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카르멘>은 전쟁의 혹독한 소용돌이를 불 밝혀 비추면서 전쟁터의 이글거리는 삶과 죽음을 되살려냈다. 감각하기 어려운 동시대의 속도 전쟁에 비하자면, 이 작품이 보여주는 전쟁은 육박해오는 그 걸음걸이가 너무도 실감나서 아이처럼 울먹일 정도였다. 행위와 색감, 가면(假面) 등의 상징적 표현들이 말보다 더 예리하게 전쟁의 폭력을 증거한다.
무대 전면에 금속성의 뾰족탑을 두 개 세우고, 탑과 탑 사이로 문을 달아 무대 위에서 또 다른 공간으로의 진입이 가능함을 예고했다. 삼면을 관객석으로 구성하고, 무대 위는 되도록 비워두어서 사건 중심으로 잇따르는 장면들이 탄력적으로 변화할 수 있었다. 키 큰 무쇠다리를 딛고 선 병사 두 명은 암흑 속에서 탐조등과 채찍을 이리 저리 휘두르며 폭압의 상징이 되었고, 순간 탐조등 불빛에 눈이 부셔 몸을 움츠리던 관객들은 모두 전쟁터에서 핍박받는 비운의 존재들이 되었다. 관객석 사이사이에서 무대로 불려나간 배우들은 약 40분 동안 무대에서 삶과 죽음을 오가는 전쟁포로가 될 것이었다. 시작 시간은 밤 아홉시였다. 어둠이 짙었다. 공연이 진행되던 어느 즈음, 어둠을 사르는 불빛 속에서 흙의 잔해가 날리고 있었다. 늦은 밤 펼쳐지는 야외공연의 특성을 십분 살리고 있었다.
다리를 잃고 눈을 잃은 상이군인들의 다리는 압제자의 다리와 똑같은 금속성의 긴 장대인데도, 어느새 앙상하고 볼품없는 다리들로 투영된다. 불행하고 슬픈 운명은 전쟁터의 그 누구도 비껴가지 않는다. 비우로 포드로지 극단은 전쟁터의 ‘배우’들에 대한 상상까지도 무대화한다. 녹색의 천이 무대를 가로지르고, 천을 따라 종종 걸음을 걷는 사람들은 전쟁 때문에 마지막이 되어버린 공연 소식을 애달프게 알린다. “마지막 티켓입니다. 폐허가 된 극장에서 열리는 공연의 마지막 티켓입니다. 배가 고파요. 밥 좀 주세요.” 배우들이 전쟁터라는 극 안에서 마지막 공연을 홍보하는 ‘배우’를 연기하는 순간, <비운의 카르멘>은 전쟁터의 절망을 극 형식의 안에서 바깥으로 도저하게 밀어내면서 배우들의 메타적인 시점을 공연으로 육화해낸다. 곧 이어 죽음의 사신이 뾰족탑의 문을 열고 섬뜩한 해골의 얼굴로 등장한다. 삼지창으로 빈 옷가지들을 휘엉휘엉 허공에 내버린다. 모두에게 짐 지워졌던 비운은 무력한 시체들의 옷가지로 남아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불타버린 나무 기둥에 죽은 자의 명패를 달아주듯이, ‘전쟁’을 십자가에 못 박듯이 망치질한다. 하나의 행위에 겹으로 실리는 다양한 맥락이 공연의 주제를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금속성의 뾰족탑도 마침내 불타오르고 은빛 종소리가 녹두광장에 울려 퍼졌다. <비운의 카르멘>은 ‘전쟁’을 불사르는 한 판의 의식이라도 치룬 것처럼 그렇게 끝이 났다. 꼼꼼하고 안정된, 굵직한 사건 중심의 구성은 군더더기 없는 행위와 색감, 강렬한 상징적 표현들을 만나 야외공연의 역동성을 살려냈다. 공연 초반부에 울려 퍼지던 내레이션이 문득 떠오른다. 전쟁이 전할 수 있는 유일한 메시지를 찾으라면, 아마도 별 망설임 없이 저 내레이션을 말할 것이다.
“머물 수 있는 곳은 여기에 없다. 그 어느 것 하나도 우리의 것은 아니었다.”
<비운의 카르멘>이 1998년 과천 마당극 축제, 2002년 남양주 세계 야외공연 축제, 그리고 2007년 정읍 황토현 동학축제까지 총 3번이나 한국에 초청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보스니아 내전의 비극을 담아 1993년에 처음 만들어진 공연이다. 표층 아래에 늘 분단 현실이 마그마처럼 끓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슬픈 운명의 카르멘이 입은 붉은 옷과 덧입는 붉은 포도주(피)는 관객들의 잠자던 육감을 깨웠을 것이다. 잠에서 깬 감각이 꼭 정치․사회․역사적 맥락에 가 닿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감각은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가 선 자리를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