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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호흡, 감각 통제하고 에너지 생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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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호흡, 감각 통제하고 에너지 생성하라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3.27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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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 한 발, 발자국 수를 센다.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발음이 확실하고 절도가 있다.

그러자 느닷없이 군대에서 부르는 군가 소리가 들린다. 구보 중에 군가 한다, 군가는 멋진 사나이. 군가 시작, 하나 둘 셋 넷. 순서대로 복창하니 기분이 좋다.

막 삼사를 마치고 전방에 온 호기로운 소대장인가 아니면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했으나 말년에 가서는, 가서는 안 될 곳에서 고생한 선임 분대장인가.

누구면 어떤가, 그 얼굴 그립지도 않으니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라. 잊은 지 오래다.

선창했던 목소리는 그러나 그림자처럼 따라와 붙는다.

‘멋있는 사나이 많고 많지만 바로 내가 사나이 멋진 사나이.’

돌림 노래의 화음이 연병장에 가득하다. 여기저기서 포탄이 터지듯이 왁자지껄하다.

푸른 군복에 실려 간 꽃다운 이 내 청춘의 그 때 그 시절이 앞서가는 운동화 발끝에 걸친다. 하 세월이 지났어도 그 녀석의 군대는 여전히 현실에서 나의 일부로 살아 숨 쉬고 있다.

진땀을 흘리다 재입대하는 꿈이 아닌 이상 이제는 오늘처럼 다 지나간 일이다. 듣는 사람도 없으니 작게 소리 내어 그러나 각을 잡고 이번에는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지만 너와 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산다’ 를 외친다.

수 십 년이 지났어도 가사가 절로 튀어나오는데 틀리지 않는다. 다른 것이 아니라 이런 것이 신기한 일이다.

오래 묵은 포도주처럼 입에 착착 감긴다. 군가가 이렇게 멋진 노래 였나?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가사 몇 마디 했다고, 제 멋 들려 기분 좀 냈다고 호흡이 가쁘다. 감각을 통제하고 에너지를 생성하는 기관에 물이 넘치고 있다. 단순하게 숨을 쉬기만 하는데도 벅차다. 그래 녀석과 싸우지 말고 친밀한 친구가 되자.

이것이 없으면 생명 활동을 할 수 없다. 우는 아이가 갑자기 무엇에 놀라 멈추듯이 군가를 딱 그친다. 그것도 절도 있다. 3년간 몸에 벤 탓이다. 같은 동작을 반복한 습관의 힘이다.

그 때는 헉헉 대지 않고도 돼지 멱따는 소리를 잘도 질러 댔지. 되레 그것이 없으면 낙오할 것처럼, 지칠수록, 숨이 헐떡거릴수록, 더 세게, 더 크게, 미친 듯이 산천이 떠나가도록 호령했었지.

그런데 지금은 왜 금세 풀이 죽었느냐고 다 알고 있으므로 묻지 않았다.

군가는 마르지 않는 샘의 원천 이었다. 눈을 뜨기도 전에 불렀고 감고 나서도 불렀다. 이것이 없으면 호흡이 없는 거와 마찬가지였다.

아랫배가 위로 당긴다. 고무줄로 잡아 늘리는 것처럼 배꼽위로 올라간다. 무거운 것은 몸이고 하체다. 세상에서 제일 쉬운 숨 쉬는 것조차도 힘든 순간이다.

휴대용 호흡기를 바짝 코에 대고 히말라야 끝자락을 오른다. 그 때는 사방이 꽃이었다. 그것을 보면서 견뎌 냈다. 

지금은, 이 순간은? 입과 코를 막고 초침을 재면서 누가 이기나 내기 시합하던 기분으로 버텨야지.

다시 작은 에너지가 입으로 들어와 뇌로 올라간다.

공원 행은 뒤로 미뤄졌다.

달리 생각할 것도 없이 몸을 돌려 왔던 길을 되 집었다. 조금 더 갈 수는 있지만 올 수는 없다. 말 고개 언덕에서 흰자가 보이게 눈을 뒤집고 쓰러진 동료를 보았다. 앞산은 눈이 가득했다. 흰 꽃이 사방에 지천으로 피었다.

앞서가던 이병 3개월 차는 맞는지도 모르게 엠 십육의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찍혔다. 비뚤어진 철모 위로 떨어진 충격 때문에 그는 잠시 잃었던 정신을 차리자 이번에는 사지를 떨었다.

그의 소총과 탄띠와 배낭은 씩씩거리면서 욕지기를 하는 다른 병사의 손에 옮겨졌다. 비틀거리면서 일어난 그는 누군가의 옆구리에 낀 채 끌려가듯이 발을 움직였다.

한 사람의 낙오는 소대 전체의 낙오였다. 얼어붙은 입가의 게거품이 보글보글 끊지 않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는 그 날 이후로 ‘나고’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야, 나고 하면 그는 고개를 돌려 소리 나는 곳을 봐야 했다.

직각으로 올라갔던 팔이 각도라고 부르기도 어색하게 아래로 축 쳐진다. 속도가 급브레이크를 밟은 듯이 멈춰 서듯 움직인다. 그래도 완전히 서지는 않는다. 다시 멈출 때까지는 가야 한다. 남은 거리는 5 킬로미터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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