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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법, 한국 보건의료정책 결정 과정의 문제점 드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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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법, 한국 보건의료정책 결정 과정의 문제점 드러내”
  • 의약뉴스 강현구 기자
  • 승인 2025.02.17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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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법전원 박지용 부교수..."대통령 거부권, 정당성ㆍ효과성 의문"

[의약뉴스] 지난해 우여곡절 끝에 제정된 간호법을 두고 우리나라 보건의료정책 결정 과정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지난 국회에서 의결한 간호법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것 역시 정당성과 효과성에서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다.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박지용 부교수는 최근 대한의료법학회 월례발표회에서 '간호법 제정과 거부의 법정치학'이라는 발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 박지용 교수.
▲ 박지용 교수.

박 교수에 따르면, 간호사의 법적 지위와 권한에 대한 논의는 오랜 기간 현행 의료법 체계 내에서 지속적으로 이뤄져왔으며, 지난해 의료법과 별도로 규율하는 독자적 법률로서 간호법이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간호법 제정은 간호사의 전문직 위상 확립과 직업적 권리를 보장하고 환자의 의료서비스 접근성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평가받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의료 직역 간 갈등을 심화시키고 기존 의료체계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 박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간호법 제정을 둘러싼 논쟁은 한국 의료체계의 구조적 특성과 전문직 간 권력 관계를 반영한다”며 “입법 과정에서 드러난 정치적 갈등을 통해 한국 헌법의 권력 구조와 정치적 역학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특히 “제22대 국회에서의 간호법 제정은 표면적으로는 여ㆍ야 합의의 결과물이지만, 그 제정 과정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들이 노출됐다”며 “간호법 제정은 의ㆍ정갈등이라는 특수한 정치적 환경 속에서 전개됐다는 것을 간과해서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이익집단정치와 정당정치의 관점에서 볼 때, 간호법 제정 찬성과 반대의 대표적인 이익집단이 대한간호협회와 대한의사협회는 각각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및 여당인 국민의힘과 결합, 정책옹호연합을 형성하고 있었다”면서 “정부는 대통령의 법률안거부권이라는 강력한 헌법상 권한을 행사하며 반대연합에 가담하고 있었고, 이러한 정책옹호연합이 유지되는 한 간호법 제정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의ㆍ정갈등이라는 외부적 충격이 없었다면 제도적 경로의존성으로 인해 간호법 제정이라는 급격한 정책 변화는 실현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의ㆍ정갈등은 기존의 정책옹호연합을 해체하고, 정부ㆍ여당이 실질적으로 찬성연합에 가담하는 결과를 가져왔는데, 이는 기존에 실현되기 어려웠던 제도적 변화를 가능케 하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고 부연했다.

이는 보건의료정책 결정과정에서 정치적 역학관계가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합의의 강제를 긍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다"라며 "의ㆍ정갈등 상황에서 나타난 정부와 여당의 입장변화는 한국 보건의료정책 결정 과정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드러낸 것”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 이유로 “대통령의 법률안거부권까지 행사하며 강경하게 반대했던 간호법에 대해, 정부와 여당이 의ㆍ정갈등 이후 전향적인 태도로 선회한 과정은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 측면에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고 꼬집었다.

뿐만 아니라 “복지부는 제22대 국회에서 간호법 제정은 의료서비스 질 향상을 위한 필수적 조치라는 입장을 발표했는데, 이는 제21대 국회 당시 제출했던 부정적 검토의견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라며 “정당정치이론에 따른 정부와 여당의 권력융합 현상이 일반적이라 해도, 보건의료정책의 집행기관으로서 복지부가 최소한의 정책 중재나 조정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고 힐난했다.

이어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가능성이 결여된 채, 정치적 위기상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입장이 바뀌는 현상은 결과적으로 정책에 대한 신뢰를 저해하고 안정적인 보건의료체계 구축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라며 “간호법 제정은 그 법률 내용의 타당성과는 별개로 보건의료정책이 전문성과 합리성에 기반한 판단이 아닌, 정치적 위기관리의 수단으로 전락한 상징적 사례로, 간호법 제정 과정은 한국의 보건의료정책이 단기적 정치적 고려에 의해 좌우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고 쓴소리를 던졌다.

이에 “전문직 간의 권한 배분, 의료서비스의 질적 향상, 의료인력의 처우 개선 등과 같은 근본적 문제들에 대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이 시급하다”면서 "장기적 관점의 보건의료정책 수립과 정책의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절차적 및 구조적 방안들을 모색하고 구체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박 교수는 간호법 제정 과정에서 대통령이 행사한 법률안거부권에 대해서도 정당성과 효과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헌법상 대통령의 법률안거부권이 헌법상 대통령의 권한이고 입법부에 대한 견제수단으로서의 일정 부분 의미를 갖지만, 행사는 극히 신중해야 한다”며 “대통령의 법률안거부권은 어디까지나 권력분립에 따른 의회입법에 대한 예외적 권한으로, 행사에 있어 정치적 자제가 요구된다는 인식이 절실히 요청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대통령의 법률안거부권은 법률안이 헌법적 가치나 법체계의 정합성을 위협하는 중대한 하자가 있는 경우에 제한적으로 행사돼야 한다”며 “대통령에게 법률안거부권을 인정하는 것은 그 자체로 군주제적이며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강력한 권력을 부여해 권력분립의 균형추가 무너진다는 비판이 있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당파적 이해관계나 단기적 정치적 고려에 따른 법률안거부권 행사는 예외적 권한으로서의 제도의 취지를 훼손하고, 심각한 정치적 갈등을 유발할 개연성이 높다”며 “근본적으로 다원화된 사회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최대한 포용하고 조정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합의제 민주주의를 어떻게 심화시키고 정착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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