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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십자가에 못 박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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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십자가에 못 박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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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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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리뷰] 폴란드 비우로 포드로지 극단의 '비운의 카르멘'

▲ 2007 황토현 동학축제 특별 초청공연 '비운의 카르멘'
2007년 5월 10일(목)에 시작되어 13일(일)에 막을 내린 ‘황토현 동학축제’(총감독 임진택)는 그간 동학농민혁명 전승 기념제로 운영되어 왔었다. 올해부터는 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축제의 형식을 마련하면서 폴란드 비우로 포드로지 극단(Teart Biuro Podrozy)의 <비운의 카르멘>(5.10-5.12, 정읍 황토현 녹두광장, 밤9시)을 특별 초청했다. 동학사상의 외연을 평화라는 좀 더 보편적 주제로 넓히고, 축제 참여자들의 관심을 돋운다는 면에서 <비운의 카르멘>을 선택한 것은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비운의 카르멘>은 전쟁의 혹독한 소용돌이를 불 밝혀 비추면서 전쟁터의 이글거리는 삶과 죽음을 되살려냈다. 감각하기 어려운 동시대의 속도 전쟁에 비하자면, 이 작품이 보여주는 전쟁은 육박해오는 그 걸음걸이가 너무도 실감나서 아이처럼 울먹일 정도였다. 행위와 색감, 가면(假面) 등의 상징적 표현들이 말보다 더 예리하게 전쟁의 폭력을 증거한다.

무대 전면에 금속성의 뾰족탑을 두 개 세우고, 탑과 탑 사이로 문을 달아 무대 위에서 또 다른 공간으로의 진입이 가능함을 예고했다. 삼면을 관객석으로 구성하고, 무대 위는 되도록 비워두어서 사건 중심으로 잇따르는 장면들이 탄력적으로 변화할 수 있었다. 키 큰 무쇠다리를 딛고 선 병사 두 명은 암흑 속에서 탐조등과 채찍을 이리 저리 휘두르며 폭압의 상징이 되었고, 순간 탐조등 불빛에 눈이 부셔 몸을 움츠리던 관객들은 모두 전쟁터에서 핍박받는 비운의 존재들이 되었다. 관객석 사이사이에서 무대로 불려나간 배우들은 약 40분 동안 무대에서 삶과 죽음을 오가는 전쟁포로가 될 것이었다. 시작 시간은 밤 아홉시였다. 어둠이 짙었다. 공연이 진행되던 어느 즈음, 어둠을 사르는 불빛 속에서 흙의 잔해가 날리고 있었다. 늦은 밤 펼쳐지는 야외공연의 특성을 십분 살리고 있었다.

▲ 군인들이 카르멘에게 포도주를 흩뿌리며 유린하고 있다.
그 흙이 날리던 장면은, 남녀 한 쌍이 정착하여 살려고 땅을 일구어 집터를 마련한다는 압축된 장면이었다. 주전자에 물도 끓이고 빨랫줄도 내어 걸지만 모두 군인들에게 빼앗기고 만다. 이들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등장하는 남녀 모두, 사내들은 총에 맞아 죽고 여인들은 강간당한다. 붉은 원피스를 입은 카르멘은 군인들이 끼얹는 포도주에 젖어가면서 무기력하게 갇히고 만다. 카르멘을 유린한 뒤, 군인들은 저마다 제 품 속에서 애인 사진을 꺼내들고 관객들을 향해 자신의 애인이 얼마나 예쁜지 보라며 애틋한 자랑을 늘어놓는다.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를 통틀어 인간의 적진이 대체 어디인가를 묻는 겹의 연출이었다.

다리를 잃고 눈을 잃은 상이군인들의 다리는 압제자의 다리와 똑같은 금속성의 긴 장대인데도, 어느새 앙상하고 볼품없는 다리들로 투영된다. 불행하고 슬픈 운명은 전쟁터의 그 누구도 비껴가지 않는다. 비우로 포드로지 극단은 전쟁터의 ‘배우’들에 대한 상상까지도 무대화한다. 녹색의 천이 무대를 가로지르고, 천을 따라 종종 걸음을 걷는 사람들은 전쟁 때문에 마지막이 되어버린 공연 소식을 애달프게 알린다. “마지막 티켓입니다. 폐허가 된 극장에서 열리는 공연의 마지막 티켓입니다. 배가 고파요. 밥 좀 주세요.” 배우들이 전쟁터라는 극 안에서 마지막 공연을 홍보하는 ‘배우’를 연기하는 순간, <비운의 카르멘>은 전쟁터의 절망을 극 형식의 안에서 바깥으로 도저하게 밀어내면서 배우들의 메타적인 시점을 공연으로 육화해낸다. 곧 이어 죽음의 사신이 뾰족탑의 문을 열고 섬뜩한 해골의 얼굴로 등장한다. 삼지창으로 빈 옷가지들을 휘엉휘엉 허공에 내버린다. 모두에게 짐 지워졌던 비운은 무력한 시체들의 옷가지로 남아버린 것이다.                   

▲ 죽음의 사신이 시체의 옷가지들을 내던진다.
십자가의 네 꼭지점에 불이 타오르는 형상으로, 불기둥이 차례차례 무대 안으로 들어오면서 바닥에 방치되었던 옷가지들이 불기둥에 다시 걸린다. 이미 죽은 사람들이런가. 그들은 마치 장례를 치르듯이 옷들을 불사른다. 옷들은 불에 녹아 사라진다. 전쟁은 많은 것들을 사라지게 만든다. 그 무(無)의 황망한 향연이라도 열겠다는 듯이 죽음의 사신은 거대한 검은 색 깃발을 휘두른다. 검은 깃발이 희뿌연 어둠 속에서 바람을 타는 순간, 공연은 아득해지고 아무것도 없는 전쟁의 현실이 바람을 타고 내달려온다. 

사람들은 불타버린 나무 기둥에 죽은 자의 명패를 달아주듯이, ‘전쟁’을 십자가에 못 박듯이 망치질한다. 하나의 행위에 겹으로 실리는 다양한 맥락이 공연의 주제를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금속성의 뾰족탑도 마침내 불타오르고 은빛 종소리가 녹두광장에 울려 퍼졌다. <비운의 카르멘>은 ‘전쟁’을 불사르는 한 판의 의식이라도 치룬 것처럼 그렇게 끝이 났다. 꼼꼼하고 안정된, 굵직한 사건 중심의 구성은 군더더기 없는 행위와 색감, 강렬한 상징적 표현들을 만나 야외공연의 역동성을 살려냈다. 공연 초반부에 울려 퍼지던 내레이션이 문득 떠오른다. 전쟁이 전할 수 있는 유일한 메시지를 찾으라면, 아마도 별 망설임 없이 저 내레이션을 말할 것이다.

“머물 수 있는 곳은 여기에 없다. 그 어느 것 하나도 우리의 것은 아니었다.”

<비운의 카르멘>이 1998년 과천 마당극 축제, 2002년 남양주 세계 야외공연 축제, 그리고 2007년 정읍 황토현 동학축제까지 총 3번이나 한국에 초청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보스니아 내전의 비극을 담아 1993년에 처음 만들어진 공연이다. 표층 아래에 늘 분단 현실이 마그마처럼 끓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슬픈 운명의 카르멘이 입은 붉은 옷과 덧입는 붉은 포도주(피)는 관객들의 잠자던 육감을 깨웠을 것이다. 잠에서 깬 감각이 꼭 정치․사회․역사적 맥락에 가 닿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감각은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가 선 자리를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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