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뉴스]
두 번째 패러다임 전환

주사제로 제한되어 있던 발작성 야간 혈색소뇨증(Paroxysmal Nocturnal Hemoglobinuria, PNH) 치료에 강력한 경구제가 등장했다.
환자들의 투약 편의성을 개선하는 것을 넘어 숨어있던 미충족 수요까지 해결, PNH 치료의 두 번째 패러다임 전환이 시작됐다는 평가다.
PNH는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생성된 비정상적인 적혈구를 체내 면역체계의 하나인 보체가 파괴해 용혈, 혈전증, 골수 부전 등을 초래하는 희귀질환이다.
치료가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심각한 피로, 빈혈 등으로 삶의 질이 저하될 뿐 아니라, 혈전이나 감염으로 인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는 치명적인 질환이기도 하다.
실제로 PNH 환자의 5년 생존율은 약 65%, 10년 생존율은 50%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이렇다 할 치료제가 없었던 PNH에 처음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이끈 것은 C5 억제제로, 일상 생활이 어려웠던 환자들의 일상을 회복하고, 생존율도 크게 개선했다.
처음 출시된 C5 억제제는 2주에 한 번씩 약 4시간 정도의 정맥주사가 필요했지만, 최근에는 투약 간격을 크게 늘린 2세대 C5 억제제가 출시돼 투약의 번거로움도 크게 줄였다.
그러나, C5 억제제 치료에도 불구하고, 80% 이상의 환자들은 여전히 빈혈을 경험하며, 많게는 절반 정도의 환자가 지속적인 수혈이 필요하다는 한계가 있었다.
적혈구를 파괴하는 보체 시스템의 말단에서 작용하는 C5의 억제제의 한계로 인해, 혈관 내 용혈 억제((Intravascular Hemolysis, IVH)에는 효과적이지만, 간이나 비장 등 혈관 밖에서 발생하는 혈관 외 용혈(Extravascular Hemolysis, EVH)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
이에 보체 시스템의 보다 상단에서 작용하는 새로운 기전의 치료제들이 속속 등장,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 가운데 지난 8월, 한국노바티스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국내 최초의 B인자 억제제 파발타(성분명 입타코판)를 허가받아 PNH 치료의 두 번째 패러다임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파발타는 보체 시스템의 상단에서 작용하는 새로운 기전을 통해 혈관 내 용혈은 물론 C5 억제제의 한계가 뚜렷한 혈관 외 용혈도 강력하게 억제한다.
파발타는 C5 억제제 치료 경험이 없는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APPOINT-PNH와 C5 억제제로 치료 이력이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APPLY-PNH 연구를 통해 C5 억제제 치료 이력에 상관없이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했다.
먼저 APPOINT-PNH 연구에서 환자 5명 중 3명은 치료 1주 차부터 헤모글로빈 수치가 증가해 정상화됐으며, 이후 48주간의 연장 연구 기간까지 유지됐다.
또한 92%의 환자에서 헤모글로빈 수가 임상적으로 유의한 수준으로 증가했으며, 98%에 이르는 환자들이 수혈 의존성을 극복했다.
뿐만 아니라 치료 초기부터 젓산 탈수소 효소(Lactate Dehydrogenase, LDH)가 정상 범위로 감소, 혈관 내 용혈 조절 효과를 확인했으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유지돼 24주 차 시점에도 기준치를 밑돌았다.
절대망상적혈구수(Absolute Reticulocyte Counts, ARC) 역시 빠르게 정상 범위로 감소, 1주 차부터 24주 차까지 정상 범위를 유지해 혈관 내 용혈은 물론 혈관 외 용혈까지 포괄적인 용혈 조절 효과를 확인했다.
특히 파발타를 통해 빈혈과 수혈 의존성을 크게 줄이면서 피로도도 크게 개선. 12주 차 시점부터는 건강한 일반인과 비슷한 수준이 됐다.
나아가 APPLY-PNH 연구는 C5 억제제 복용을 유지하거나, 파발타로 전환하는 두 그룹으로 나누어 진행, C5 억제제 치료 이력이 있는 환자에서도 파발타의 가치를 입증했으며, 특히 파발타가 C5 억제제 투약 중 전환한 환자에서도 증상을 빠르게 개선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처음부터 파발타로 치료를 변경한 환자들은 4주 차부터 헤모글로빈 수치가 정상화됐으며, 24주 차까지 효과가 이어졌다.
약 3명 중 2명에서 헤모글로빈이 정상화됐으며, 48주의 연장연구 기간에도 유지됐다.
또한 5명 중 4명은 헤모글로빈 수가 임상적으로 유의한 수준으로 증가했으며, 95%의 환자가 수혈 의존성을 극복했다.
C5 억제제 복용을 지속하던 환자들 역시 24주 시점에 파발타로 전환한 후 헤모글로빈 수치가 빠르게 증가, 초기 전환군과 비슷한 수치에 도달했다.
또한, 파발타로 전환한 환자들도 건강한 일반인 수준으로 피로도를 회복했다.
APPOINT-PNH와 APPLY-PNH 연구 모두에서 파발타 복용으로 치료를 중단해야 하는 이상반응은 발생하지 않았다.
특히 돌발성 용혈 발생률은 C5 억제제보다 더 낮았으며, 두통ㆍ설사ㆍ오심이 발생했으나 대체로 경미하고 1주 이내에 해소됐다.
이와 관련,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장준호 교수는 “PNH 환자들은 일반인구에 비해 생존율도 낮고 피로도가 심해 일을 하기 어려울 정도”라며 “이 가운데 C5 억제제는 PNH 치료의 퀀텀 점프를 이끌어 PNH 환자들의 생존율을 일반 인구와 유사한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피로도 크게 개선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C5 억제제 치료에도 상당수의 환자에서는 혈관 외 용혈이 발생해 지속적인 빈혈로 고통을 받고 있으며, 약 60%의 환자는 여전히 수혈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 가운데 “파발타는 C5 억제제보다 상단에서 B인자를 억제해 혈관 내 용혈과 혈관 외 용혈을 다 해결, 수혈 의존성을 극복했을 뿐 아니라, 피로도 일반인 수준으로 개선했다”면서 “이전에 C5 억제제가 가져온 퀀텀 점프만큼의 두 번째 퀀텀 점프를 가져왔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여기에 더해 “C5 억제제로 피로가 크게 개선됐다고 생각했던 환자들도 파발타로 더 개선됐다고 응답했다”면서 “숨어 있던 미충족 수요까지 찾은 것으로, PNH 치료에서 C5 억제제에 이은 두 번째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역설했다.
특히 “상단에서 작용해 돌발성 용혈(Breakthrough hemolysis, BTH)이 더 빈번하게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오히려 C5 억제제보다 합병증이 더 적었다”면서 “안전성에 대한 우려로 C5 억제제에 이은 순차 치료 옵션으로 고려하던 전문가들도 이제는 1차 치료에서부터 파발타를 써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