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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승부를 가릴 장소로 국경의 강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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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승부를 가릴 장소로 국경의 강을 선택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3.05.15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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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이 오고 있어요. 혈기왕성한 조선청년들이요. 그들에게 우리끼리 싸우는 모습을 보여서야 쓰겠습니까? 내 말이 그 말입니다. 하나로 모여도 어려운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일단 임정을 중심으로 뭉칩시다. 다른 방법이 없어요. 선생밖에 더 있나요. 동의합니다. 나중에 다시 분파가 되더라도 지금은 손을 합칩시다. 나중에라도 그런 일은 없어야지요. 절대로요. 두 사람은 손을 맞잡았다. 학도병들이 이쪽으로 출발했어요. 일본군에 자발적으로 지원했다고는 하지만 강제징집 당한 일본 유학생 등이 주축이 된 조선 학도병이 일본군을 탈출했어요.

수 백명이 탈출해 수 천킬로 미터를 걸어서 임정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들은 오면서 광복군에 합류하기도 하고 일부는 잡혀서 다시 일본군에 끌려가기도 하는 등 악전고투하고 있다고 하네요. 우리 선배들이 나서서 도와주지 못하니 안타깝습니다. 그저 보고만 있으니. 죽산이 그런 말씀을 하시니 말씀드리면 마침 제가 그리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마중도 가고 새로운 임무를 수행해야지요. 날랜 지원군 여덟명을 데리고 바로 오늘 떠납니다. 중간에서 접선해서 안전한 곳으로 데려올 생각입니다. 일단은 임정에 신고부터 해야지요.

물론 입니다. 그들이 임정 마당에 펄럭이는 태극기를 보면 어떤 감회가 일겠어요. 울컥 하는 심정에 목놓아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겠지요. 너덜너덜 해진 몸으로 기진맥진해서 왔으나 태극기를 보고 불끈 힘이 솟아 날 겁니다. 조국이란 그걸 것이이죠. 그들에게 오로지 희망은 단 하나 임정입니다. 이곳에 도착하면 고향 집에 온 느낌, 그런 기분이 들지 않겠습니까. 어머니의 따뜻한 숭늉 한 그릇이면 충분하지요. 그런데 말이죠. 와서 보니 자기들끼리 싸우고 노선 다툼하고 자리를 차지한다고 언성을 높인다면 어떻겠어요? 이런 꼴 보려고 목숨을 걸고 수천 킬로미터를 걸어왔나 자괴감이 들겠지요. 아마 나라도 다시 일본군에 입대하고 말 겁니다. 가미카제 특공대 출신이라면 비행기를 몰고 와서 임정을 폭파하고 싶을 겁니다.

그런 일은 없어야지요. 그런 비극은 생각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선배들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죠. 말해 두말하면 잔소리지요. 나는 선생을 만나러 갑니다. 우리 두 사람이 이런 대화를 나눴다는 것을 말해 주고요. 조선청년들을 맞을 준비를 해야지요. 저는 약산 선생님만 믿겠습니다. 저도 죽산 선생님만 믿겠습니다. 두 사람은 이런 언약을 하고 각자 헤어졌다. 그 무렵 휴의는 안전 가옥에 도착했다. 운이 좋았다. 다행히 다른 출혈은 없었다. 박선생은 임정 사무원과 함께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다.

다음날 휴의는 눈을 떴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으나 자신이 어디에 있고 어떤 상태인지는 확실히 알았다. 병원에서 모처로 이동해 있고 전문의사가 돌보고 있었다. 살아서 안전하다는 마음보다 자신 때문에 여러 사람이 고통을 받는 것을 보고 휴의는 미안했다. 이곳에 오래 머물다 조직이 탄로나 일망타진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기에 하루빨리 일어나고 싶었다. 벗어나야 한다. 신세를 갚는 길은 그것이다. 
훌훌 털고 벌떡 일어나 압록강, 두만강 도강 작전을 해야 한다. 그는 눈 덮힌 산야를 하얗게 물들이고 있는 조선독립군 사단을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가야 한다. 싸워야 한다.

그는 몸이 아프자 더 전투력이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기력은 빠르게 회복됐다. 의약품 덕을 많이 봤다. 부종은 내렸고 총상은 아물기 시작했다. 그러자 답답했다. 그는 방안에서 걷고 뛰는 연습을 했다. 처음에는 네발로 기다가 나중에서 비틀거리며 서고 아장아장 걸었다. 종아리 통증이 있었으나 이를 악물고 참았다. 한 보름 정도 더 요양을 한다면 걷기는 완성되고 그 시간 만큼 더 지나면 달릴수도 있겠다 싶었다. 총상이전의 완전체 몸이. 이런 운 좋은 놈이 있나. 휴의는 자신을 내려다보면서 이런 농담을 했다.

그나저나 내가 입원했던 병원은 안전할까. 병원장과 여순은 용의 선상에서 완전히 벗어 났을까. 나 때문에 그들이 체포되고 병원이 문을 닫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아마 잘 빠져 나갔을 것이다. 여순의 남편은 지략이 뛰어났고 여순도 강한 여자였다. 휴의는 작전 과정에서 임정을 크게 칭찬했다. 여러번 지시를 받고 임무를 수행했지만 이처럼 세부적으로 완벽한 작전은 없었다. 병원장 부부를 묶어 놓은 것은 계략중의 최고였다. 불가항력의 그들 상태는 혐의자에서 되레 피해자로 둔갑하기에 적합했다. 일제는 자신의 도주를 그저 지켜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의심을 받던 말수는 신뢰를 얻었다. 최초 신고자인 병원장을 의심할 근거는 없었다. 말수의 발 빠른 신고가 적중한 것이다. 신고와 동시에 들이닥친 임정 요원들의 활략도 대단했다. 그러나 말수의 반 박자 앞선 대책이 자신은 물론 여순 부부를 위험에서 구해냈다.

일본 영사관은 말수를 믿을 만한 밀정으로 인정했다. 그래서 그가 임정 요원을 만나는 것을 묵인했다. 선생을 포함해 한꺼번에 잡아들일 때 요긴하게 쓰기 위해서였다. 이런 사실을 말수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알려야 할 것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았다. 그것이 자신이나 임정에게 안전하다고 판단될 때에는. 줄타기는 그에게 새로운 의욕을 주었고 그는 늘 표정관리를 잘해 나갔다. 포목점 집 사장도 예전의 지위를 찾았다.하루 늦은 신고를 문제 삼았으나 따로 심문한 결과 말수의 진술과 일치했고 다음 날 병원에 들러 환자의 상태를 살폈음에도 불구하고 영사관으로 직접 온 것을 높이 샀다. 일제에게 윤사장과 말수는 여전히 필요한 존재였다. 

저 정도 충성심이라면 믿을 만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지금은 사람이 귀했다. 그와는 수 년째 접촉을 하고 있다. 조선 사정에도 밝고 오가는 조선인들의 동태를 알려주는 것도 그였다. 그 즈음 일본 영사관의 고민은 다른데 있었다. 모처에서 한다는 한국독립군의 훈련이었다. 말수가 여러날 훈련에서 빠졌고 다른 대타가 없어 병력들이 불안해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자신들이 들어가서 어떤 조치를 취하기도 어려웠다. 그들을 자연스럽게 황군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연스러운 인수인계가 필요했던 것이다. 일본 영사관은 태평양전쟁이 패망으로 기울고 있는 것을 역전 시키기 위해 더 많은 병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조선독립군으로 훈련받는 사단 병력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영사관은 포목점 사장을 통해 말수에게 이 삼 일간의 마무리 훈련을 지시하고는 그들이 압록강으로 이동한다는 거짓 정보를 흘리고 야밤에 트럭으로 만주 전선으로 뺀다는 계획을 세웠다. 날이 밝을 무렵이면 그들은 속았다는 것을 알지만 달리 어쩌겠는가. 그들 가운데는 도망친 학병 출신들도 많으니 탈영에서 돌아와 자대로 복귀한 것이 된다. 거기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다짐을 해주고 그런 자들에게는 일계급씩 특진을 시켜준다.

그리고 황군의 옷을 입히고 각자 분대로 나눠 인솔장교에서 인계하면 감촉같이 물갈이가 되는 것이다. 포목점 사장과 헤어진 말수는 이런 소식을 듣고 더 편안했다. 형사들이 병원에 오는 일은 당분간 없을 것이다. 마음이 가뿐해 지자 그는 훈련기지의 병사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 이제 자신의 손을 떠났다. 일제가 나서기 전에 임정이 먼저 움직인다고 해서 자신이 의심받을 상황은 아니다. 어느 쪽 군인인가는 임정과 일제가 어떤 선택을 먼저 할지에 따라 다르다. 일단 휴의가 부상을 당한 이상 그는 병력 인솔은 어렵다. 그렇다면 지난번 왔다는 약산이 그 일을 대신할까. 아니면 몽양이나 죽산의 몫일까. 그는 이런 사실을 임정에 알리고 싶었다. 일제 몰래.

일본 영사관도 긴밀히 움직이겠지. 잘 훈련된 병사들을 자신 쪽으로 빼돌려야 하니 지금쯤 작전에 돌입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력은 쓰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적이 아닌 아군으로 판단하고 있으니 말이다. 누가 어떻게 인수하느냐에 따라 독립군이 될 수도 황군이 될 수도 있는 운명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의열단장이 한발 빨랐다. 휴의 탈출에서 벗어나 여유가 생긴 그는 임정 보고를 마친 즉시 바로 모처로 이동했다. 약산은 죽산이 아마 지금쯤 험준한 산맥을 넘고 있겠지 생각했다. 도중에 만나는 일본군을 피하기 위해 중국 농부나 상인으로 변장하면서 학도병들을 만날 것이다. 그리고 무사히 임정으로 인솔한다. 

나는 일단 훈련병들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야 한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임정에 도착한 그들과 합류해 애초 휴의 장군이 하기로 한 압록강, 두만강 도강 작전을 편다. 휴장군도 이해겠지. 한시가 급하다. 일제는 무너지는 속도가 빠르다. 함흥경찰서부터 파괴하고 그곳에 갇혀 있는 독립투사들을 석방시키자. 그리고 남으로 남으로 이동해 평양을 접수하고 개성을 거쳐 서울로 진격한다. 걸리는 것들은 모두 사살한다. 우리 독립군 제3지대 병력들이 총독부를 접수하고 일장기를 끌어내린다. 그리고 태극기를 건다. 그 시점에서 일제가 패망하면 좋을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가 정해지자 약산는 마음이 급해졌다. 그는 자신의 휘하에 있는 의열단 소속 병력을 급히 소집했다. 날센 8명의 장교급이었다. 피로써 맺은 형제들이었다. 한 마디로 믿을 만한 자들이었다.

음모와 배신이 날뛰는 시대에 이들은 약산에게 형제보다 더 소중한 존재들이었다. 당장 전투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모처에서 훈련 중에 독립군 사단과 합세하기 위해서였다. 훈련 대장 말수를 만나 흩어진 군대를 하나로 모아서 도강해야 한다. 지금이 적기다. 훈련 대장이 돌아왔다. 병원은 어쩌고. 잠시 약산은 이런 생각을 했다. 박군도 자리를 비웠다. 병원은? 그러나 거기 안주인 역시 의사이니 어떻게든 꾸려 나갈 것이다. 두 시간이다. 상해 병원서 이곳 험준한 산악까지 이동하는 걸리는 시간은. 한양 진공 작전. 그래 나의 마지막 임무는 한양 진공작전이다. 거기 까지만 가면 제일 먼저 할 일은 서대문 형무소 습격이다. 옥에 갇힌 독립운동가들을 꺼내자. 그리고 아내를 구출해야 한다. 죽기전에 한 번 이름을 불러보고 싶다. 사랑하는 나의 아내 박채련.

약산은 자신이 사령관의 부임을 받고 급하게 온 연유를 부사령관에게 전달했다. 약산의 존재를 알고 있던 부사령관은 흔쾌히 그를 받아들였다. 사령관이 지금 오고 있으니 우리끼리 훈련을 마무리 짓자고 말했다. 부사령관은 흔쾌히 동의했다. 그도 몸이 근질근질 하던 차였다. 군인들은 하루만 쉬어도 몸에 녹이 슬기 때문에 우선 기름칠 부터 했다. 연병장을 돌고 사격을 하고 제식훈련을 했다. 약산이 도착한 후 독립군 사단은 군인 같은 일과를 소화해 냈다.

약산은 이미 배운 폭약설치와 각개 훈련, 개인 화기와 수류탄 훈련을 매일 점검하면서 이제는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경지에 까지 끌어 올렸다. 실력이 늘면서 사단의 사기는 크게 올랐다. 사령관 말수는 오지 않았다. 그는 전통으로 자신의 임무는 약산에게 일임했음을 부사령관에게 통보했다. 부사령관은 받아들였다. 그것이 말수가 아닌 임정의 지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부대원들은 그 뜻을 충실히 따랐다. 거기에 머물지 않고 배운 기술을 써먹기 위해 하루빨리 출정을 원했다. 적과 대치해서 배운 기술은 써먹어야 한다.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 군기는 빠지고 사기는 저하된다.

약산은 부사령관에게 즉시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상황을 설명을 했다. 처음 약산을 맞았을 때는 바로 출동 명령이 떨어진 줄 알고 기뻐했던 부사령관의 시무룩했던 표정이 밝아졌다. 부하들에게 드디어 우리는 출동한다는 일성을 내지를수 있기를 얼마나 학수고대 했던가. 그도 그만한 정세는 파악하고 있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일이 틀어진 일제가 자신들의 병력을 접수해 태평양으로 빼낸다는 첩보를 들은 터라 당장 출동은 불신을 제거하는 기폭제였다. 시간끌기 작전이 끝난 것이라고나 할까. 잘됐습니다. 난 전투라면 나도 이골이 났소. 당장 갈기고 싶어 손가락이 근질근질한데 천금같은 소식입니다. 사기 충전한 부대에도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임정의 승인은 받았나요? 부사령관이 물었다. 출동은 임정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기 때문이다. 

국무회의 승인은 사후에 받기로 했고. 이것은 나의 단독 결정입니다. 죽산과 협의된 사항이고요. 부사령관은 죽산이라는 말에 두 사람이 언제 만나고 언제 합의를 봤는지 세세하게 물었다. 그런 다음 두 분의 합의했다면 믿어야지요. 하고 뒤로 물러났다. 장소는 정해졌나요? 여기서 18 킬로미터 떨어진 곳입니다. 부하들에게는 긴급상황인 것을 알리고 군장을 당장 꾸리라고 하시지요. 그리고 여기 나와 함께 온 의열단 소속 장교들이 8중대로 나눠서 병력들을 안전하게 이동시킬 겁니다. 걱정하지 마시오. 우리 장교들은 여기 독립군 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동지라고 여깁니다. 다만 전투 경력이 많고 소련이나 중국군에서 활약한 경험이 있으니 따르라는 겁니다.

부하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의열단이 우리를 접수한다고는 생각할 걸요. 접수한다면 어떻게 부사령관은 그대로 직책을 수행합니까? 약산은 정면으로 그를 노려봤다. 부사령관이 눈을 내리 깔았다. 조선 호랑이 별명 답게 눈에서 불이 붙었다. 저런 눈은 배신할 상이 아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임정의 공식 통보를 아직 받지 못한 상태고요. 말수 사령관의 어떤 지시도 아직 없습니다. 임정과는 우리도 지금 연락할 수 없어요. 휴장군이 부상을 당했고 병원에서 탈출한 상태입니다.

휴장군이 다쳤다고요? 부사령관은 뜻밖의 소식이라는 듯이 놀란 듯이 물었다. 총상입니다. 세 발을 맞고도 살아났어요. 그 분이 어디 일제 놈의 총알에 가죽이 뚫리겠습니까? 약산이 말했다. 휴장군이 완치되면 우리 부대는 3개 조직으로 나눠져 압록강, 두만강으로 침투할 겁니다. 거기서 부터 일제를 빗자루로 쓸듯이 쓸어 나가려고요. 우리도 그 생각을 줄 곳 해오고 있었어요. 지체 할 시간이 없어요. 빨리 이동합시다. 휴장군 부상과 탈출로 일제는 지금 이곳을 노리고 있어요. 그들도 장소를 알고 있으니 언제 급습할지 몰라요. 아니면 사령관을 대동하고 작전 개시를 할수도 있고요. 작전 개시라니요? 조선으로 들어간다고 눈속임하고 만주의 깊은 골짜기로 데려가는 것이지요. 그곳에서 황군의 옷을 입히고 연합군의 총알받이로 내 몰겠지요.

부사령관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독립군이 일제의 개가 되어 싸워야 하는 형편이 될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일제와 여기서 맞설 수는 없어요. 우리 목적은 만주에서 일제와 전투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땅에 있는 왜놈을 몰아내는데 있으니까요. 그럽시다. 서두르면 정오에 안가에 도착할 겁니다. 거기는 어떤 곳인가요? 중국연합군이 쓰던 장소인데 장개석의 사전 승락을 받았어요. 그들도 지금은 우리를 인정하고 있다는 증거지요. 거기서 전열을 정비한 다음 휴장군과 합세합시다. 좋아요. 그럼 당장 출발입니다.

다음날 새벽 약산은 부대원들을 이끌고 원래의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안정하게 이동했다. 애초 계획보다 반나절 정도 늦었으나 그것이 되레 병사들의 사기를 올려 주었다. 그만큼의 휴식이 보장됐기 때문이다. 이미 공중은 연합국의 대반격이 시작되고 있었다.. 일장기를 단 가미카제 특공대는 보이지 않았다. 하늘에서 미군의 비행기를 상대할 만한 힘이 일제에게는 없었다. 제공권을 장악한 미군은 만주 일대 일본군 진지를 향해 무차별 공격을 감했다. 약산의 부대가 늦은 것은 미군의 공습을 피하기 위한 지연작전의 일환이기도 했다. 연합군은 독립군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훈련장도 일본군 막사로 보고 공격 목표에 넣었다. 약산의 부대가 떠나고 나서 삼십 분 후 미군 전투기들은 그곳을 공격했다. 먼 거리에서 막사가 파괴되는 것을 보면서 약산은 미군의 위력을 실감했다. 그는 부대를 이동하면서 상당수 파괴는 일본군 진지를 직접 확인했다. 

그러나 그들은 첫 발의 성공이후 연속적인 타격을 감행하지 않았다. 미군측은 그곳이 여차하면 자신들을 지원할 독립군 훈련기지라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다. 전투기 편대가 공격대형으로 모였다가 급하게 흩어지고는 다시 나타나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들은 우리편이다. 내버려 두라. 전폭기들은 기수를 만주 이북으로 돌렸다. 산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독립군들은 만세를 불렀다. 이제 독립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는 확신이 섰다. 미군이 하늘에서 돕는다면 지상전은 우리것이다. 한국독립군의 사기는 그 어느때보다도 높았다.

미군 전투기가 떠나고 나서 두 어시간 후에 약산은 그것이 임정과 미군의 연락으로 이뤄진 협상 결과라는 것을 알았다. 약산보다 먼저 움직였던 몽양이 미군의 공격 지점이 독립군 부대의 근거지인 것을 알고 손을 쓴 결과였다. 미군이 여기까지 와서 공격했다는 것은 일제가 완전하게 수세에 몰리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약산의 부대원들은 날듯이 산을 넘었다. 일제 역시 그곳은 중요한 거점이었고 훈련된 독립군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들은 말수대신 포목점 사장을 앞세우고 미군의 공습을 피한 독립군 진지로 쳐들어왔다. 황군으로 편입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일개 소대 병력으로 사단 병력을 인수하겠다는 야심찬 전략은 그러나 실패로 돌아갔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 독립군 훈련장에는 개미 한마리 얼씬 거리지 않았다. 허탈한 그들은 포목점 사장을 윽박질렀다. 작전이 미리 샌 것에 대한 추궁이었다. 그러나 포목점 사장은 나름대로 이유를 댔다.

이 보시오. 저기 폭탄 구멍이 보이지 않나요? 당신들은 눈을 어디에 두고 있어요. 그가 반격을 폈다. 저런 상태에서 막사에서 가만히 앉아 있을 병사들이 있겠소? 이것은 사전에 일본군 침투에 대비해 병력이 미리 빠진 것이 아니라 방금전에 서둘러 떠났다는 것의 확실한 증명이었다. 일본군 장교는 할 말을 잊었다. 애꿎은 포목점 집 사장을 추궁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그가 둘러댄 이유는 맞았다. 그래서 더이상 그를 몰아 부칠 수 없었다.  이 한마디 말로 포목점 사장은 혐의를 벗었다. 사장님, 오죽 화가 났으면 제 부하가 그런 말을 했겠습니까? 그 보다 높은 장교가 나와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장교는 상관이 민간인에게 잘못을 시인한 것이 불쾌했으나 달릴 대책이 없었다. 당장은 윤사장이 필요했고 써먹을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장교는 일단 그를 이런식으로 달랬다. 

이러고들 있을때가 아닙니다. 추격해야지요. 윤사장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잡아서 빨리 황군에 편입시킵시다. 여기 있는 장교 13명이면 사단 병력인솔이 가능합니다. 그들이 독립군에 편입해 조선으로 가거나 미군측에 서면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습니다.  어디로 간 줄 알고 뒤를 쫓는 답니까? 사냥개를 앞세웁시다. 그리고 3개조로 나눠 추격하면 후발대의 등뒤를 따라 잡을 수 있지 않겠습니다. 윤사장이 인솔장교가 된 듯이 그럴듯한 작전을 내세웠다. 일제는 그 말을 따르기 보다는 원래 그러려고 했기 때문에 지체없이 병력을 출동시켰다. 그러나 그것은 군 생활 중 작전 장교의 큰 실수로 기록됐다. 노련한 약산이 그 정도 대비는 하고 있었다. 약산은 선발대를 앞세우고 후발대를 오분 거리에 두고 이동시켰다. 만에 하나 적의 기습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약산의 장교 8명은 선두에서 그들을 이끌었다. 칠흑같은 밤에도 그들은 지형지물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파악했다. 숙달된 조교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무장투쟁이라면 이골이 난 약산은 이번에는 절대적인 기회가 왔다고 입술을 굳데 다물었다. 약산은 후발대와 거리를 유지하면서 적들이 추격해 오고 있다는 낌새를 눈치챘다. 예민한 감각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작동됐다. 약산은 지체하지 않았다. 앞의 병력을 사방으로 산개시키고 자신은 매복조를 지휘했다. 기습 공격을 하고 뒤로 빠지면 선발대가 사분오열된 적들을 섬멸한다는 작전이었다.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시야는 확보됐다. 매복조는 적들이 근거리로 오기를 기다렸다. 사냥개는 바로 사살했다. 놀란 적들이 몸을 숨기기도 전에 약산의 부대가 총알을 뿜었다. 거치된 기관총의 위력은 대단했다. 마음껏 실력을 발휘할 즈음 이번에는 굉장한 폭발음이 들렸다. 설치한 폭약을 건드린 적들의 몸뚱이는 하늘 높이 솟았다가 사방으로 분해돼 떨어졌다. 더 볼 것 없는 승리였다. 겨우 일개 소대병력으로 탈출한 부대원들을 포섭하려던 일제의 작전은 처참한 실패로 돌아갔다. 그들은 살아 남은 10여명을 이끌고 공격대신 철수를 감행했다. 적들의 추격이 사라지자 밤새 이동하느나 지친 병사들이 잠시 휴식할 때 약산은 휘하 장교와 부사령관을 따로 불렀다. 오늘 작전의 성공을 치하하고 압록강 진격 잔적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해주기 위해서였다.

우리 정도의 실력이면 일본 정규군과 붙어도 마땅히 승산이 있다. 보지 않았습니까. 우리 두 눈으로 똑똑히. 일제도 별 거 아니지요. 우리가 대단한 존재라는 것을 알겠지요? 약산은 부하들을 추어 올렸다. 사기를 올려 준다는 차원이었지 없는 실력을 내세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부대원들은 알고 있었다. 개인화기를 잘 다루고 폭약도 장난감 만지듯 하는 일당백의 전사들이 학도병으로 급조된 일제에 당할리 만무했다. 오늘의 독립군은 어제의 오합지졸이 아니었다. 약산은 여세를 몰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일본이 항복하기 전에 강을 넘자. 그래야 한다. 일제가 떠난 자리를 우리가 접수하자. 성조기 대신 일장기를 총독부에 걸어야 한다. 그래야 독립이 온다. 주먹을 쥔 약산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그래, 그러기 전에 아무리 급해도 백두산을 한 번 올려다 보자. 그럴 시간은 있겠지. 

약산은 파이프를 입에 물고 등을 뒤로 기댔다. 그리고는 다시 벌떡 일어나 앉더니 연기를 내 뿜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두만강은 완치된 휴장군에게 맡기기로 했다. 우리는 압록강을 넘는다. 약산이 압록강을 선택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일제의 압잡이, 고문의 황제 덕기를 잡기 위해서였다. 덕기를 떠올리자 약산은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이를 갈았다. 덕기의 악행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독립군들은 누구라도 덕기의 손에만 걸리지 않기를 바랐다. 덕기에게 잡히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는 소문이 퍼졌다. 조선인이면서 조센징을 입에 달고 다니는 그는 순사를 거쳐 순사부장, 경부까지 승승장구했다. 함흥경찰서를 근거지로 그는 숱한 독립군을 잡아 고문을 했다.

그가 얼마나 악질이었는지 평안도는 물론 멀리 부산이나 목포까지도 소문이 자자했다. 조선팔도에서 제일 가는 악질 경찰 덕기는 서울의 덕술이 부산의 하형사 진주의 강형사 마산의 허병이와 더불어 조선의 4대 고문귀였다. 약산이 더 치를 떠는 것은 덕기가 청산리전투와 봉오동 전투에서 공을 세운 독립군 장군 다수를 고문하고 죽인 때문이었다. 김좌진 장군의 부하나 홍범도 장군의 부하들 가운데 그의 손에 죽은 경우가 여러명 있었다. 그는 일단 독립군이나 독립운동가를 잡으면 가혹하기가 이를데 없이 대했다. 차마 글로는 옮기지 못할 만행을 저질렀다. 눈을 도려내고 혀를 뽑았다. 그는 그런 과정을 고문을 기다리는 다음 고문 피해자들에게 보여주었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독립군들은 차마 동료가 지르는 비명을 피하기 위해 귀를 막고 눈을 돌렸다.

그러면 그는 고문을 멈추고 그들의 눈을 뜨게 하고 귀를 열게했다. 그것이 더 고통스러운 형벌이라는 것을 덕기는 알고 있었다. 자 보아라, 독립군의 최후가 어떤지를.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덕기는 뽑기의 달인이었다. 혀를 뽑고 손톱을 뽑고 발톱을 뽑았다. 도려내기도 잘 해 관절의 뼈를 살과 분리했고 나중에는 눈알을 얼굴에서 빼냈다. 항일 투사들이 덕기 이름만 나오면 두려움에 떨지요. 그보다 악질은 없어요. 그 자를 죽이지 않고는 내가 발을 뻗고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선생님도 반드시 그 자를 처단하라고 명령했고요. 약산은 선생이 그런 지시를 내리자 군말없이 받아들였다. 작전 지휘에 있어서는 현장 경험이 많은 그가 선생보다 낫다고 여겨 간혹 논쟁을 벌인 적이 있으나 그런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명령이 없더라도 자신이 나서야 할 판이었다. 

말하자면 덕기의 처단은 임정의 만장일치 결론이었다.  약산이 압록강을 선택한 것은 강을 넘어 덕기가 살고 있는 함경도를 치기 위해서였다. 덕기는 그런데 지금은 형사일보다는 관료가 되어 철도 사업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하나님이 있다면 어찌 이런 자를 용서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혀가 뽑히고 눈알이 얼굴에서 떨어져 땅에 굴러도 침묵하고 있다. 신이 하지 못한다면 내가 한다. 약산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덕기가 관료가 된 것을 평생 후회하게 해주마. 너의 반성은 바라지 않는다. 알고 보니 그는 형사일도 완전히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일거리가 생기면 고문을 하고 평상시에는 관료일을 하면서 부를 축적했다. 

철도 부설에 필요하면 그 쪽으로 갔고 경찰이나 헌병대에서 급하게 지원을 요청하면 두 말 없이 경찰서나 군부대로 달려나갔다. 새벽에도 고문에 필요하니 와달라고 하면 맨발로 뛰쳐 나갔다. 약산의 부하 가운데 한 명도 그에게 걸려 비명횡사했다. 여성 독립운가에게는 더 치욕적인 고문을 했다. 얼굴에 흉터를 남기는 것은 다반사고 임신을 하지 못할 정도로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도산이 그 여성 같은 분이 10명만 있으면 한국은 독립되었다는 그 독립운동가도 그 놈에게 걸려 들었다. 약산은 김마리아를 추억했다. 독립이 성취될 때까지는 우리 자신의 다리로 서야하고 우리 자신의 투지로 싸워야한다는 말을 늘 새기고 있는 것은 덕기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

이번 서울진공작전에 반드시 덕기를 체포한다. 그리고 죽이기 전에 서너 가지만 묻기로 했다.너는 왜 조선놈이 조선독립군을 잡고 고문하고 죽였느냐.먹고 살기 위해서다. 다른 방법도 있지 않았느냐? 배운 것이 그것이고 위에서 시키니 그대로 했을 뿐이다. 그리고 내 체질에도 잘 맞고. 그래 지금은 후회하느냐. 그런 생각은 해보지 않았으나 생각해 보고 나서 대답하겠다. 알았다. 열심히 생각해라. 지옥에서라도 생각이 정리되면 답장을 꼭 보내라. 목숨만은 살려달라. 그러마, 네 소원을 들어주되 눈과 혀를 뽑겠다. 어느 쪽을 택하겠느냐. 둘 다 아니다. 난 시키는 대로만 했다. 약산은 이런 대화를 상상하는 것조차 짜증이 났다. 그래서 빨리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네가 한 고문이 얼마나 잔인하고 악독한 것인지 네가 했던 방식을 그대로 따라하지는 않겠다. 너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너는 그것이 얼마나 지독한 것인지 알 것이다. 다만 독립군 제 1지대장의 명령으로 너를 사형에 처한다. 덕기가 제발 살려달라고 두 손을 내밀고 싹싹 빌었다. 고문할 때는 이런 날이 올 줄 몰랐어요. 알았으면 제가 이랬겠어요? 맹랑한 놈이다.  총알이 아까우니 저기 있는 저 돌로 한 방에 보내 주마. 그러기 전에 일제의 훈장을 받은 그 가슴을 발로 걷어차야지. 자랑스런 훈장이 찢기는 기분이 어떠냐. 약산은 한 마디 더했다. 사람을 죽이는 일인데 조금 더 대화가 필요하다 싶었다. 네가 그렇게 일본 노래를 잘 부른다면서? 왜놈들이 네 노래를 들으면서 우리 일본이노 사람보다 헤 노래를 잘 부른다 헤헤 하면서 박수를 쳤다지.

그래 죽으면서 불러라. 장송곡 치고는 제법 그럴듯 하겠지. 약산의 눈에서 피가 흘러 나왔다. 먼저간 동료가 눈에 어른거렸기 때문이다. 내가 상상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조국을 배신한 자의 말로는 똑똑히 보여주마. 내 너를 일본놈보다 먼저 잡아 반드시 처단하겠다.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부 사령관이 말했다. 그런데 사령관님. 그건 사사로운 감정도 들어간 것 아닙니까. 일제가 급하지요. 그깟놈 고문 형사 한 놈 때문에 지체한다면 나중에 후회할지 모르잖아요. 더구나 부하가 당했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살 수도 있고요. 그렇기도 하지만 조금 더 들어 보시오. 노기띈 얼굴로 약산이 덕기의 만행에 한 발 더 들어갔다.

신사참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평안도 사람을 닥치는 대로 잡아들였다. 하룻밤에 수백명이 걸려들었다. 그는 잡힌 피해자들이 팔둑에 고무줄을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 주먹을 쥐게 하고는 주사기를 가져와 드러난 힘줄에 찔렀다. 피가 가득차면 그것을 그대로 피해자 얼굴에 뿌렸다. 이른 바 착혈고문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피부가 백짓장이 되도록 뽑았다. 몸에서 피가 다 빠진 피해자가 더 이상 뽑을 피가 없으면 옆의 구덩이에 던져 넣었다. 피빠진 몸은 마른 나무처럼 가볍게 날아갔다. 달궈진 쇠젓가락으로 온 몸을 지지는 대상은 주로 사회주의 활동가들이었다. 이들은 독립운동을 병행했는데 잡히는 족족 자신의 살에서 타는 냄새를 자신의 코로 들이 마셔야 했다. 하도 지져대 손에 감각이 무뎌질 때까지도 덕기는 지지기를 멈추지 않았다.

간혹 아주 젊은 청년들도 잡혀왔다. 이십 대 이하인 경우 그는 호의를 베풀었다. 앞날이 창창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애들의 몸에는 상처를 내지 말라. 우리 황군에 유용하게 쓰일 몸이시다. 그러면서 주전자를 가져 오게 했다. 거꾸로 매달린 소년들의 콧구멍에는 뜨거운 고춧가루 물이 쉬지 않고 들어갔다. 비명을 지르다 기절하면 수건을 얼굴에 던졌다. 호흡이 멈춘 소년은 발작을 하다 자기가 판 구덩이 속으로 떨어졌다. 치안유지법이라는 이름으로 이들은 덕기손에 이렇게 죽어나갔단 말입니다. 이래도 내가 사사로운 개인 감정 때문에 이러는 겁니까. 부사령관은 고개를 숙였다.

일단 압록강에 넘으면 우리 특공조는 덕기의 집을 급습합니다. 그를 처단하고 나서 본대로 복귀하는 것이지요. 거기서 부터는 또다른 작전이 필요해요. 함경도경찰서를 불태우고 평양까지 일사천리로 진군해야 합니다. 남하하면서 간간히 적들과 교전이 벌어질 겁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름만 군대고 경찰이라 스스로 자중지란에 빠질 겁니다. 이런 것은 전혀 상상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한국에서 조선독립군과 전쟁을 한다는 시나리오를 일제는 짠 적이 없거든요.

그럴 겁니다. 이런 결정에 동조해 주다니 오늘은 분명 유쾌한 날입니다. 선전공작에 쓸 찌라시를 많이 준비합시다. 각각 100장씩은 가져야지요. 전단 살포를 하면서 남으로 갑시다. 전단지에 쓸 내용은 준비했습니까? 부사령관이 물었다. 조금씩 생각나는 대로 써야지요. 뭐 이런 식이면 어떤가요? 조국 광복을 위해 싸웁시다. 싸우다 힘이 부족할 때에는 이 넓은 만주벌판을 베개 삼아 죽을 것을 맹세 합니다. 만주벌판 대신 한반도라고 해도 좋고. 이것은 지청천 장군이 한 말이지요. 홍범도, 김좌진, 이범석 장군, 유관순, 김마리아, 김란사 열사의 말씀도 가슴에 새깁시다. 약산의 부대가 이렇게 남하에 속도를 낼 때 건강을 되찾은 휴의 역시 뒤질세라 부대를 정비했다.. 내가 건강을 되찾은 것처럼 조선도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 거뜬한 몸의 그가 제일 처음 생각한 것은 자신의 건강처럼 조국도 잃었던 것을 되찾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는 아프고 나서 더 강해졌다. 의심이 들던 독립에 대한 기대는 더 커졌고 움직임은 더 빨라졌다. 약산의 압록장 진격을 승인한 이후로 휴의의 자신감은 더 커졌다. 약산이라면 믿을 수 있지. 그가 압록강을 무사히 건너서 평양까지 접수해주면 두말할 것 없겠다. 우리 부대와 누가 먼저 평양에 도착하느냐 내기를 해도 좋아. 휴의는 또다른 사단의 책임자로 경쟁심이 일었다. 그는 두만강을 넘어야 한다. 아직 강바람은 차다. 하지만 시간을 늦출 수는 없다. 임정은 전례없이 서두르고 있었다. 약산은 지금쯤 강을 넘었을 것이다. 임정의 선생은 부상에서 막 회복하자 마자 전선으로 떠나는 것이 미안했던지 휴의에게는 개시 날짜를 물어왔다.

우리라고 질수야 없지요. 그러나 열흘도 아니고 하루 정도 늦는 것은 문제 될 것 없습니다. 각 대대와 중대장 인선까지 마쳤으니 내일 이른 아침 안개를 뚫고 출정할까 합니다. 좋아요. 두 분이서 경쟁 한 번 해보시지요. 임정 수뇌부는 이렇게 농담을 했다. 그러나 휴의의 긴장된 얼굴은 이번이 마지막 이라는 배수의 진을 치고 있었다. 더는 끌어올 병력도 없다. 중국도 제 앞가림하기에 바쁘다. 러시아는 믿을 수 없고 미국은 작은 반도 나라 조선쯤이야 지도에서 지웠을 것이다.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병력 손실을 최대한 줄여야 하고요. 알다시피 지원부대는 없습니다. 식량은 각자 조달해야 하는데 절대로 민간에 피해를 줘서는 안 돼요. 자발적 협조라도 반드시 갚겠다는 증서를 써주기 바랍니다.

휴의는 선생과 눈이 마주쳤다. 그런 것이라면 염려말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병사가 급하게 공격하고 이동할 때 사령관이 그것을 일일히 확인할 수는 없다. 그래서 휴의는 당연히 그래야지요, 라고 말하려다가 각 부대장에게 신신방부하도록 명령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전선의 특수성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일제나 독립군이나 백성을 대하는 태도가 별반 다르지 않다면 그들에게 독립은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선생은 이렇게 말하고 다시 휴의의 눈을 들여다 봤다. 사령관이 더 열심히 챙기라는 당부였다. 전투에서 이기고도 민심에서 지면 지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휴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했다. 백성들에게 써준 각서는 임정이 처리해야지요. 독립된 나라에서 주민에 진 빚을 열배로 갚아야 합니다. 곤궁한 그들에게 돕지는 못할망정 식량을 조달했다면 그것은 애국 이상의 그 무엇입니다. 선생은 말을 하면서 상자의 서랍을 이리저리 열더니 한 곳에 있던 지폐 꾸러미를 휴의에게 내밀었다. 약탈하는 대신 정당하게 값을 지불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것은 절실할 때 사용하시오. 전적으로 장군에게 맡깁니다. 휴장군은 임정의 살림을 뻔히 알면서도 거액을 내놓은 선생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꼈다. 그러나 그러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그는 봉투를 앞에 놓고 말을 이었다.

이제 제대로 한 판 붙는 거니까요. 일단 치고 빠지는 작전을 쓸 겁니다. 아직 수적으로는 우리가 불리하니 그 방법이 최선이지요. 남하하면서 일제 경찰서와 관공서를 습격하고 방어진지를 기습하면 적들은 당황해서 허둥댈 겁니다. 선생의 눈에서 그게 맞다고 동조하는 듯한 눈빛이 느껴졌다. 조선 땅에서 독립군과 이런 심각한 전투를 예상한 일본군은 아마도 육군은 물론 해공군까지도 한 명도 예상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그야말로 기습이지요. 맞아요. 그래서 작전이 필요한 거고요. 일정은 나와 있나요? 경성까지 한 달의 시간을 잡고 있어요. 평양까지 말이지요? 아닙니다. 경성까지요. 그러면 3월달이 되겠군요. 서울에서 봄을 맞게 되는 꿈을 꾸어 봅니다. 어쨌든 1919년 그날의 함성을 기념할 수 있도록 해 볼 참입니다. 그날의 만세소리를 일제에게 들려줘야지요.

선생은 또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종로서 부대가 3천 명의 지원병을 압록강과 두만강 일원에 깔아 놓았다는 첩보를 받았어요. 그들이 지키고 있다면 우회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 점을 저도 걱정하고 있는데요. 매복하는 적과 싸우는 것은 자살행위와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완용의 병력은 열에 아홉이 조선인입니다. 그들을 회유하거나 선무 공작을 통해 우리 편으로 끌어와야 합니다. 싸우기 전에 적진을 와해시킬 계획입니다. 다 생각이 있었네요. 약산도 찌라시 제작이 중요하다고 일전에 말했었지요. 그런 작전도 일단은 적과 접촉해야 하는데 전투 초반에 인명 소실이 크면 낭패지요.

그래서 작전을 하루 정도 늦춘 겁니다. 뚜렷한 해결책은 없지만 오늘 회의에서 중요한 단서를 잡았어요. 함경도 뱃사공을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서너 척을 이미 섭외 완료 했어요. 일부를 뱃사공으로 변장시켜 놓고 적의 위치와 동태를 파악한 다음 싸울 것인지 아니면 우회해서 통과할 것인지 정하려고요. 의심을 사지 않을까요? 아직 고기를 잡을 시기는 아니잖아요? 어구를 손질하는 척한다면 크게 의심 사지는 않을 겁니다. 선발 일개 중대를 배에 태워 함경도에 상륙시킨 다음 야밤을 틈타 조금씩 남하하려고요. 적의 반격이 없다면 굳이 공격하지 않고 빠르게 진지를 벗어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예상이고요. 직접 현장에 가서 부딪쳤을 때 결론이 날 겁니다.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어요. 건투를 비오. 사진 한 번 찍읍시다.휴의는 임정의 지도자가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자 따라 일어섰다. 낡은 태극기를 배경으로 휴의는 왼손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오른손에 권총을 잡고 여차하면 발사하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무운을 비오. 약산도 삼일 전 이런 자세로 사진을 찍고 떠났습니다. 휴장군 부디 건강을 유의하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총알 세 발을 맞고도 한 달이 못되 이렇게 건강합니다. 일제의 총은 썩은 총과 진배 없습니다. 사람 살 하나 파고들지 못하는 총으로 어찌 우리 독립군을 상대 할 수 있겠습니까?

휴의는 객기다 싶을 정도로 자신감을 내보였다. 그것은 선생이나 임정에 대한 각오가 아니었다.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다짐이었고 부하들에게 주는 용기였다. 나가자, 싸우러 가자. 휴의는 속으로 이렇게 다짐하면서 임정의 안가를 나와 빠르게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산속에 있는 부대원들과 합류했다.  한편 완용은 압록강이나 두만강에 병력을 배치하지 못한 상태였다. 신문에는 한 달 전에 조선의 학도병 지원자 삼천명이 종로서장의 인솔하에 조-중 국겅으로 떠났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를 근거로 선생은 그 기간이면 벌써 병력 배치가 끝났을 것으로 짐작하고 휴의에게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병력 모집은 쉽지 않았다.젊은이들은 출세한다는 말에 쉽게 속아 넘어가지 않았고 무리하게 강제징집을 해도 잡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노동자, 농민까지 심지어 오십 대까지 닥치는 대로 모았으나 삼 천명에는 미치지 못한 겨우 이 천명만을 모았을 뿐이다. 그들에게 총검술을 익히는 기본 군사 교육에만 보름 이상이 걸렸다. 완용은 초조했다. 그도 첩보를 통해 휴의의 군대가 남하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한판 승부를 벌일 장소로 국경의 강을 택했고 그도 그런 장소를 마다하지 않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래서 어중이떠중이라고 할 수 있는 부대라도 급조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인원은 그 정도면 부족하지만 해볼만 한 것으로 봤다. 조선독립군은 기껏해야 수 백명을 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훈련된 자들이라고 해도 일당백은 불가하다. 숫자로 밀어붙이자는 것이 일단 완용의 생각이었다. 일제는 그들 자신도 지키기 버거워 조선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크게 게의치 않았다. 게의치 않다기 보다는 잡아 놓은 물고기에 신경쓸 겨늘이 없었던 것이다. 총독은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미군과의 태평양 전쟁이 중요했지 산발적으로 터지는 조선독립군 정도는 안중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종로서장이 부서장에게 치안을 맡기고 국경으로 이동한다고 했을 때 탐탁치 않았다. 굳이 먼길을 갈 이유가 없고 더구나 그렇게 많은 병력을 옮기 필요도 없었다. 각하, 이 병력은 조센징을 처단하기도 하지만 여차하면 미제를 후방에서 칠 귀중한 자원입니다. 태평양 전쟁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후방을 친다는 말에 총독은 알았다는 듯이 완용의 출병을 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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