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뉴스]
상처를 방치하면 흉터가 남는다.
혈액암 환자에게 동종조혈모세포이식은 양날의 검과 같다. 완치의 길을 열어주기도 하지만, 이면에는 심각한 합병증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
특히 동종조혈모세포이식 환자에서 흔하게 발생하는 이식편대숙주병(Graft-versus-host reaction or disease, GVHD)은 자칫 심각한 장애를 유발하거나, 심지어는 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실제로 힘겨운 항암치료를 넘어 동종조혈모세포이식을 통해 혈액암을 이겨내고도, 이식편대숙주병으로 평생 장애가 남거나 결국에는 사망, 허망한 상황에 놓이는 환자가 적지 않다.
치료 옵션도 많지 않아서 일부 JAK 억제제가 이식편대숙주병에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기 전까지는 만만치 않게 부작용 부담이 큰 스테로이드에 의존해야 했다.
그나마 JAK 억제제가 등장해 스테로이드 치료의 부담을 덜었지만, 이 역시 적지 않은 환자가 사용할 수 없거나 효과가 제한적이어서 대안이 필요했다.
이 가운데 지난해 8월, 최초로 이식편대숙주병 치료를 위해 개발된 표적치료제 레주록(성분명 벨루모수딜)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아 패러다임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레주록은 이전에 2~5가지 전신요법을 받은 만성 이식편대숙주병 환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ROCKstar 임상에서 빠르고 강력하며 지속적인 반응을 보였다.
혈액암 치료의 양날의 검, 동종조혈모세포이식에서 불필요한 날을 보다 무디게 만들 새로운 무기가 등장한 것.
아직 건강보험급여는 적용되지 않아 사용례는 많지 않지만, 실제 임상진료 환경에서 치료 옵션을 소진한 이식편대숙주병 환자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에 의약뉴스는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김희제 교수를 만나 이식편대숙주병의 질병 부담과 레주록의 임상적 가치를 조명했다.

◇주요 장기 공격하는 이식편대숙주병, 예측 불가
이식편대숙주병은 동종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은 환자에서 발생하는 중증 자가면역질환으로, 기증받은 면역세포가 환자의 조직을 이물질로 인식해 공격하면서 발생한다.
김희제 교수는 “동종조혈모세포이식은 주로 혈액암에서 시행하는 특수한 치료로, 특히 급성백혈병 환자의 경우, 이식 전처리로 고강도의 항암방사선치료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정상 조직이 손상되고 세포들이 다치거나 사멸하는 일이 발생한다”면서 “이 과정에서 많은 체세포 및 면역세포가 다양한 신호전달물질을 분비하는데, 이처럼 복잡한 면역생리학적 변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식이 이루어지면 공여자의 세포와 환자의 세포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공여자의 정상 면역세포는 본래 익숙했던 체내 조건과 전혀 다른 환자 체내 미세환경에 놓이게 돼 환자의 세포조직들에 대한 강한 면역학적 반응을 일으킨다”면서 “특히 공여자 세포는 환자의 세포와 비교해 매우 건강하고 면역 활성도가 높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환자의 암세포뿐 아니라 정상 조직까지 공격하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바로 이식편대숙주병”이라고 설명했다.
이식편대숙주병이 발생하면, 피부, 폐, 간, 눈 등 주요 장기를 동시다발적으로 침범해 전신 합병증을 유발, 주요 장기의 비가역적 손상과 기능 저하로 이어질 수 있으며, 심각한 경우 이식편대숙주병으로 인해 사망할 수도 있다.
김 교수는 “공격은 피부, 점막, 위장관, 간, 폐, 결체조직 등 다양한 장기에 발생하며, 어느 장기를 얼마나 공격하는가에 따라 증상과 중증도가 달라진다”면서 “이 반응은 예측할 수 없고 무작위적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식편대숙주병은 전 세계적으로 전체 이식 환자의 약 70~80%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가운데 중등도 이상의 증상을 보이는 환자, 즉 중등증~중증으로 분류되는 환자가 전체의 30% 이상으로, 환자 3 명 중 1 명은 심각한 수준의 이식편대숙주병을 경험하게 된다”면서 “국내에서도 매년 약 1900~2000건의 동종조혈모세포이식이 시행되고 있으며, 그 중 약 50%가 급성 또는 만성 이식편대숙주병으로 진단되고 있고, 이 가운데 약 15~20%의 환자, 즉 연간 약 150~200명은 중증 단계까지 진행되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전했다.
실제로 “현재도 국내 전문병원에서는 이식 후 5~10년 이상 지난 환자들의 상당수가 만성 이식편대숙주병으로 장기 면역억제제 투약을 위해 외래 진료를 받고 있다”면서 “이 가운데 일부는 여전히 중증 이식편대숙주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으며, 이로 인해 결국 사망하는 환자도 증가하게 된다”고 부연했다.
◇이식편대숙주병, 발병 시점에 따라 예후도 다르다
이식편대숙주병은 발병 시점을 예측하기가 어렵다. 빠르면 동종조혈모세포이식 후 수일 내에 발병하기도 하지만, 일부 환자는 수년이 지나서야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
김 교수는 “이식편대숙주병은 급성과 만성으로 나뉘며, 일반적으로 이식 후 100일 이내에 발생하는 경우를 급성 이식편대숙주병, 그 이후에 나타나는 경우를 만성 이식편대숙주병이라 한다”고 소개했다.
이어 보다 구체적으로 “실제 임상현장에서 이식편대숙주병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면서 “첫 번째는 급성 형태가 만성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경우이며, 두 번째는 급성 증상 없이 조용하게 지내다가 만성 시기에 갑작스럽게 발병하는 경우, 세 번째는 이식 후 100일 전후, 즉 급성과 만성의 경계 시점에서 급성과 만성의 양측성으로 발생해 급격히 만성으로 악화되는 형태로, 급성 이식편대숙주병이 발생한 이후 그 반응이 이어져 만성으로 이행되는 경우가 가장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 “전 세계적으로 널리 인정되는 표준화된 프로토콜에 따라 이식을 진행하더라도, 급성 이식편대숙주병은 전체 환자의 약 30~40%, 만성 이식편대숙주병은 절반가량의 환자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식편대숙주병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 환자도 일부 있다”면서 “대체로 급성 이식편대숙주병의 시기는 약 3개월로 짧은 편이며, 경과가 조용하게 지나가는 경우도 많다”고 부연했다.
그나마 급성 이식편대숙주병은 예방 및 선제적 치료가 발전, 최근 들어서는 가파르게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전언이다.
그는 “급성 이식편대숙주병의 발생률은 최근 10~15년 사이 눈에 띄게 감소했다”면서 “과거에는 전체 환자의 절반 이상에서 발생했으나, 예방 및 선제 치료 조합의 발전 등을 통해 현재는 약 30% 정도로 줄었고, 향후에도 이러한 개선 추세는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만성 이식편대숙주병은 여전히 동종조혈모세포이식 환자들에게 큰 과제로 남아있다. 급성 이식편대숙주병 환자들에 비해 예후도 좋지 않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만성 이식편대숙주병으로 진행된 중등중~중증 환자는 다수에서 평생 치료가 필요하며, 이 시기에는 공격받는 조직과 장기가 급성기와는 사뭇 달라진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급성기에는 주로 피부, 장, 간 등 세 가지 장기가 주요 표적이 되는데, 만성기로 전환되면 이 장기에서 염증 반응이 어느 정도 조절되더라도 마치 자가면역질환과 유사하게 면역학적 공격 범위가 전신으로 확장된다”면서 “만성기에는 안구/구강 점막, 폐, 간, 뇌, 생식기뿐 아니라 관절, 근육, 인대 같은 결체조직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삶의 질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이식편대숙주병, 신체적ㆍ정신적 고통 동반
만성 이식편대숙주병은 대부분 평생에 걸쳐 관리가 필요하며, 장애를 동반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 환자의 삶의 질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신체적 고통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심각한 고통을 야기한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이식편대숙주병은 삶의 질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합병증”이라며 “특히 젊은 환자의 경우, 치료 이후 일상생활로의 복귀는 물론 생계에도 큰 영향을 받는 사례가 많다”고 밝혔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건강보험 제도가 잘 갖춰진 환경에서도, 끝이 보이지 않는 치료를 평생 지속해야 한다는 점에서 삶 전반에 깊은 고통을 남기는 질환”이라며 “이식편대숙주병 환자들이 겪는 고통은 신체적 어려움뿐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심리적 고통까지 함께 동반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식편대숙주병은 침범하는 장기에 따라 예후가 크게 엇갈린다. 특히 폐에 손상이 발생하면 회복이 어렵고 일상생활에도 상당한 제약이 따른다.
김 교수는 “만성 이식편대숙주병 환자 중 폐 숙주를 보이는 경우, 대부분 곧바로 중증으로 진행하는 양상을 보이며, 예후 또한 몹시 나쁜 편”이라면서 “피부, 점막, 간, 소화기계 등 다른 장기의 경우 중증으로 진행되더라도 지속 치료에 따라 일정 수준의 회복이 가능한 반면, 폐는 한 번 손상되면 기능을 되돌리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또한 “폐 숙주반응을 겪는 환자들은 숨을 쉬기 어려운 상태로 호흡곤란과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한다”면서 “일상생활을 유지하려면 폐활량이나 폐기량 등 주요 지표가 최소 70~75점은 나와야 하는데 동종조혈모세포이식건수가 많아질수록 결국 현재의 예방이나 치료법만으로는 40점 미만의 환자들이 증가하게 되며, 이 경우 대화나 간단한 일상생활은 가능하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기 때문에 삶의 질은 극도로 저하된 상태에 이르게 된다”고 설명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폐 기능이 저하된 환자는 자택에서도 산소통을 옆에 두고 생활해야 하며, 수면 중에도 지속적인 산소 공급이 필요해 심한 경우 병원에서 사용하는 산소호흡기를 24시간 착용한 채 생활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이처럼 폐 손상이 심화된 환자에게는 폐 이식을 권유하기도 하지만, 폐 이식 공여자 확보 문제 및 수술의 난이도와 위험성, 이식 후 관리 부담 등의 이유로 극소수의 환자들에게만 권유한다”고 전했다.
때로는 전신의 관절 주위에 침범, 섬유화를 일으켜 전신 경화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전신 경화증 역시 일상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합병증이다.
김 교수는 “전신 경화증은 중증 이식편대숙주병의 대표적인 양상 중 하나”라며 “관절의 경우, 관절 주변 피하지방조직을 비롯해 근육과 근막, 인대 등 연부조직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러한 조직에 전방위로 염증이 생기고 지속되면 결국 흉터 조직처럼 섬유화가 지속적으로 진행되면서 관절낭 및 주위 조직이 점차 단단하게 굳는 특징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로 인해 관절이 펴지지 않는 구축 현상이 발생하며, 관절을 부드럽게 움직이게 해주는 윤활액도 고갈되고, 주변 결합조직 역시 굳어지게 된다”면서 “스스로 이동이 불가능한 환자들은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고, 일상생활조차 보호자의 도움이 없으면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고 전했다.
피부나 점막에서 발생하는 이식편대숙주병도 가볍게 여길 수는 없다는 것이 김 교수의 지적이다. 발생 부위에 따라 삶의 질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
그는 “대표적으로 눈 점막과 누선(눈물샘)에 염증이 생기고 파괴되면 각막표면의 윤활 기능이 상실되고, 외부 자극과 병원균으로부터 눈을 보호하는 기능도 떨어지게 된다”면서 “이로 인해 환자들은 햇빛이나 바람, 미세한 먼지에도 과도하게 반응하게 되며, 심한 경우에는 눈을 제대로 뜨기조차 어렵게 돼, 선글라스 등 눈을 보호하는 장비가 없으면 일상적인 외출조차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침샘과 소화기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구강 내 건조감과 염증 및 연하장애, 소화불량증이 동반되고, 이로 인해 식욕이 급격히 저하된다”면서 “음식물을 삼키는 것도 어려워지면서, 환자들은 물을 조금씩 마시며 간신히 식사를 이어가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소화도 제대로 되지 않아 결국 유동식 위주의 식사로 전환하게 되고, 이로 인해 체중이 눈에 띄게 감소한다”면서 “일반적으로 설사병으로 체중의 5~10%만 줄어도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는데, 숙주병 환자들의 경우 체중이 20~30kg 이상 서서히 빠지는 경우도 있으며, 지방층이 사라지면서 피부 아래 뼈만 남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예방이 불가능한 이식편대숙주병, 숙주 반응에 따른 대응이 최선
동종조혈모세포이식이 혈액암 치료에 있어 가장 중요한 치료 옵션 중 하나이고, 동종조혈모세포이식에 있어 가장 흔하며 치명적이고 널리 알려진 합병증이 이식편대숙주병이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예방은 불가능하다.
김 교수는 “질병은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이식편대숙주병은 예방법을 찾기 매우 어렵다”면서 “조혈모세포이식술이 처음 시작된 60여 년 전부터 심한 이식편대숙주병의 예방은 가장 중요한 연구 주제 중 하나였고, 이에 지난 수십 년간 많은 연구가 이어져 제한된 조건 속에서도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예방법들이 개발되어 왔지만, 아직까지 이 질환을 완전히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식편대숙주병을 예방하는 것이 꼭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는 것이 김 교수의 지적이다.
그는 “백혈병, 림프종, 골수형성이상종양과 같은 암성 혈액질환의 경우, 이식 이후 공여자의 면역세포가 체내에서 아무런 반응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은 면역학적 암제거 작용이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며 “다시 말해, 일정 수준의 이식편대숙주병이 발생해야 공여자의 면역세포가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는 신호로 간주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혈액암 치료에서는 이러한 숙주병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며, 가장 이상적인 상태는 증상이 심하지 않은 경증 수준의 숙주병이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식편대숙주병을 경미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 또한 만만치는 않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실제로 이러한 상태를 조절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면서 “공여자의 면역세포가 어떤 장기로 이동할지, 어느 정도의 강도로 숙주반응을 일으킬지, 언제 시작되고 얼마나 지속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례로 “어떤 경우에는 반응이 없다가 갑자기 나타나기도 하고, 한동안 지속되다가 돌연 사라지기도 한다”면서 “결국 임상에서는 이러한 예측 불가능한 반응에 맞춰 경과에 따라 대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이식편대숙주병 1차 치료는 코르티코스테로이드
대부분의 자가면역질환이 그렇듯 이식편대숙주병 역시 1차 치료제로는 코르티코스테로이드를 사용한다.
김 교수는 “현재 이식편대숙주병 치료의 1차 치료제로는 코르티코스테로이드가 사용되고 있다”면서 “스테로이드 계열 면역억제제로, 저렴하고 접근성이 높아 의료현장에서 다양한 염증성 질환에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코르티코스테로이드를 장기적으로 사용할 경우, 감염 위험이 증가하고, 골다공증, 당뇨, 고혈압, 백내장, 이차암 등 여러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어 신중한 관리가 필요하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거의 모든 임상 진료지침에서는 여전히 코르티코스테로이드를 1차 치료로 권고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치료 옵션이 제한적이어서 부작용의 부담에도 불구하고 스테로이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이식편대숙주병에서 JAK 억제제가 등장, 한 차례 전환점을 마련했다.
JAK 억제제는 전신의 면역기능을 조절, 다양한 자가면역질환에서 빠르고 강력한 효과를 보여 널리 사용되고 있다.
만성 이식편대숙주병에서도 효과를 입증, 전기를 마련했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수십 년간 스테로이드를 기반으로 한 치료가 표준 치료로 자리 잡아온 만큼, 실제 임상에서는 스테로이드 치료에 반응이 없어야 2차 치료제로 전환이 가능하다”면서 “1차 치료제로 스테로이드를 사용한 이후에는, 정해진 치료 기간, 용량, 치료 경과에 따라 반응 평가를 시행하고, 이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환자가 스테로이드에 반응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되면 그 다음 단계인 2차 치료제로의 전환 여부가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 “2차 치료제인 JAK 억제제가 건강보험 급여에 등재되면서, 치료 접근성이 향상됐다”면서도 “그러나 JAK 억제제가 모든 환자에게 효과적이지는 않다”고 지적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전체 환자의 약 25%, 즉 4명 중 1명은 JAK 억제제 투여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치료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면서 “또한 JAK 억제제가 코르티코스테로이드보다는 덜하지만, 혈액학적 독성을 비롯한 여러 부작용을 동반할 수 있어 일부 환자에서는 아예 투약이 어려운 경우도 발생한다”고 부연했다.
이에 “이처럼 2차 치료제에 반응하지 않거나 내약성이 부족한 환자군에서는 결국 3차 치료제로의 전환이 불가피해진다”며 “이러한 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레주록과 같은 새로운 치료 옵션의 필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고 전했다.
◇레주록, 기존 치료제에 모두 실패한 환자에서 효능 입증
이처럼 기존 치료제의 한계가 분명하던 만성 이식편대숙주병에서 최초로 이 질환에 초점을 맞춰 개발한 치료제가 등장, 다시 한 번 전기를 마련했다.
이식편대숙주병의 염증과 섬유화 유발 물질로 알려진 ROCK2 신호전달 경로를 선택적으로 차단, 다른 면역 반응에 미치는 영향은 최소화하면서 이식편대숙주병의 진행 및 장기 숙주 반응을 조절하는 ROCK2 표적치료제 레주록이 지난 2021년 미국FDA에 이어 지난해 8월에는 국내에서도 허가를 받은 것.
지난 2021년 미국혈액학회(ASH) 학술지 Blood에 게재된 임상 2상, ROCKstar에 따르면, 레주록을 만성 이식편대숙주병 3차 이상 치료제로 투여한 결과 전체반응률(Overall Response Rate, ORR)이 75%에 달했으며, 52%의 환자에서 유의미한 삶의 질 개선 효과를 보였다.
이에 더해 이전 치료제들이 큰 개선 효과를 보이지 못했던 주요 숙주반응 장기인 관절, 간 및 폐에서도 각각 71%, 39%, 26%의 높은 반응율을 보이는 등 단순한 증상 완화가 아닌, 근본적인 치료제로서의 가치를 보여줬다.
김 교수는 “레주록의 임상결과는 2021년, Blood와 Journal of Clinical Oncology와 같은 주요 학술지에 동시에 실렸다”면서 “무엇보다 기존 치료제에 모두 실패한 환자들이 임상에 참여하다 보니 3차 이상, 심지어는 7차 치료로 레주록을 처방받은 환자도 있었는데, 이 환자 또한 유의미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나타나면서 큰 관심을 일으켰다”고 전했다.
또한 “이러한 치료 효과는 2상 연구임에도 불구하고 공신력 있는 주요 학술지에 실리는 계기가 됐고, 미국 FDA 승인의 근거가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임상 결과, 레주록은 위·장 등 상부 및 하부 소화기, 간 등에서 치료 반응률이 높은 편으로 확인됐으며, 관절 구축 역시 치료 경과가 대체로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관절 구축으로 인해 움직임이 거의 불가능했던 환자가 레주록 투여 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관절이 펴지고, 일상생활이 가능해질 정도로 회복된 사례도 있다”고 소개했다.
특히 “손가락이나 발가락처럼 정교한 움직임이 요구되는 부위의 기능이 회복된 환자 사례는 매우 인상적”이라며 “2차 치료제 사용 시에는 변화가 없었던 환자가 레주록 투여 후 호전된 것을 보면, 특정 장기에 대한 레주록의 임상적 효과는 분명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평가했다.
여기에 더해 “폐의 경우 가장 개선이 어려운 부위로 알려져 있으나, 레주록은 일부 환자에서 예후가 좋아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인 것으로 보고됐다”고 덧붙였다.
◇레주록 실제 임상 현장에서도 높은 반응률 유지
레주록은 임상연구보다 더 예후가 좋지 않은 환자들이 많은 실제 임상 현장(Real-World)에서도 높은 반응률을 보고하고 있다.
지난해 Blood지에 게재된 캐나다의 실사용 데이터(Real-World Data, RWD)에 따르면, 유병기간이 41개월(이하 중앙값 기준), 침범 장기는 4개로 이전에 5가지 치료를 받은 중증 만성 이식편대숙주병 환자에서 레주록의 3, 6개월 전체반응률은 55.05와 69.0%에 달했다.
절반에 가까운 환자(45%)는 기저시점보다 코르티코스테로이드 투여량이 줄어들었으며, 6개월간 장기 부전 없이 생존한 환자(Failure-Free Survival, FFS)는 71.9%에 달했다.
또한, 3, 6, 9, 12개월 시점에 이식편대숙주병 중증도 지수가 임상적으로 의미있게 개선된 환자는 59%, 75%, 60%, 100%로 집계됐다.
뿐만 아니라 30% 이상의 환자는 눈과 입, 호흡, 관절과 근육 등에서 중증도 지수가 임상적으로 의미있게 개선됐다.
아직 국내에서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환자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레주록을 사용하고 있어서 사용례는 많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임상 연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반응률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김 교수는 “작년 국내 허가 이후, 국내에서도 레주록을 투여하고 있는 환자가 있다”면서 “아직 치료 기간이 길지 않아 구체적인 데이터로 표현하기엔 이르지만, 피부 점막이나 간, 관절 등 일부 장기에서 2차 이상의 치료제에 불응성 만성 이식편대숙주병을 보였던 환자에서 임상 연구 결과에 준하는 긍정적인 반응이 관찰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지속적인 추적 관찰을 이어간다면 보다 긍정적인 치료반응이 기대되는 만큼, 보험급여 등 레주록의 약제 접근성이 빠르게 개선된다면 더 많은 환자들이 레주록의 혁신적인 치료 혜택을 경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되돌릴 수 없는 이식편대숙주병, 치료제 접근성 제고해야
레주록이 허가 임상을 통해 치료제를 소진한 만성 이식편대숙주병 환자에서 고무적인 반응률을 보고한 가운데, 실제 임상현장에서도 긍정적인 데이터들이 보고되고 있지만, 환자들이 레주록을 선택하기에는 부담이 크다.
레주록을 처방받기까지 넘어야 할 관문도 많지만, 아직까지 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기 때문.
그러나 한 번 손상이 발생하면 되돌리기 어렵고, 치명적일 수 있는 만성 이식편대숙주병의 특성을 고려하면 접근성 제고를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이식편대숙주병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질환이 악화되기 전에 효과적인 치료제를 가능한 빨리 투여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이식편대숙주병은 1차 치료제인 코르티코스테로이드에 대한 치료 반응 여부에 따라 이후 치료 전략을 결정하게 되는데, 빠르면 투약 후 한달 이내부터 다음 치료제에 대한 전략을 세우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앞선 치료제에 대한 반응이 없다면 다음 치료로 빠르게 넘어가야 하는데, 급여권 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제한적인 상황이 되면 의료진 입장에서는 2차/3차 순서의 좋은 치료 옵션을 선뜻 제안할 수가 없게 된다”면서 “즉, 환자에게 필요한 약제가 급여권 내에 빠르게 도입돼, 더 늦기 전에 장기 기능 손실을 막거나 최소화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심한 이식편대숙주병은 한 번 시작되면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며 “게다가 치료 반응 평가에 따른 신속한 후속 치료 시기를 지키지 못하면 관절이 굳는 구축성 병변이나 척추의 변형 등 비가역적인 장기 손상이 발생할 수 있기에, 혁신적인 약제로의 빠른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현재 국내 급여권 내에는 스테로이드 이후 치료 옵션이 제한돼 있어, 효과적인 2차 약제를 신속하게 전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치료가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 1차 치료 이후의 대응력이 중요하며, 2차, 3차 치료제가 환자에게 조기에 도입되어야만 심각한 장기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지금도 중증 단계로 진행되고 있는 환자들이 많고, 이들 역시 급여화 시점을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치료 시기를 놓치고 있다”면서 “환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상태가 악화되고, 결국 약제가 투여 가능해졌을 때에는 이미 손쓸 수 없는 단계에 도달하기 때문에, 안타까운 상황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레주록과 같은 주요 신약제의 빠른 급여 전환책이 필요하다”고 바람을 전했다.
◇혈액암 치료에 높은 장벽, 전문가 집단 의견 반영해야
김 교수는 비단 만성 이식편대숙주병만이 아니라, 혈액암 치료 전반에 걸쳐 비합리적인 장벽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혁신 신약의 급여 결정과정에서 혈액암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어려운 의사결정 구조는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기존 치료에 반응을 보이지 않던 환자들이 레주록 투여 후 호전을 보이는 사례가 실제 임상 현장에서 확인되고 있다”면서 “이처럼 치료 반응이 기대되는 약물은 가능한 한 조기에 투여하는 것이 임상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접근”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상처가 깊어지기 전 적절히 치료하지 않으면 큰 흉터가 남고 심각한 후유증이 발생하듯이, 이식편대숙주병 역시 질환의 진행을 방치할 경우 되돌리기 어려운 상태로 진행될 수 있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시급하다”고 역설했다.
여기에 더해 “혈액암 분야 치료제의 경우 국내에서는 여전히 절차적 장벽이 높아, 혁신 신약이 허가를 받더라도 급여권 진입이 쉽지 않다”면서 “이러한 제도적 지연은 치료 시기를 놓치게 만드는 걸림돌”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신속한 신약 도입심사와 함께 관련 분야 전문가 집단의 의견이 원활하게 반영될 수 있도록 국내 전문의료 심사평가기관의 구조적 개선 노력 또한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