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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19 11:48 (금)
55.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1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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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1774)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4.19 16: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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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사내가 있다. 아니 한 젊은이가 있다. 그의 나이는 25세 정도. 누군가 사랑 하는 사람이 생기기에 적당한 나이다.

남자였던 그는 한 여자를 사랑했다. 그의 이름은 베르테르였고 그가 사랑한 여자는 샤를로테, 줄여서 로테였다.

두 사람은 첫 눈에 서로 호감을 느꼈다. 그래서 자주 만났고 만남이 깊어질수록 사랑도 진해졌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로테는 이미 임자 있는 몸이었다. 베르테르를 만나기 전에 알베르트와 약혼했기 때문이다. 삼각관계는 맺어지기 보다는 깨지기 쉬워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그렇게 됐다.

깨지는 정도에서 멈추지 않고 아주 파국이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은 슬펐고 그래서 베르테르는 늘 울었다. 그림도 그리고 시도 쓰고 인정도 많고 아마도 생기기도 잘 했을 베르테르의 슬픔은 고뇌가 되고 고뇌는 곧 절망으로 바뀐다.

사랑해서는 안되는 여자를 사랑하는 자신을 자책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그녀의 집에 자주 놀러가기도 힘들어졌다. 그녀가 돌보는 8명의 아이들을 보러간다는 핑계도 더는 대기 어려웠다.

 

알베르트와 친구로 지내지만 친구의 여자를 사랑하는 이상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을 사람들이 수군거리자 로테는 베르테르가 부담스럽다.

여자는 거리를 두려하고 남자는 그럴수록 더 끌렸다. 불행은 이런 가운데 싹트기 마련이다. 남자가 다가갈 때 여자가 마주 오면 상항은 쉽게 정리된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일은 커지고 경험이 없어도 복잡해진다는 것을 안다. 아무리 생각해도 베르테르는 로테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만 같다.

파티 장에서 그녀와 만나지 않았더라면 젊은 남자의 슬픔과 그로 인한 죽음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 역사만큼이나 소설에서도 가정은 얼마나 무의미 한가.)

로테와 버금가거나 그 보다 더 마음에 드는 여자를 사랑했을 테니까. 하지만 로테를 본 이후로는 다른 여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오직 로테만이 자신의 존재 이유였고 살아가는 힘이었다.

그런데 그 로테가 자신에게 알리지도 않고 결혼해 버렸다. 이제는 더는 어쩔 수 없다. 베르테르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고 있다.

외국에서 일자리를 찾거나 혹은 여행을 떠나 보아도 별 수 없다. 해결책은 단 하나, 로테가 알베르트가 아닌 그의 옆에 있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알베르트가 이 세상에서 꺼져버려야 한다. 아니면 그가 로테를 사랑하지 않고 다른 여자에게 한눈을 팔아야 한다.

하지만 베르테르에게 이런 기회는 오지 않았다. 알베르트는 꺼지지 않고 로테를 여전히 사랑했으며 직장생활도 충실히 하고 있다.

베르테르는 생각한다. 로테를 영원히 사랑하는 방법은 자신이 죽는 것 뿐이다. 이런 결심을 하기 전에 그는 로테의 열정을 확인한다.

그의 입술에 전해져 오는 로테의 사랑은 자신의 그것과 동일하다. 서로 사랑하면서도 맺어 질 수 없는 운명은 가혹하다.

그는 생을 더 연장하지 않고 베로니카처럼 죽기로 결심한다. ( 그런 결심은 당연히 베르테르가 앞서서 한 것이니 이런 표현은 맞지 않지만.) 치밀한 결심을 하고 그대로 행동하는 것은 로테에게 보여줄 수 있는 베르테르의 마지막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는 하인에게 권총을 빌려오라고 시킨다. 로테는 장롱속의 권총을 정성스럽게 닦은 후 하인에게 준다. 군말 없이 그렇게 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 베르테르의 부탁이기 때문이다.

그 권총으로 그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베르테르는 로테를 볼 수 있는 눈을 더 이상 볼 수 없도록 겨냥한 그대로 방아쇠를 당긴다.

가까이서 총을 맞은 베르테르는 죽었다. 로테는 혼절했고 알베르트는 그런 그녀를 지켜주기 위해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자살은 죄이므로 어떤 신부도 그의 영혼을 위로해 주지 않았고 다만 그의 시체는 그가 원했던 대로 보리수나무 두 그루 사이에 묻혔다.

: <파우스트>의 작가 괴테는 이 작품을 25살에 썼다. 이후로 그는 일약 스타가 됐다. 평생 먹고 살만한 돈과 지위를 챙겼다.

후배였던 당시 16살 실러는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영주가 시민 계급출신인 젊은 괴테에서 깍듯이 대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작품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만큼 이 작품이 가져온 반향은 컸다.

친한 친구 빌헬름에게 전하는 편지글 형식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앞서 밝힌 대로 죽음이라는 파국으로 결말을 맺는다.

거기까지 오는 동안 보여주는 문체의 화려함과 젊은이의 고뇌에 대한 집중적인 묘사는 오늘날 까지도 독자들의 열렬한 매력을 끌고 있다.

봄에 시작해서 크리스마스 직전에 끝나는 편지글은 1부와 2부로 구분되는데 마지막 부분은 편지 외에도 주변사람들의 견해까지 덧붙였다.

괴테는 이 작품의 모티브를 실제 사건에서 얻고 나서 단 7주 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베르테르가 입고 다니던 푸른 망토와 노란조끼는 청춘의 상징이 됐으며 이 때문에 한 때 자살하는 사람이 늘어 ‘베르테르 효과’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신분사회에 대한 비판,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가족 간의 유대 등이 곁가지로 그려지는데 이는 이 소설이 단순한 사랑 소설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베르테르가 일을 더 열심히 하거나 소질 있는 그림에 더 정을 붙였다면 가망 없는 사랑에 대한 열정으로 죽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은 부질없지만 그래도 해보는 것은 4월은 목련이 피는 달이기 때문이다.

아무렴 '목련 꽃 그늘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는 것도 괜찮겠다.

박목월의 시에 김순애 작곡의 ‘사월의 노래’를 들어도 좋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으로 들으면 로테와 베르테르가 저 멀리서 서로 손 잡고 달려 오는 모습이 보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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