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는 치과의사 보톡스·프락셀레이저 시술, 초음파·카복시를 사용한 한의사에 대한 선고 등 굵직한 판결들이 내려졌었다.
올해도 이처럼 의료계에 큰 영향을 미친 굵직한 판결들이 내려졌다. 의료계 내부 갈등을 담은 판결부터 의료계를 넘어 사회 전반에까지 영향을 미친 판결까지, 올 한 해 의료계를 울리고 웃게 만든 판결들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지난 2015년부터 지금까지…故신해철 집도의 소송
판결은 지난해 내려졌지만 올해까지 큰 영향을 끼친 소송은 다름 아닌 故신해철 씨 집도의 강 모 원장과 관련된 소송들이었다. 이 소송으로 인해 만들어진 ‘신해철법’은 지금 의료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故신해철 집도의 강 모 원장과 관련된 소송은 총 3개로, 하나는 업무상과실치사·의료법 위반으로 기소된 형사소송, 다른 하나는 故신해철 씨의 유족들이 강 모 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민사소송, 마지막 하나는 강 모 원장에게 비만 관련 수술·처치를 하지 말라는 보건복지부의 명령을 취소하라는 행정소송이다.
먼저 형사소송은 지난해 11월 선고됐다. 서울동부지방법원은 “강 원장의 업무상 과실로 인해 故신해철 씨의 사망으로 이어졌다. 이 부분에 대해선 유죄를 인정하기에 충분하다”면서 강 모 원장에 대해 금고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1심 판결에 불복한 강 원장은 항소를 제기했고, 이어진 항소심은 지난 5월 두 번째 공판 이후 건강상 이유 등으로 기일을 2차례 연기한 끝에 12월 5일 세번째 공판이 진행됐다.
2심 재판부는 “2015년부터 이어져온 재판이 계속 길어지는 것 같다. 어떻게 해서든 결론을 빨리 내리겠다”면서 다음 기일인 내년 1월 9일을 결심 공판일로 결정했다.
이 사건에 대해 한 의료계 관계자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의료계 전문가 단체가 이에 대한 전문적인 의학적 판단으로 판결에 중요한 역할을 하길 바란다”며 “전문가도 법에 의존에 법원의 판결에 의존한다면 결국 전문가 단체의 위상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강 원장에 대해 故신해철 씨의 유족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은 지난 4월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18부(재판장 이원 부장판사)는 故신해철 씨의 유족이 강 원장과 보험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강 원장이 故신 씨의 아내 윤 씨에게 6억 8600여만원을, 자녀 2명에게 각각 4억5300여만원을 배상하라며 일부 승소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故신해철 씨의 사망이 강 원장의 의료상 과실이 아닌 다른 원인으로 발생한 것임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으므로, 결국 신 씨의 사망은 강 원장의 의료상 과실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보는 것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현재 이 소송도 항소가 제기됐다. 지난 9월 변론준비기일 이후, 두 차례 연기됐고 내년 1월 31일 새로운 변론준비기일이 잡혀있는 상태다.
또한 강 원장은 비만 관련 수술·처치를 하지 말라는 복지부의 명령을 취소하라는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2월 강 원장이 복지부를 상대로 제기한 ‘비만대사 수술 중단 명령 처분 취소소송’에서 강 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복지부의 처분은 지난 2014년 10월 故신해철 씨가 강 원장으로부터 위 축소수술을 받고 사망한 후에도 강 씨와 관련된 의료사고가 계속해서 일어났기 때문에 내려졌다. 이에 강 원장은 “비만대사수술 중단명령 처분을 취소해 달라”면서 소를 제기했고, 재판부는 이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국민보건에 발생할 중대한 위해를 예방하기 위해 이 사건 처분을 할 긴급한 필요성이 있었다는 점 등을 비춰보면 이 사건 처분 외에 강 씨의 비만대사수술의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국민보건상의 위험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다른 적절한 수단을 찾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고 판시했다.
이 사건은 강 원장이 항소를 제기하지 않아 판결이 확정됐다.
故신해철 집도의 강 원장의 사건으로 인해 의료계는 큰 영향을 받았는데 바로, ‘신해철법’으로 불리는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이 지난해 11월 개정·시행됐기 때문이다.
개정된 법안은 의료사고로 ▲사망 ▲1개월 이상 의식 불명 ▲장애등급 1급 등의 중대한 피해를 본 경우 피신청인인 의료기관의 동의 없이도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서 분쟁 조정 절차를 시작할 수 있도록 했다.
법안이 시행된 이후 ‘자동개시’ 된 의료사고 조정절차가 278건인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에 따르면, 개정법 시행 후 사망 또는 중증장애에 해당해 자동개시 된 사건은 2017년 9월 말 기준으로 ▲사망 271건 ▲1개월 이상 의식불명 6건 ▲장애1급 1건 등 총 278건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의료분쟁 조정개시율은 법률 시행 이전까지 50%를 밑돌다가 2017년에는 57.6%까지 증가했다.
의협 김주현 기획이사겸대변인은 “신해철법에 대해 의료계의 우려는 상당히 크다”며 “이 법의 입법 취지는 ‘안정된 진료환경’에 있는데, 이 법으로 인해 안정된 진료환경이 훼손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전 대통령의 손길이 의료계까지…비선진료 관계자 소송들
올해는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이 탄핵되고 장미대선을 통해 새 정부가 들어선 해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국정농단 사태를 주도했던 인사들이 처벌이 속속 이뤄졌는데, 의료계 인사들도 이에 포함돼 있었다.
지난 5월 서울중앙지법원은 박 전 대통령 자문의 세브란스병원 피부과 정기양 교수, 순천향대병원 산부인과 이임순 교수, 김영재 원장과 그 부인인 와이제이콥스메디칼 박채윤 대표, 김상만 전 대통령 자문의에 대한 선고를 진행했다.
정 교수는 2013년 3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대통령 피부과 자문의를 맡았는데, 주치의였던 세브란스병원 이병석 원장과 함께 2013년 박 전 대통령의 여름 휴가를 앞두고 ‘뉴 영스 리프트’ 시술(김영재 성형외과 원장이 개발한 주름 개선 시술로, 안면조직 고정용 실을 이용한다)을 계획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정 교수는 지난해 12월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선 “박 전 대통령에게 뉴 영스 리프트 시술을 하려고 계획한 적 없다”고 허위 증언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비선 실세’ 최순실 씨 일가의 주치의로 알려진 순천향대병원 산부인과 이임순 교수도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서 거짓으로 증언한 혐의(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불구속 기소됐다.
최 씨 일가의 주치의로 알려진 이 교수는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김영재 성형외과 원장 부부를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에게 소개해준 사실이 없다”고 증언했다. 반면 서 원장은 이 씨로부터 김 씨를 소개받았다고 상반된 진술을 했다.
이 교수는 김 원장이 개발한 리프팅 실을 서울대병원에서 쓰게 하려고 서 원장에게 두 사람을 소개한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정기양 교수에게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하면서 법정구속시켰고, 이임순 교수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정기양 교수와 이임순 교수는 곧바로 항소를 제기했고, 항소심에선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면서 선처를 구했다.
특히 정 교수는 항소사유를 양형부당에만 국한하고 사실오해, 법률오인에 대한 부분에 대해선 모두 철회,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이는 법률적으로 다툴 수 있는 부분까지 모두 철회한 것으로, 양형부당만 항소사유로 삼은 경우엔 ‘법률심’인 대법원 상고는 진행할 수 없게 된다.
이에 2심 재판부는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정 교수는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피부암분야의 권위자로 의사와 환자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았다”며 “이러한 사회적 지위 등을 고려할 때 아는 그대로 밝히는 것이 사회적 지위에 걸맞는 행동이었다. 따라서 비난 여지가 크기 때문에 선고를 유예해달라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임순 교수는 항소심에서 ‘공소 기각’ 판결을 받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국회 국정농단특위 보고서가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되는 2017년 1월 20일까지만 특위가 존속하고 그 이후에는 존속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며 “지난 2월 28일에야 뒤늦게 위원회 존속 당시 국회의원이 주체가 되어 고발이 된 이 사건 고발의 경우, 법이 정한 절차에 따르지 않은 고발로 적법한 절차라고 할 수 없다. 이 사건 공소 또한 소추 요건이 충족되지 못해서 적법성이 시행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항소심에서 각각 집행유예와 공고기각 선고를 받은 정기양 교수와 이임순 교수는 모두 대법원에 상고를 한 상태이다.
이 사건에 대해 한 의료계 관계자는 “비선 관계자들의 신분이 의료인일 뿐, 의사의 도덕성에 여론이 집중되지 않았으면 한다”며 “그 반대로 의사라고 하더라도 법 앞에 평등하게 판결이 나와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궐기대회까지…자궁내 태아사망 산부인과 의사 소송
분만 중 자궁 내에서 태아가 사망한 사건을 두고 법원이 의사의 과실을 인정,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자 해당 판결을 규탄하기 위한 궐기대회가 열리는 한편, 전 의료계가 한 목소리로 판결의 부당함을 호소했다.
인천지방법원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 A씨에게 금고 8월을 선고했다. 재판부가 A씨의 과실을 인정한 건, 산모에게 부탁된 태아 심박동수 검사 감지기를 제거한 부분이다.

재판부는 “A씨가 이 기간 동안 산모의 상태 및 태아의 심장박동수를 지속적으로 세심하게 관찰했다면 빠른 제왕절개수술 등으로 태아가 사망에 이르지 않았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보인다”며 “A씨는 수사기관에서 태아의 심박동수에 대해 세심히·지속적으로 관찰했다면 제왕절개 수술 등을 실시했을 가능성이 높았다고 생각한다는 취지로 진술하기도 했던 점을 비춰보면 A씨에게 업무상 과실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해당 판결에 대해 전 의료계에서는 ‘잘못된 판결’이라고 일제히 비판했다. 판결이 내려지자마자 지난 4월 13일 (직선제)산부인과의사회를 시작으로, 19일 비뇨기과의사회, 21일 흉부외과의사회, 경상북도의사회, 24일 전라남도의사회, 25일 전국의사총연합, 26일 경상남도의사회, 경기도의사회, 27일 대한의원협회와 한국여자의사회, 안산시의사회까지 직역과 지역을 망라해 규탄이 이어졌다.
또한 산부인과 의사들은 지난 4월 29일 서울역 광장에서 자궁내 태아 사망 사건과 관련, 분만의사에게 금고형을 선고한 판결을 규탄하기 위한 궐기대회를 개최했었다.
이날 궐기대회에는 국민의당 김삼화 의원, 바른정당 박인숙 의원, 대한의사협회 추무진 회장, 대의원회 임수흠 의장, 대한개원의협의회 노만희 회장, 서울시의사회 김숙희 회장, 경기도의사회 현병기 회장, 충청남도의사회 박상문 회장, 전라남도의사회 이필수 회장, 대한전공의협의회 기동훈 회장 등 내외빈을 포함, 1000여명의 의사들이 참석했다.
여기에 직선제 산의회는 항소심 첫 공판을 앞두고 의료계와 국민이 작성한 탄원서를 제출했다. 직선제 산의회가 제출한 탄원서는 산부인과 회원용과 타과 의사용으로 나눠 따로 받았으며, 국민이 서명한 것을 포함해 5025장에 달한다. 이와 더불어 의사회는 ▲각 시도, 각과 의사회 성명서 ▲‘자궁 내 태아사망’과 관련한 언론 보도 내용 등을 함께 제출했다.
김동석 회장은 “이번 사건은 한 명 의사의 행위에 관한 사법판단이 아닌 대한민국 분만의사 전체에 관한 사법판단으로 사명감으로 버티고 있는 우리나라 산부인과 의사들이 좌절해 분만현장을 떠나고 분만 인프라가 붕괴되지 않도록 모든 현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결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 강조했다.
의협도 항소심 재판부에 1심 재판결과의 부당함을 알리고, 회원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기 위해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그 결과, 전국 각지에서 모인 8035명이 연명한 탄원서를 받아, 법원에 제출했다.
또한 추무진 회장은 지난 10일 산부인과 의사 A씨를 방문해 격려 및 위로하고, 소송비 등 소정의 비용을 직접 전달하기도 했다.
이 사건에 대해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의료계에서 우려했던 중재원 판단이 형사재판에 영향을 준 사례”라며 “이런 판결로 결국 산과, 중증질환 등에서 열심히 일하는 의사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항소심에서 올바른 판결이 나오길 간절히 바란다”고 강조했다.
현재 자궁 내 태아사망 사건은 지난 8일 결심됐으며, 내년 1월 10일 판결이 선고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