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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그 것 만큼은 잘 해낼 자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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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그 것 만큼은 잘 해낼 자신이 있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5.04 1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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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무과장은 베트남 전쟁의 참전용사였다. 고지를 향해 달려 나가는 용감한 병사였다. 결코 팔려온 용병이 아니었다. 지원을 했지만 돈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자유를 지키는 일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고 실천에 옮겼다. 젊은 그는 가면 죽을 수 있다고 만류하는 부모에게 살아서 돌아오면 되지 않느냐고 쏘아붙였다. 총이라도 쏘지 않으면 할 일이 없었던 그는 거듭되는 죽는다, 이놈아! 하는 어미의 목소리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배우지 못해서 그렇다고 어미는 목 놓아 울었다. 울다가 그친 어미는 어느 날 영장이 나오자 더 이상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울음을 그치는 대신 매일 같이 연곡사에 가서 아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했다.

총무과장을 낳을 때도 어미는 같은 행동을 했다. 훌륭하고 좋은 자식이 때어나게 해달라고 신령님께 빌고 또 빌었다. 어미는 비는 데는 자신이 있었다. 그것만큼은 해낼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어떤 날은 그날 저녁 식량을 공양으로 바치면서 정성을 더 기울였다. 꿈자리가 사나운 날이었다. 베트남 정글의 어느 곳에서 아들이 벼락을 맞는 꿈을 꾸었을 때 어미는 곳간을 탈탈 털어 밤이 깊기도 전에 절로 달음질 쳤다.

밤이 깊지 않아 새벽이 오기에도 이른 시간이었다. 공양미를 바치고 정성껏 정안수 떠놓고 어미가 아들의 생명을 위해 손을 싹싹 비빌 때 전선에 투입된 아들은 한 달 만에 살아 있는 것의 숨통을 끊었다.

그 때 과장의 막힌 가슴도 시원하게 터졌다. 비로소 그는 군인이 됐다. 용감한 군인이고 싶었던 그는 무엇이든 죽이는데 앞장섰다. 대상이 적이었는지 민간인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조준하고 쏜 총알에 방금 전까지 살아있던 것이 움직임을 멈췄을 때 그는 식스 틴의 위력을 실감했다.

처음에 그는 조금 떨었으나 처음이 어렵지 자꾸 하다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되는 것을 다른 사람처럼 똑같이 경험 했다. 그는 자꾸 죽였고 그럴수록 죽이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공부하는 것이 제일 쉬운 사람이 있듯이 총무과장에게 사람죽이는 일은 지금까지 해온 일 중에서 가장 쉬운 일이었다.

자신에게 이런 강한 힘이 있었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은 죽어있는 것을 보는 살아있는 자신이었다.

명사수 였던 그는 조준경 안에 들어온 것을 놓치는 일이 없었다. 호흡을 멈추고 검지를 가볍게 당길 때 느끼는 기분은 어떤 위대한 힘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거울을 보지 않던 그는 어느 날 거울 속에 있는 자신의 눈이 반짝인다는 것을 알았다. 어둠 속에 있는 맹수의 눈처럼 몸통은 보이지 않고 두 눈 만 빛나고 있었다. 그런 눈을 보는 그의 눈은 만족으로 빛났다.

작전이 끝나면 그는 오늘도 자유를 수호했다는 충만한 기분에 들떴다. 그것은 밥을 많이 먹어 배부른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손에 잡히는 생생한 반응이 온 몸을 관통했다.

간절히 바라던 것이 이루어졌을 때 찾아오는 가득함이었다. 수류탄을 던졌을 때는 또 다른 쾌감이 몰려왔다. 크레모아를 누를 때는 마치 장군이나 된 듯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돌격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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