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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5.브로크백 마운틴(2005)- 산이 있고 두 남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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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5.브로크백 마운틴(2005)- 산이 있고 두 남자가 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1.12.24 11:0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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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산이 있다. 초원이 있고 계곡이 있다. 나무와 풀이 무성하고 꽃이 피었다.

그곳에 가고 싶다. 트래킹에 목이 무척 마르다. 저곳이라면 코로나 19로 가지 못한 여행지로 최적지다. 리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을 보니 더더욱 산이 그립다.

시작과 동시에 보여주고 끝날 때까지 장엄한 풍광이 시선을 압도한다. 등산화 끈 질끈 조이고 처지지 않고 앞장서 치고 나가고 싶다.

각설하고 말을 타고 두 남자가 흐르는 강물을 건넌다. 청바지에 카우보이 모자를 썼다. 잘 어울린다. 그들 곁에는 지켜야 할 양 떼들이 있다. 이보다 더 목가적인 풍경은 단언컨대 없다.

낮에는 양을 보고 밤에는 사냥으로 잡은 사슴 고기를 안주 삼아 위스키를 나발 분다. 모닥불은 타닥타닥 타오르고 달은 휘영청 밝았고 별은 가까이 내려앉았다.

두 남자 무슨 일을 벌일 것만 같다. 그러지 않으면 되레 이상하다. 과연 그들은 사랑한다. 우정의 다리를 넘었고 마침내 그렇게 됐다.

남자 둘의 사랑이라니. 배경이 1963년 미국이니 이런 사랑 드러내놓고 할 수 없다. 숨어서 하기에 적당한 곳, 바로 브로크백 마운틴이다.

지키라는 양들은 아니 지키고 수작질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고용주는 이런 사실을 알까. ‘양들이 침묵’하고 있느니 모를 줄 안다면 오산이다.

알거나 말거나 그들은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목마른 것을 채우고 또 채운다. 그러나 사랑만으로 밥 먹고 살 수 없다. 둘은 각자의 길로 간다.

산에 오기 전에 한 결혼 약속을 델마( 히스 데지)는 지킨다. 딸 둘이 태어났다. 헤어진 지 4년이 흘렀다. 트위스트( 제이크 질렌할)도 아들 하나를 낳았다. 어느 날 델마는 엽서 한 통을 받는다.

‘만나자, 우리 당장 만나.’

광활한 설산 배경이 있는 작은 엽서 하나. 엽서는 작지만 그 내용은 산 만큼 무겁고 진중하다. 꿈에 그리던 애인이 나타났다. 심장은 뛰고 눈은 요동친다. 아내에게는 낚시 간다는 핑계를 대고 서둘러 트위스트의 차에 오른다.

그 전에 아내는 보고야 말았다. 눈이 있다고 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닌데 계단에서 둘이 만나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아니 보았으면 차라리 좋았을 것을. 그 충격을 뭐라고 해야 할까.

객석의 관객은 아, 하는 탄성을 저도 모르게 지른다. 아내는 그 사실을 모른 척한다. 둘은 흰색과 검은색 말을 타고 나란히 그 산으로 들어 간다. 둘 만의 공간으로.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은 꿀보다 더 달콤하다. 산은 옛 모습 그대로 사랑 모습을 지켜보고 하늘은 넉넉한 품을 내준다. 그러나 또 둘은 헤어져야 한다.

좋은 것을 위해서 때로는 싫은 것을 해야 할 때 사나이의 가슴은 찢어진다. 그 고통 피하고 싶다. 피가 나도록 벽을 쳐 보지만 그뿐. 떠난 사랑이 다시 오는 시간 너무 길다.

그래서 트위스트는 통나무 집을 짓고 작은 목장을 하면서 같이 살 것을 제의한다. 델마도 그러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까이 두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 아닌가.

그러나 델마는 입술을 깨물며 거절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져야 하는 델마와 트위스트의 심정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관객들은 차라리 눈을 감고 만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렀다. 로데오 경기중 만난 부유한 집안의 딸과 트위스트는 안정된 생활을 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장인과 불화하고 아내와도 순조롭지 않다.

마음은 늘 와이오밍에 있다. 아내보다 델마가 더 소중하다. 델마는 이혼했다. 아내는 밖으로만 도는 그를 용서할 수 없었다.

자, 델마가 이혼했으니 트위스트도 이혼하고 둘이 살면 문제는 풀린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왕의 길이다. 신나는 트위스트의 모습은 그야말로 감기와 사랑은 속일 수 없는 것을 증명한다.

떠나는 길은 정반대다. 트위스트는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을 기어이 흘린다. 라디오의 음악은 처량하다. 둘은 일 년에 겨우 한두 번 만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한다.

▲ 히스 레지(좌)와 제이크 질렌할의 연기가 볼 만 하다. 광할한 산야에서 벌이는 원초적 사랑은 보는 이의 가슴을 뜨겁게 달군다.
▲ 히스 레지(좌)와 제이크 질렌할의 연기가 볼 만 하다. 광할한 산야에서 벌이는 원초적 사랑은 보는 이의 가슴을 뜨겁게 달군다.

그 사이 트위스트는 멕시코로 원정을 떠나 다른 남자를 찾는다. 그 사실을 안 델마는 한 번만 더 그러면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목장주 아내와의 불륜은 용서할 수 있어도 다른 남자와의 사랑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 이쯤이면 두 남자의 사랑의 깊이가 어느 정도 인지 가늠이 될 것이다.

그렇게 또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 델마의 19살 딸은 결혼 통보를 한다. 델마의 전처는 새 남자와 가정을 꾸리고 나름대로 행복을 찾고 있다.

그리고 또 세월이 흘렀다. 델마가 트위스트에게 보낸 엽서가 반송됐다. 반송의 이유는 수취인 사망.

타이어 작업 중 사망했다고 그의 아내는 델마에게 전화로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여러 명에게 폭행당해 죽었다. ( 어린 시절 보았던 게이의 죽음과 양 한 마리의 죽음은 트위스트의 죽음을 암시했나.)

어쨌든 여기서 죽음의 이유는 중요치 않다. 트위스트가 죽었으므로 델마는 이제 짝 잃은 기러기가 됐다. 그 기러기는 죽은 자의 흔적을 찾아서 떠났고 그 흔적에게 약속을 한다.

그 약속은 정절을 지키면서 평생 살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남자 찾아 행복할 테니 이해해 달라고 하는 것인지 관객들은 어느 쪽인지 궁금해 할 필 요없다.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유골이 브르크백 마운틴에 뿌려졌는지 아닌지 알고자 하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산에 가고 싶다. 사랑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산수를 즐기기 위해서다. 만년설을 따라 능선을 넘고 넘어 정상을 향해 오르고 싶다.

그래서 오늘의 결론은 틈나면 등산이다. 혹시 알겠는가. 말을 풀어 놓고 모닥불 옆에서 우리들의 우정 대신 사랑 노름하는 델마와 트위스트가 그곳에 있을지.

그리고 사족 하나. 사랑에는 아픔이 따른다는 것, 그것을 명심 또 명심하자는 것.

국가: 미국

감독: 리안

출연: 히스 레지, 제이크 질렌할

평점:

: 광활한 산야에서 벌이는 두 남자의 사랑이 비속하지 않고 담백하다. 쿨하니 추하지 않다.

저런 게 동성애라면 누군가는 나쁘지 않겠다고 손을 뻗을 수 있다.

리안 감독은 두 남자를 통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가장 아름다운 게이 서부극을 만들어 냈다.( 사실 그가 만든 영화는 어떤 영화든 보고 나서 후회하는 경우 1도 없다. 다 찾아서 보면 인생이 그만큼 풍부해 진다.)

눈빛만으로도 너에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을, 한두 마디 말로는 마초의 전부를 드러내는 히스 레지와 그에 맞서는 짙은 눈썹, 약간의 쌍꺼풀 눈을 카우보이 모자 밑으로 내리깔면서 이런 나를 저버리지는 못하겠지, 애간장을 녹이면서 다가서는 제이크 질렌할의 연기는 볼수록 사실 같다.

있는 힘을 다해 사랑한 그들의 노력은 과장 되지 않았다. 결코 '바보들의 행진'이 아니었음을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모두가 알고 있다.

깊은 산에 가면 또 하나 생각나는 게 있을 거다. 바로 통기타 선율이다. 시종일관 가슴을 저미는 여섯 줄의 금속성 느낌이 싫지 않다.

여운이 남는다면 히스 레지의 허스키한 목소리와 엇비슷한 보니 타일러의 It’s heartache를 들어도 좋겠다. 사랑은 아픔이라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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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구나 2022-01-05 20:22:17
동성애 미화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