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뉴스] 말기 환자에게 의사가 약물 등을 제공해 환자 스스로 삶을 마칠 수 있도록 하는 일명 ‘조력존엄사법’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존엄사 및 안락사에 대한 사회적 시각이 다양하고,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면서 조력존엄사의 법제화는 ‘시기상조’임을 분명히 했다.
대한의사협회(회장 이필수)는 최근 상임이사회를 통해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발의한 ‘호스피스ㆍ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해 논의, 각 산하단체 의견조회를 통해 정리된 의견을 국회 및 보건복지부에 제출했다.
조력존엄사란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가 본인이 희망하는 경우 담당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삶을 마무리 하는 것으로, ‘의사조력자살’이라 하는데, 국내법상 안락사는 모두 불법이지만, 조력존엄사는 환자가 스스로 약물을 투약하는 형태라는 점에서 의사가 약물을 직접 환자에게 투약하는 전통적 의미의 안락사와 차이가 있다.
안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조력존엄사대상자 및 조력존엄사의 정의를 신설하고, 보건복지부 산하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를 신설하고, 조력존엄사를 희망하는 사람이 위원회에 조력존엄사를 신청해 심사를 받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대상자는 말기 환자에 해당해야 하고,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이 발생하고 있으며, 자신의 의사에 따라 조력존엄사를 희망하고 있다는 세 가지 요건을 증명해야 한다.
조력존엄사대상자로서 대상자 결정일부터 1개월이 경과하고, 대상자 본인이 담당의사 및 전문의 2인에게 조력존엄사를 희망한다는 의사표시를 한 경우에 한하여 조력존엄사를 이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골자로 하고 있다.
조력존엄사를 도운 담당 의사에 대해선 형법상 자살방조죄 적용이 배제된다. 관리기관 등에 종사하거나 종사하였던 사람과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에 근무하거나 근무했던 사람이 조력존엄사 및 그 이행에 관하여 업무상 알게 된 정보를 유출해서는 안 되고, 이를 위반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안 의원은 “생자(生者)는 필멸(必滅)하기에 누구나 죽음은 찾아온다"” “죽음의 논의를 금기시할 것이 아니라 품위 있고 존엄한 죽음, 이른바 ‘웰다잉’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며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해당 개정안에 대해 의협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먼저 의협은 조력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존엄사 및 안락사에 대한 사회적 시각은 매우 다양하며, 죽음에 대한 권리를 강조한 측면과 윤리를 강조한 측면에서 사회적 논란이 지속되는 등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으로, 조력존엄사를 허용하는 법제화는 시기상조라는 것.
이어 “기존 연명의료결정법에서 임종기에 국한한 연명의료중단에 대한 결정은 자기결정권과 환자에게 최선의 이익이 될 수 있는 방향에서 고민하도록 하고, 동시에 어떤 경우에도 임종에 이르는 과정을 앞당기도록 시간을 단축하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며 “연명의료중단은 남은 삶에 인위적인 생명의 단축은 하지 않지만 의미 있는 삶을 사는데 기여하는 행위가 아니라면 무의미한 의료 활동을 중단하거나 유보하는 내용”이라고 전했다.
또 “호스피스완화의료는 이런 시기에 삶에 의미를 불어넣어주는 활동이자 의료”라며 “조력존엄사는 생명을 앞당기는 행위로 연명의료결정 중단이나 호스피스완화의료와는 성격이 다르고, 이 또한 세계보건기구에서도 엄격히 구분하고 있는 만큼 조력존엄사를 허용하는 것은 생명경시 풍조를 확산시키고 만연시킬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특히 의협은 호스피스완화의료를 확대할 수 있는 시스템을 우선 마련해야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의협은 “호스피스완화의료 대상질환의 확대를 비롯한 환자들의 삶의 질 개선과 우울증 등 정신의학적, 심리사회적 지원을 위한 관련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고, 임종기 연명의료여부에 관한 논의를 좀 더 일찍 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마련해야한다”며 “연명의료 관련 질 높은 상담과 사회저변 확대가 필요하고, 인생 후반부에 삶의 질을 높이는 정책들을 고려해야한다”고 말했다.
의료인들의 경우 말기와 임종기를 달리 적용하면서 환자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으므로 지금까지 진행된 의료진 교육도 지속할 필요가 있다는 게 의협의 설명이다.
의협은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의 구성을 보면 보건복지부장관이 위원장이 되고 고위공무원, 조력존엄사 관련 전문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 윤리 및 심리 분야 전문가를 위원으로 위촉하도록 되어 있다”며 “우리나라에 조력존엄사 관련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가 있을 지와 복지부 장관과 고위공무원이 조력존엄사 대상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또 “윤리 및 심리분야 전문가도 위원이 될 수 있으나 의사가 아닌 해당 전문가가 환자의 현재 상태를 평가하거나 판단할 근거나 자료가 없어 객관적인 평가가 불가능한 실정”이라며 “심사결정 기한이 명시되어 있지 않아서 심사가 지연되는 경우, 말기 환자의 상태 변화에 따른 현장에서의 혼란을 가중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대한의사협회는 조력존엄사의 최종 이행의 결정 주체인 의사의 보호방안도 미흡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의협은 “조력존엄사를 도운 담당의사에 대해 형법에 따른 자살방조죄의 적용을 배제한다고 하지만, 조력존엄사는 살인과 자살이라는 법적 정의가 모호하다”며 “자살방조죄를 면책한다고 하여 환자의 죽음에 따른 법적 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개연성이 높은 만큼 이에 대한 다각적인 검토와 대책 방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연명의료결정법은 연명의료, 호스피스완화의료라는 두 가지 상이한 사안이 동일한 법에 제정되어 혼선을 초래하는 면이 있고, 실제로 연명의료결정 관련 사항은 보건복지부 대행처로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이, 호스피스완화의료 관련 사항은 복지부 대행처로 중앙호스피스센터가 각각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이 같은 상황에서 조력존엄사라는 사안을 연명의료결정법에 추가할 경우 법의 일관성을 저해하고 이를 시행하는 의료현장의 혼선 초래는 물론 대상 국민의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