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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필동의 골목길, 여관의 불빛이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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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필동의 골목길, 여관의 불빛이 반짝인다
  • 의약뉴스
  • 승인 2009.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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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리에만 나오면 항상 마음의 평화를 느낀다.
모든 속박으로부터의 해방감을 느낀다.

행복한 자유를 느끼며 뿌듯한 포만감을 느낀다.
달콤한 삶의 환희가 솟구친다.

언제나 거리를 가득 메운 군중 속에서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 어깨를 드리우고 군무에 동참하는 즐거운 행진은 언제나 짜릿한 생명의 희열을 느끼게 해준다.

옛날 순이와 걸을 때는 봄비가 부슬부슬 내렸었는데
오늘은 한 여름 안개비가 비단결같이 부드럽게 우리들을 감싸준다.

우리는 유네스코 빌딩 앞을 지나 시립극장 앞 송옥 양장점을 끼고 우측으로 돌아 완만한 언덕 길가의 제일백화점 앞을 거쳐 명동거리를 빠져 나와 퇴계로 길을 접어 들었다.

피곤할텐데 은혜씨는 아무 말 없이 하느적 거리며 내 몸에 의지한 채 걷고 있었다.
오늘 하루는 마음먹고 내 비위를 맞추어 주고 싶은 모양이다.

우리는 쉴 곳을 찾았으나 여름 해가 길어서 아직 한 낮인지라 숙소를 찾는 대신 대한극장에 들어갔다. 영화는 안중에도 없고, 우리는 극장 푹신한 의자에 나란히 앉자마자 둘이 뜨겁게 껴안은채 죽은듯이 꼼짝 않고 굳어 있었다.

처절한 포옹, 어깨와 어깨가 함께한 밀착은 다른 어떠한 동작도 허용치 않았다.
오직 쿵쾅거리는 서로의 심장 고동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내가 그렇게 애타게도 갈구했던 어머니의 뜨거운 포옹, 그리고 그 속에 마음껏 울고 싶었던 포옹이 아니련가?

어느새 영화가 끝나자 극장 실내 등이 환하게 켜졌다.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극장 밖으로 나왔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안개비가 감쪽같이 개이고,
비 온 후라서인지 시원한 바람이 우리의 후줄근한 속살을 상쾌하게 건조시켜 준다.
거리엔 어둠이 깔리고 고층 건물마다 네온사인의 빛이 화려하다.

우리는 숙소를 찾았다. 필동 골목에 아늑한 여관 간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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