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4-04-24 23:04 (수)
219. 졸업(1967)
상태바
219. 졸업(1967)
  • 의약뉴스
  • 승인 2016.05.02 09: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이클 니콜스 감독의 <졸업>(원제: The Graduate)을 다 보고 나서 느낀 감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미쳤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잘 만들었다는 것이다.

상반된 것 같은 모순의 감정이 동시에 든 것은 ‘크레이지 무비’도 ‘웰 메이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숱한 놀라운 영화를 봐 왔지만 <졸업>을 능가하는 호러 물은 아직 보지 못했다. <사이코>나 <스크림> 정도는 ‘얼라’ 들의 장난이다.

사람들은 멜로 혹은 로맨스나 코미디라고 이 영화를 분류하지만 나는 단언컨대 공포영화의 범주에 넣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그만큼 충격의 강도가 크다는 말이다.

영화가 나온 지 물경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공포 그 자체인 것은 한 남자가 엄마와 그 딸과 동시에 섹스를 할 수 있느냐하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는데 이 정도도 이해 못하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의 소유자라고 비난해도 어쩔 수 없다. 현실에서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설정자체가 너무 괴이 하지 않은가 하고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글을 쓰는 지금은 그런 주제를 혐오하면서도 어쩜 그렇게 잘 만들었지 하는 흐뭇함이 드는 것은 도무지 설명할 수가 없다.

 

영화를 칭찬해야 하는 이 순간은 속된말로 미치고 팔딱 뛸 수밖에 없다.

벤( 더스틴 호프만)은 막 대학을 졸업한 다음 달이면 21살이 되는 청년이다. 머리도 좋고 공부만 열심히 한 덕분인지 수석졸업의 영광과 함께 훌륭한 상을 수상하게 됐다.

한 마디로 장래가 촉망되는 ‘우리들의 영웅’이다. 넓은 정원에 수영장이 있는 아름다운 집의 상류층 자제이니 선물로 뚜껑이 열리는 이탈리아의 명품 '알파 로메오'의 붉은색 스포츠카를 받는다고 해도 이상스럽지 않다.

벤이 오자 집안은 축제 분위기다.

지인들이 몰려들고 파티가 열린다. 하지만 벤은 대학원에 진학할지 아니면 취업을 할지 미래를 결정하지 못해 조금 불안한 상태다. 그러니 파티도 시큰둥할 수밖에 없다.

그 틈새로 엄마 친구 가운데 제일 몸매가 좋은 로빈슨 부인( 앤 밴크로프트)이 가차없이 치고 들어온다.

쳐다보는 눈길은 불혹을 넘겼을 중년 여성답게 고혹스럽고 행동은 살만큼 산 사람답게 여유가 잘잘 넘쳐흐르며 내뱉는 말은 소년의 가슴을 뛰게 하는 소녀의 목소리다.

손을 들면 언제나 연기가 피어오르는 담배가 들려 있고 술을 좋아해서 마침내 알코올 중독자가 됐다. 그녀는 벤을 아들처럼 혹은 장난감처럼 소유물로 여기는 듯 자신만만하다.

그녀는 <대부>의 말론 브란도처럼 벤이 거절할 수 없는 제의를 한다.

손이 닿지 않으니 등의 지퍼를 열어 달라고. 수석 졸업생도 노련한 유부녀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 신세다. 둘은 호텔에서 만난다.

처음인 것 같은 벤을 능숙하게 리드하는 것은 로빈슨부인이 원하는 바다. 뭐든 처음이 어렵고 두 번째가 쉽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진리인 만큼 첫 섹스 후 이들은 매일 밤 호텔의 침실을 납작하게 만든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 달 간이나 밤마다 나가는 아들을 부모는 안쓰럽게 바라보지만 벤에게 그 시간은 인생에서 더 없이 소중하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 영원한 기쁨의 순간이다.

하지만 벤은 아직 어려 기쁨이 있다면 괴로움도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는다.

로빈슨 부인에게는 예쁜 딸 엘레인( 케서린 로스) 이 있다. 그것도 버클리에 다니는 명석한 딸이다. 로빈슨 부인을 제외한 양가 부모들은 둘이 데이트하기를 종용한다.

로빈슨씨는 한 술 더 떠 태어나면서부터 봐온 아들처럼 여기는 벤이 딸과 맺어 지기를 원한다. 속이 타들어 가는 로빈슨 부인은 죽을 맛이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마침내 벤과 엘레인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결론을 해피 앤딩이라고 해야 할지 비극이라고 해야 할지 나는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일부는 벤이 엘레인의 엄마를 버리고( 벤과 로빈스 부인의 관계는 사랑의 감정이 엘레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한 것이 사실이다. 둘의 관계는 거의 전부 섹스만으로 연결돼 있다. 그러니 대화가 거의 없고 침대에 누우면 이제 할까? 하면서 불을 끄는 것이 먼저다. 로빈슨씨에게 모든 것이 탄로 났을 때 벤은 부인과 나와의 관계는 일상적으로 하는 악수와 같은 것인데 왜 이혼하려 하느냐고 되묻는 데서도 알 수 있다.)

당신의 소중한 딸과 만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겻으나 함께 도주 했으니 행복한 결말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고 부모가 특히 로빈스씨가 이 사실을 알고 이혼하려고 하니 비극이라고 할 수도 있다. 희비극을 떠나 ‘개판’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영화는 그렇게 끝난다. 두 주인공 남녀는 달리는 버스 안에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이 순간 벤은 드디어 어항에 갇힌 물고기 신세를 벗어난 것일까.

벤과 엄마와의 관계를 아는 엘레인의 환한 표정은 도대체 무슨 의미이지? 엄마와의 경쟁에서 사랑을 쟁취한 자의 미소라고 해야 할까. 그 미소 속에는 추악함과 사랑스러움이 함께 들어있으니 환장할 노릇이다.

국가: 미국

감독: 마이클 니콜스

출연: 더스틴 호프만, 앤 밴크로프트, 캐서린 로스

평점:

 

 

: 영화는 시대의 거울이다. 이 영화가 나온 1967년 미국은 베트남 전쟁의 진흙탕 속으로 깊숙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전쟁에 신물이 났고 죽음이 일상이 되던 시절 상류층은 물론 중산층 가정은 프리섹스로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을 느껴보려는 몸부림이 일었다.

말하자면 섹스광풍이 불고 있었다고나 할까. 그런 상황을 감독은 젊은 남자의 방황과 부인의 욕망 그리고 딸의 순수와 애욕을 곁들여 영화로 녹여냈다. 전반부는 어머니와 놀아나고 후반부는 딸과 놀아나는 단순 한 줄거리가 이처럼 여운이 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 시작과 함께 대표곡인 Sound of Silence에 이어 Scarborough Fair, Canticle, Mrs, Robinson 등이 고비마다 들여오는데 모두 주옥같은 곡들이어서 과연 이런 영화에 이런 노래가 어울리는 것이 가당키나 한 거냐는 물음이 저도 모르게 나온다.

멋진 다리 금문교를 나 홀로 질주할 때 어김없이 터져 나오는 노래는 꺼벙한 듯 아닌 듯 한 표정을 짓는 더스틴 호프만과 묘하게 어울리는 것 같으면서 아닌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노래 중 압권은 ‘미시즈 로빈슨’이다. 앞으로 이 노래를 들을 때면 예전과는 다른 감정이 일 것 같다. 하느님이 당신을 축복하기를 원하는 대신 아들 같은 벤 앞에서 긴 다리에 검은 스타킹을 신거나 벗는 장면이 떠올라 축복하든지 말든지 아무래도 괜찮겠다 싶다.

어쨌든 영화와 음악은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줬다. 더스틴 호프만은 이 영화로 데뷔하자마자 스타가 됐고 이후 <빠삐용>( 1973) <레인맨>(1988) 등 숱한 어마어마한 영화에 주연을 맡으면서 세계 속의 거인으로(실제 키는 167센티미터) 우뚝 섰다.

어떤 하드코어 영화보다도 더 하드한 영화가 15세 관람가다. (이 또한 놀랍지 아니한가.) 아카데미에서 최우수작품상 후보에 오르고 최우수 감독상을 받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