작되면 어멈은 핀란드 연대와 함께 포로 신세가 된다. 포로 신세라고 해서 장사를 멈추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는 병기감에게 총알을 팔아먹기 위해 흥정을 벌인다.

대단한 종군상인이 아닐 수 없다. 그 곳에는 출납계장인 둘째아들이 근무하고 있다. 어멈은 정직하기도 하고 큰 형처럼 대범하지 않아 금고를 가지고 튀지 않는다는 것을 병기감이 알기 때문에 그런 직책을 아들이 받았다고 판단한다.

포로 된 주제에 병사들의 급료지급을 걱정하는 고지식한 슈파이처카스는 결국 금고의 숨겨진 장소를 알려주지 않아 구교도들에게 희생당한다.

영리하지 않기 때문에 정직해야 된다는 어멈의 가르침이 되레 역효과를 본 것이다. 하지만 큰 아들 때와 마찬가지로 어멈의 모성애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발동된다.

어멈은 군사재판에서 아들이 처형되는 것을 막기 위한 뇌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그 것 없이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마차를 팔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군인과 함께 다니는 이베트에게 호감을 가진 대령에게 더 많은 마차 값을 받기 위해 흥정을 벌이다가 결국 인질석방의 때를 놓친다.

11발의 총탄을 맞고 아들은 죽는다. 다 그 놈의 돈 때문이다. 그녀는 아들이 죽은 후에도 아들과의 관계를 부인한다. 자신과 딸까지 위태롭다는 것을 알기에 거적에 쌓여 죽은 자가 누구인지 묻는 대답에 두 번이나 모른다고 대답한다.

종교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가격만 물을 뿐이라는 뼛속까지 장사꾼인 어미 때문에 아들은 죽었다.

다시 시간이 흐른다. 전쟁은 점점 영역을 넓혀간다. 억척어멈의 마차는 폴란드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전역을 휩쓸고 다닌다. 그 사이 셔츠를 4벌이나 잃어버리고 딸 카트린이 얼굴에 상처를 입고 용병대장의 장례식이 치러진다.

하지만 장사는 호황을 누린다. 그 사이 어멈은 군목을 남편 대신 삼아 딸과 함께 새 물건이 주렁주렁 달린 마차를 끌고 오늘도 행상이다.

어멈은 전쟁을 헐뜯는 걸 참을 수 없다고 노래한다. 전쟁이 약자를 죽인다고 하지만 약자는 평화 시에도 죽는다고, 전쟁만이 사람들을 풍요롭게 한다고 믿는다.

전쟁은 치즈대신 총알로 하는 단지 장사일 뿐이라는 신념은 변하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스웨덴 왕이 죽자 모처럼 평화가 온다. 지속되는 평화 때문에 억척 어멈은 파산직전이다.

아일립은 평화 시에도 농부의 집에 침입해 가축을 약탈하고 농부의 아낙을 죽이는 전쟁 시의 못된 영웅적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손이 묶여 있고 처형되기 일보직전이다. 그는 엄마를 만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병사는 그럴 시간이 없다고 거절한다. 대신 내가 다른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전과 같은 일을 했을 뿐이라는 말을 전달해 달라는 말을 전해주겠다고 약속한다.

평화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다시 전쟁이 왔다. 독일은 16년 전쟁동안 국민의 절반을 잃었고 도시는 불에 타 폐허가 됐다. 그 사이 취사병과 가까워진 엄마는 카트린을 남겨 두고 같이 장사하자는 취사병의 말을 따르기 보다는 거절한다.

두 아들을 잃은 어미는 그 무렵 딸마저 잃는다. 아군에게 적이 왔음을 알리는 북을 치기 위해 카트린이 지붕위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려오라는 여러 번의 경고를 무시해 결국 총에 맞아 죽는다. 이제 어멈에게는 자식은 없다. 다만 팔 물건이 별로 없어 혼자서도 끌 수 있는 마차가 있을 뿐이다. 그 마차를 끌고 안나는 전쟁터를 떠나지 못하고 다시 따라 나설 것이다.

: 슬픈 희곡이다. 전쟁으로 먹고 사는 어멈이 전쟁으로 아들 셋을 잃었다. 하지만 어미는 전쟁의 본질을 모른다. 전쟁은 단지 생계 수단일 뿐이다.

브레톨트 브레이트는 이 점을 부각하기 위해 2차 대전이 발발하기 전 스칸디나비아에서 1939년 극을 썼고 1941년 초연했다. 주인공 억척 어멈의 이중성이 눈에 띈다.

전쟁을 이용해 먹고 살지만 전쟁에 아들을 보내고는 싶지 않다. 그래서 용감한 큰 아들에게, 정직한 둘째 아들에게, 도덕심이 강한 딸의 안위를 걱정했다. 그러면서 더 많은 이득을 내기 위한 흥정에는 물러서지 않았다. 모순이다.

한편으로는 이것은 모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전쟁을 이용해 돈을 번다고 해도 전쟁터에 나가 자식이 죽기를 바라는 어머니는 없다. 조롱을 받으면서도 어멈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모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영웅이 나오는 전쟁이 아니라 민중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전쟁이야기라는 점에서 흥미를 끈다. 30년 전쟁의 연대기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이 희곡은 1618년부터 1648년까지 이어진 종교전쟁이 배경이다.

하지만 이는 이데올로기적인 성격이 짙고 대신 폴란드왕과 그의 조카인 스웨덴 왕 사이의 정치적 대결이라고 보는 것이 무방하다. 한편 작가인 브레이트는 마르크스주의자로 낙인찍혀 한국에서는 1988년까지 금지된 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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