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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6 00:17 (금)
144.유로파(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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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유로파(1991)
  • 의약뉴스
  • 승인 2014.07.22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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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봐도 이해하는 영화가 있고 제대로 봐야 고개를 끄덕이는 영화가 있다.

한 번 보면 살아생전에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영화가 있고 기회가 되면 두 번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유로파'(원제:Europa)는 후자에 속한다. 그럴 수만 있다면 만드느라고 고생했다고 감독의 어깨를 만저주고 싶다.

1945년 전후 독일.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어나듯이 폐허의 도시에서도 생명이 꿈틀 댄다. 독일계 미국인 청년 케슬러(장 마크 바)는 뜻한바 있어 조국으로 돌아온다.

어려운 때 미국으로 떠나 남은 가족을 고생시켜 동생을 싫어하는 큰 아버지는 그래도 친척이라고 조카를 위해 일자리를 마련해 놓았다.

 

철도회사 침대칸 직원이 그의 일터다. 케슬러는 프랑크푸르트, 베를린, 브레멘 등을 오가면서 승객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사건을 접하고 폐허를 보고 고통을 느끼고 사랑을 찾는다.

나레이터(막스 폰 시도우)가 하나에서 열까지 숫자를 세면서 상황을 설명하면 관객들은 그 목소리에 집중하게 되고 민감해지고 마침내 팔과 어깨에 전해진 온기가 온몸으로 퍼진다.

어떤 때는 열을 다 세야 하지만 다급하면 셋만 세도 주인공은 다른 장소에서 다른 상황과 맞닥트린다.

상황은 녹록치 않다.

치안은 미군 중심의 연합군이 담당하고 있으나 나찌 잔당들의 저항도 간간히 이어진다.

차장 밖으로 잔당의 무리인 ‘베어울프’의 목을 매단 두 구의 시신이 보인다. 케슬러는 묻는다.

“저게 뭐죠?”
“파르티잔(편집자주: 유격전을 수행하는 비정규군. 게릴라)이죠. 미군들이 처형한. 전쟁은 끝났으나 저항이 끝난 것은 아니다” 라는 카나리나(바바라 스코와)의 대답이 돌아온다.

기차는 달린다. 들으면 좋은 음악에 맞춰 계속 해서 달린다. 화면은 흑백이다. 두 레일 사이로 역동적인 빛이 새어든다. 나레이터는 또 숫자를 센다.

“셋을 세면 당신은 전갈을 받을 것이다.”

전갈은 초대장이다. 카나리나의 아버지이면서 철도회사 사장( 유노 키에르)은 케슬러에게 호감을 보인다. 회사를 국제적으로 만들길 원해서이다. 식사를 하는 중에도 연합군의 폭파는 계속된다.

다른 독일군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크레인도 부수고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없앤다. 그런 와중에 아버지는 우편물을 받고 심각한 표정으로 목욕탕으로 들어간다.

면도를 하는 칼날이 섬뜩하다. 얼굴을 긋고 손목을 자르고 다리를 찌른다. 그 때까지 흑백이었던 화면은 붉은 색으로 변해 피는 더 선명하다. 의심과 협박을 받은 사장이 자살을 한 것이다.

프랑크푸르트의 10월은 비가 자주 내린다. 그 시간 케슬러와 카나리나는 사랑을 하고 있다. 카나리나는 고백한다.

“나는 베어울프라고. 아니 베어울프였다고. 하지만 이제는 다 끝났다고.”

케슬러는 다시 기차에 있다. 누군가 그에게 어린 조카라며 두 아이를 부탁한다. 13번 객실 침대 1등 칸에는 프랑크푸르트 신임 시장 부부가 타고 있다. 시장이 된 것을 자축하기 위해 샴페인을 연거푸 주문한다. 

이들은 아이들을 귀여워한다. 보안검색을 위해 헌병들이 기차에 올라탄다. 그 아이 중 하나가 품속에서 권총을 꺼낸다. 기차는 다리 위를 통과한다.

한 발, 두 발.

입안의 선명한 붉은색이 물방울처럼 유리창에 튄다. 죽음 앞에서 흑백은 다시 컬러로 바뀐다.

케슬러는 침대칸의 관리인이 되기 위해 세 달 안에 치러야 하는 실기시험으로 바쁘다. 구두를 닦고 침대시트를 정리하는데 호흡은 가쁘고 이마는 식은땀이 흐른다. 관리인은 다그치고 기차는 다시 다리 위를 지난다.

비는 눈으로 변하고 새해아침 결혼한 케슬러는 카나리나의 부드러움 속으로 빨려 든다.

하지만 케슬러는 이내 옷이 땀으로 젖고 두려움에 몸이 떤다. 기차를 폭파하라는 지령이 그에게 떨어진 것이다.

폭약을 설치한 케슬러는 그러나 무고한 많은 생명이 죽을 것을 염려해 터지기 직전 시계를 멈추지만 파괴를 멈출수는 없다. 케슬러는 강물에 빠지고 열을 세면 죽는다. 다시 태어나 자유를 꿈꾸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미국을 비판한다. 그렇다고 그게 주가 아니다. 나찌를 옹호하는 것 같으나 그 역시 이 영화를 관통하는 힘은 아니다. 그렇다면 신부가 용서하지 않는 다음과 같은 자들에 대한 심판인가.

“믿지 않는 자들과 어느 편도 아닌 미온적인 인간."

카나리나가 케슬러를 비판할 때 사용한 이상주의자에 대한 경고인지도 모른다. 해석은 관객 각자의 몫이다.

국가: 독일
감독: 라스 폰 트리에
출연: 장 마크바, 바바라 수코와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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