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뉴스] 법원의 명령으로 공개된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관련 자료를 살펴본 의대 교수들이 조목조목 문제를 제기했다.
정부가 정책 추진의 근거로 제시한 세 건의 보고서는 근거자료로 활용되기에 부적합했으며, 의료인력 양성비용을 고려한 구체적인 예산 계획도 없었다는 지적이다.

서울의대 교수협의회 김종일 회장은 13일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대한의학회 기자회견에서 ‘의사 수 1만 5000명 부족 근거자료의 비판적 분석’ 보고서 내용 중 일부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전의교협과 의학회가 발족한 ‘과학성 검증 위원회’에서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의 근거자료를 분석한 것이다.
이 가운데 김 회장은 재판부가 정부에 자료 제출을 요구한 사항 중 ▲1만 5000명 증원 근거 자료 ▲2000명 증원 결정 과정 ▲2000명 입학 정원 배정 과정에 대해 검증한 내용을 공개했다.
검증위는 먼저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 정책 추진의 근거로 활용한 세 건의 보고서는 의대 2000명 정원 증원의 근거자료로 활용되기에 부적합하다고 결론 내렸다.
김 회장은 “세 보고서 모두 보건복지부 의뢰를 받고 진행돼 이해충돌의 가능성이 있다”며 “미래 추계 연구의 경우 어떤 가정을 설립하는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예를 들어 우리나라 경제 상황, 닥터 쇼핑 행태, 의사 인력의 근무 일수 등 다양한 요소가 해당 보고서에는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서 저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증원 근거로 무리하게 인용됐다는 지적이다.
또한 “미래 의사 수 규모의 추계는 특정한 가정의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는 주관적인 편견이나 왜곡이 반영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현재 의사 부족분이 5000명이라는 추계 자료는 의사 수 부족이 아닌 지역별 차이와 수도권 집중화를 의미한다는 것이 김 교수의 지적이다.
그는 “지역 내 의료이용률 또는 의사 공급의 차이는 우리나라 의사가 100만명이 되더라도 나타날 수 있다”며 “지역별 차이는 우리나라의 심각한 문제인 ‘수도권 집중화’를 반영한 것일 뿐 의사 수 부족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더해 김 회장은 부산의대의 예를 들어, 2000명 증원이 불가능하다고 역설했다.
현재 부산의대 정원은 125명인데, 정부가 발표한 2025학년도 의과대학 입학정원은 200명으로 75명이 늘어났다.
김 회장은 “교육기본시설 및 교육지원시설이 모두 125명에 맞춰져 있어 75명 증원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 이유로 “강의실에서 말로 하는 강의만 듣는 로스쿨 교육과 달리 의대는 예과 과정부터 조를 짜는 실습 교육이 중심”이라면서 “본과 학생들은 의대에서 뿐만 아니라 각 병원의 전문 과를 순환하며 실습하는데, 정원이 갑자기 2~5배 가까이 증가하면 이러한 교육을 불가능하다”고 역설했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부족한 교수 인력이 갑자기 늘어날 수 없기때문에 갑작스런 의대 정원 변경은 교육의 질을 현저히 저하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2000명 증원을 결정한 과정에도 문제가 있다고 짚었다. 지난 2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회의 전 2000명 증원 관련 내용이 언급된 사실조차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2000명 증원을 결정한 회의록이 없고, 증원 결정 과정도 절차적인 위법이 있다”며 “보건의료발전계획은 수립된 적이 없고, 2030년 9.4 의ㆍ정합의를 위배해 의료현안협의체를 기망했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2000명을 각 의대에 배정하는 과정에서 의학교육 점검반의 의대 교육 환경에 대한 실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의학교육점검반이 과연 의대 교육 인증 평가를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구성원으로 이뤄졌는지도 알 수 없다”고 꼬집었다.
또 “서면 검토와 비대면 간담회 후 전체 대학이 아닌 임의적으로 14개 대학만 현장 점검한 것은 부적절하다”며 ““보통 의대 인증 평가를 위해선 평균 4일이 소요되는데 정원의 70% 이상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실사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한 게 3시간이었다”고 힐난했다.
서면 검토, 비대면 간담회만으로 부실하게 인적 물적 시설을 평가받은 26개 의과대학 중에서도 증원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운 대학들이 있을 것이라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외에도 김 회장은 의료인력 양성비용을 고려하면 막대한 추가 예산이 필요하지만, 정부의 답변서에는 이에 대한 구체적 예산 계획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2000명 증원시 예과 시기에 연간 300억원, 본과 시기에는 연간 600억원의 추가 예산이 필요하다”며 “정부 답변서에는 2024년 의대 교육 관련 예산 지원 규모는 총 2611억 원으로, 2023년 대비 119억 원(4.8%) 증액된 규모로 밝혀, 증원되는 2000명의 교육에 필요한 예산 계획을 전혀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사 인력양성에 들어가는 연간 비용은 총 2조 7000억원인데, 2000명을 증원할 경우에는 연간 1조 8000억원이 추가 투입돼야한다”며 “이 금액은 시설과 교육 인력이 마련돼 있는 경우에 필요한 비용이고, 증원에 대비해 시설, 기자재를 새로 만들고, 인력을 확충한다면 훨씬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수련까지 따지면 더 막대한 금액이 투입돼야 하는데 국민들이 이에 동의할지 궁금하다”면서 “의사 인력 수급의 경우 미래 의료에 대한 큰 그림을 우선 설정하고 전문가를 중심으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점진적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