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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소(1935)-세상이치는 무엇으로 따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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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소(1935)-세상이치는 무엇으로 따지나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5.03.15 0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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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소작농 국서의 큰아들 말똥이는 영 기운이 없다. 다들 추수한다고 난리 법석인데 가마니를 쓰고 숨어서 나오지 않는다. 부지깽이도 돕는다는 가을 일손인데 다 큰 아들이 저러고 있으니 아버지 국서는 속이 탄다.

작년 재작년 연속 흉년이 들었다. 그런데 올해는 풍년이다. 도처에 풍년이라고 아수성이다. 일꾼들은 풍년가를 부르고 국서는 기분을 내고 싶다. 헌데 말똥이 때문에 기분이 잡쳤다. 대체 말똥이는 왜 저러고 있을까.

연유를 살펴보니 동네 처녀 귀찬이가 일본으로 팔려가게 생겼다. 밀린 도조를 갚지 못해 일본인 나카무라에게 팔렸다. 사랑하는 여자가 돈 몇 푼에 그런 신세가 됐으니 말똥이 처지를 알만하다.

그러면 둘째아들 개똥이라도 도와야 한다. 하지만 개똥이도 개똥이 나름대로 불만이 하늘을 찌른다. 자는 놈 뿔자르기처럼 돈벌이가 쉬운 만주 가는 차삯이 없다. 그래서 개똥이는 소작농의 든든한 재산인 소를 몰래 팔려고 한다.

말똥이도 소를 팔기만 하면 귀찬이를 데려올 수 있다. 과연 국서네 소는 어찌될까. 유치진의 희곡 <소>는 이처럼 국서네 집 소를 두고 벌이는 두 아들과 그 집에 관한 희곡이다.

소는 일제 강점기 소작농의 명줄과 다름 없을 만큼 귀한 존재였다. 마을에 소를 키우는 집이 국서네 말고 다른 한집밖에 없을 정도로 값어치가 있었다.

그 값나가는 소의 운명과 주인공들의 운명이 서로 얼키고 설켜 관객들은 3막이 끝났을 때까지 도무지 자리를 뜰 수 없다.

▲ 일제 강점기 국서네 소를 통해 본 소작농의 애환이 가슴을 저려온다.
▲ 일제 강점기 국서네 소를 통해 본 소작농의 애환이 가슴을 저려온다.

앞서 올해는 풍년이라고 했다. 하지만 풍년의 찬송은 잠깐에 머물렀다. 도처에 풍년인데 되레 더 죽을 맛이다. 연속 흉년 동안 값지 못한 도지가 기다리고 있다. 논주인의 심부름꾼인 마름이 국서네 타작마당에서 밀린 것을 재촉한다.

마름은 인정사정 없다. 농지법이 바뀌기 전에 밀린 것을 싹 받아낼 심산이다. 한편 개똥이는 국서 몰래 소를 팔아 만주로 도망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소장수가 막판에 변심했다. 뒤탈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말똥이는 낫을 들고 개똥이를 내리쳐 기어이 피를 보고야 만다. 국서는 일이 엇 나가고 있음을 안다. 그래서 일단 말똥이 장가부터 보내기 위해 돈을 빌리려 한다.

나카무라에게 귀찬이 아버지가 받은 선금을 돌려주고 귀찬이를 데려올 작정이다. 귀찬이 아버지도 소가 있어 부잣집 소리를 듣는 국서네 집에 귀찬이를 시집 보내고 싶다. 낯선 일본 땅에 팔아넘기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

처음에는 귀찬이를 팔아 빚을 갚는다고 좋아했지만 그러지 않아도 된다면 아버지 마음은 돌아서기 마련이다. 일은 척척 진행된다. 하지만 돈을 빌리는데는 담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일은 틀어진다.

소를 팔아야 한다. 국서는 슬프다. 더구나 자기소는 보통 소가 아니다. 사촌의 큰 아버지 뻘 되는 소가 공진회에 나가 도장관 나리에게 일등상을 받은 뼈대 있는 소라서 더욱 가슴이 아프다.

과연 이 소는 팔릴까. 소 판 돈으로 귀찬이를 색시로 말똥이는 장가들 수 있을 까. 독기를 품은 마름은 하나뿐인 재산인 국서네 소를 그가 팔수 있도록 그대로 둘까. 소의 운명이 참으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 말똥이는 이런 세상이치가 불만이다.

세상이치가 말이 안된다고 하소연한다. 그런 말똥이에게 어머니가 말한다. 세상이치는 이치를 가지고 따지는게 아니라고. 돈을 가지고 따진다고.

: 결국 소는 논 주인에게 넘어갔다. 마름이 강제로 끌고 갔으니 아무리 무지렁이라고 해도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국서는 읍내 대서방으로 친척을 보냈다.

재판이라도 걸어야 한다. 일꾼들도 재판이 벌어지면 증인으로 나서겠다고 한다. 아무리 돈이 법보다 앞선다고는 하지만 이런 법은 없다. 하지만 친척은 재판을 포기하고 소도 포기한다는 각서를 쓰고 돌아왔다.

이런 황당한 일이 있나. 들어보니 일리가 있다. 재판에서 이겨 소를 찾아오겠지만 밀린 도조 값은 내야한다. 어차피 소를 팔아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되레 더 손해다. 소를 팔고도 도조 값을 다 값지 못한다.

재판받느라 왔다 갔다 하는 교통비며 증언을 서줄 일꾼들 술값을 생각하면 소를 뺏기는 것이 낫다. 참 슬픈 희곡이다.

유치진의 <소>는 해방 전후 우리 희곡 중 손꼽을 정도로 우수한 작품이다. 소작농 가족의 슬픔과 고통이 소를 통해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한편 유치진은 해방 후 친일 희곡을 쓰기도 했으며 이후 한국 연극 발전을 위해 많은 공헌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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