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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집터, 그 사이로 태양은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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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집터, 그 사이로 태양은 뜬다
  • 의약뉴스
  • 승인 2005.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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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스리랑카 긴급의료봉사단 지원 박지현 약사
온 세계가 크리스마스 축제에 들떠 있을 때 지구촌 한곳에서는 거대한 지진해일로 수십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서남아시아 사람들에게 ‘Happy Christmas'는 먼 곳의 일이었다. 폐허로 변한 집과 유명을 달리한 가족 곁에서 슬픔을 삼키는 것이 그들의 몫이었다.

TV속에 비쳐지는 서남아시아 지역은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차마 앉아서 지켜볼 수조차 없었다. 체계적인 지원도 중요하지만 긴급구조는 촌각을 다투는 일이었다. 박지현 약사(28)는 그렇게 스리랑카행을 결심했다. 내 손으로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할 수 있다면. 이유는 간단했다. 박 약사는 스리랑카 1진 긴급의료지원단 가운데 유일한 약사였다. 전쟁터의 난민지원보다 훨씬 어려운 게 재난지원이다. 넋 놓고 안타까움만 표시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지체할 시간도 없었다.

<사진1>

◇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지난달 29일. 박 약사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적십자의 한 지인이 지진해일 지역 의료지원단에 꼭 참여하고 싶다는 그의 뜻을 자원봉사단체인 굿네이버스에 전달했고, 굿네이버스의 허락(?)이 떨어진 것이다. 그는 집에 오자마자 짐을 꾸렸다.

밤새 뒤척였다. 부모님의 만류 때문이었다. 또다시 재난이 닥칠지 모를 생면부지의 땅에 딸을 보내는 것이 못내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그러나 박 약사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는 스스럼없이 말했다. “제가 평소에 이런 사고를 많이 치거든요." 그는 다음 날 스스로 선택한 ‘고난의 길’을 향해 출발했다.

◇폐허의 땅 ‘마따라’

싱가폴에서 8시간 기다린 끝에 스리랑카 콜롬보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습한 기운이 온 몸을 감쌌다.

"우리는 이 곳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박 약사는 의사 2명, 간호사 1명, 굿네이버스 직원 3명과 함께 승합차에 몸을 실었다. 이제 마따라 지역으로 가야 한다. 스리랑카의 남쪽 해안에 위치한 곳이다. 스리랑카에서는 두 번째로 피해가 심한 곳이다. 그들은 장장 6시간동안 차를 달렸다.

마을은 폭격을 맞은 것처럼 형체를 가늠할 수 없었다. 시멘트와 벽돌 등의 잔해만이 그 곳이 집터였다는 증명해 주었다. 마따라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닷가에 집을 짓고 생활한다. 자연 피해는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박 약사 일행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수많은 부상자들이었다. 지진해일로 사망한 시신들은 일단 수습된 상태였다.

"시신은 없었지만 곳곳에서 악취가 코를 찔렀다. 의료캠프를 설치하자마자 온 몸에 찰과상과 근육경직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몰려들었다. 그제야 "아, 내가 여기 오긴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방금 전, 사지에서 빠져나온 모습이었다. 해일에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온갖 것을 부여잡고 버티다 온몸의 근육이 경직되고 상처 투성이었다. 바닷가에 위치한 습윤 지역이라 천식 환자와 곰팡이 환자도 많았다. 또 환경 변화로 평소 앓던 지병이 악화된 환자들까지 하루 500여명이 밀려들었다."

<사진2>

다행스러운 것은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구호물품이었다. 박 약사가 스리랑카에 있는 동안 한국은 공군 수송기로 구호물자를 전달하기도 했다.

"그날 비행장에 가서 수액세트를 받아왔는데 운반 도중에 승합차가 주저앉아 애를 먹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작고 낡은 봉고차에 2.5톤이나 되는 짐을 실었으니 남아날 리가 없다."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긴급의료단은 의료지원 활동을 게을리 할 수 없었다. 현지 의료진들은 모두 어디론가 사라졌고, 언제 수인성 전염병이 나돌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환자진료에서 그치지 않고 방역 작업도 함께 실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방역 작업에 필요한 약품이 없어 어렵게 구한 방역기가 무용지물이 돼버렸다.
박 약사는 스리랑카 현지에는 방역 약품 뿐 아니라 비타민과 정장제, 아미노산과 철분제제 등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사진3>
◇ 도전 서바이벌(?)과 같았던 현지생활

박 약사는 지난 달 30일부터 이달 6일까지 총 7일 동안 마따라에 머물며 의료지원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그를 포함한 의료단은 열악한 현지 상황 때문에 마땅한 숙소도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해야 했다. 허름한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은 것 빼고는 남의 집을 전전했다. 그는 그곳에서의 생활이'도전 서바이벌'의 연속이었다고 웃으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한국에서는 새해맞이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을 시간에 모르는 집에 쳐들어가 재워달라고 생떼를 부렸다. 마음씨 착한 현지인의 허락을 받아 약 박스를 정리하고는 좀 쉬려고 앉았더니 머리위로 뭔가 툭 떨어졌단다. 소스라치게 놀라 바라보니 도마뱀이었다고 했다. 그는 새해 설계를 도마뱀과 함께 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 아이보완 그리고 이스뚜띠

인터뷰 도중 기자는 박 약사에게 그 곳 생활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이미지 하나를 말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얘기를 시작했다.

"그 곳 사람들은 비록 현재 너무 힘든 상황에 처해있지만 행복지수로 따지자면 우리나라보다 더 높은 지수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거 하루에 세 번 드세요'하면 두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이스뚜띠(고맙습니다)와 아이보완(축복합니다)을 연발했다. 항상 그랬다. 지금은 폐허일지라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그들의 웃음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박 약사는 해질 무렵 이동 중에 차안에서 본 노을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바닷가, 허물어진 집터 사이로 어스름하게 지는 태양과 바다를 보며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지진해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박 약사는 곧 "그렇게 아름다운 곳이기 때문에, 또 그렇게 선한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스리랑카는 빠른 시일 안에 예전의 아름다움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4>

◇약사들도 그런 일(?)을 한다

맨 처음 박 약사가 긴급의료단에 지원했을 때 주변에서는 이런 반응을 보였다.

"약사들도 그런 일 해?"

가볍게 던진 말이었지만 박 약사는 우리나라 약사들이 사람들에게 왜 이런 인식을 심어주게 됐는지 너무나 실망스러웠다고 전했다.

그는 의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긴박한 곳에서 약사들이 할 일이 많다고 강조했다.

"스리랑카 현지에서 항생제 시럽이 무분별하게 다뤄지는 것을 봤다. 항생제 시럽은 냉장보관하지 않으면 상온에서 쉽게 변질되는 약품이라 잘못 다룰 경우 간독성을 일으키는 등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의약품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그것을 다루는 것을 보며 약사들의 역할이 절실하다는 것을 느꼈다"

박 약사는 대한약사회 차원의 긴급구조 매뉴얼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국립의료단 외에 대한약사회만의 독립적인 구호단체를 만들고 긴박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곧바로 지원할 수 있도록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는 내부적인 문제만이 아닌 외부까지 눈을 돌릴 때다."

인터뷰 말미에 기자는 이런 기회가 다시 생긴다면 갈 수 있겠냐고 질문했다. 그의 대답은 “당연하다”였다. 현지에 있을 때는 너무 힘들었지만 그들을 보며 가슴 뭉클함을 느꼈고 그런 감정은 쉽게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중독성이 있다고 했다.

‘가난한 환자들’은 당분간 긴급의료지원이 필요한 곳에서 그를 계속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내가 필요로 하는 곳은 언제든 달려가겠다. 그전에 전쟁과 재난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의약뉴스 박미애 기자(muvic@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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