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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관리의 죽음(1883)- 재채기 한 번으로 그럴 수 있다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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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관리의 죽음(1883)- 재채기 한 번으로 그럴 수 있다는 교훈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1.06.22 09:1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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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드미트리치 체르뱌코프( 러시아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름 뒤에 프나 스키로 끝나는 경우가 흔하다.)는 어느 순간 코의 점막에 자극을 받았다.

예민한 코의 안쪽을 자극한 것은 알레르기 비염이 발작적 반사작용을 일으킨 것은 아니다. (작품 어디에도 그의 코나 다른 신체 기관의 이상 반응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렇다면 강한 화학적 반응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여기에는 향수가 범인으로 지목될 수 있겠다. 장소가 오페라 극장이니 여성 관객도 다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도 재채기의 정확한 이유로 설명할 수 없다. 회계원과 동반한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언급은 나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재채기의 원인 중 마지막으로 남은 정신의 변화에 초점이 맞춰진다. (재채기를 할 당시 이반은 행복의 절정에 다다랐다.)

지나친 행복은 재채기를 불러왔고 제목처럼 그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행복의 정점에서 죽음에 이른 이반에게 재채기 이후에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극장의 두 번째 줄에 앉아있던 그는 갑자기 재채기를 했다.( 당연한 일이다. 재채기는 소설가들이 자주 쓰는 단어처럼 조용히, 조심스럽게 등장하지 않고 갑자기 튀어나온다.)

재채기 직전에 이반은 대부분 사람들처럼 얼굴을 찡그리고 눈을 희번덕거리며 숨을 멈추었다. 그다음에는 앳취, 하면서 재채기를 질러 댔다.

안톤 체호프에 따르지 않더라도 재채기는 그 누구라도, 그 어디에서라도 막을 수 없다.

이 말은 돌려 말하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재채기를 멈출 수 없다는 뜻이다. (이것은 의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다.)농부도 경찰서장도 심지어 국장도 재채기를 한다.

따라서 그가 재채기를 했다고 해서 당황할 필요는 없다. 손수건으로 얼굴을 훔친 다음 예절 바른 사람답게 주위를 한 번 둘러보면 그만이다.

그런데 그 직후 남에게 폐를 끼치는 당황스러운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앞줄에 앉은( 두 번째 줄이 아닌 첫 번째 줄에 앉았으니 지위나 재력으로 보아 이반보다 높고 많을 것이다.) 노인이 자신의 대머리와 목을 장갑으로 열심히 닦으며 뭐라고 투덜대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정도가 뭐 대수냐고 여길 수 있으나 그 주인공이 운수성에 근무하는 브리잘로프 장군이라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저분에게 침이 튀었다.’

당연히 사과해야 마땅하다.

그는 예의 바른 사람이었으므로 비록 장군이 부서장은 아니더라도 헛기침을 하고 앞으로 몸을 숙여 장군의 귀에다 대고

‘용서하세요. 각하, 제가 침을 튀겼군요. 본의가 아니었음니다만...’하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군은 너그럽게 괜찮아, 괜찮아 하고 호탕하게 받았다.

여기서 상황이 정리됐으면 회계원은 도저히 죽을 리가 없다. 그러나 이반은 그 말을 듣고도 제발 용서해 달라고 한 번 더 정중히 사과했다.

장군은 이번에도

‘아, 앉아요. 공연 좀 봅시다’ 하고 너그럽게 용서했다. ( 이 대목에서 우리는 장군의 인격이 어느 정도 인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반은 그의 말을 따라 공연에 신경을 집중해야 했다. 떠났던 완전한 행복을 다시 찾아왔어야 했다.

그러나 오페라에 대한 집중은 벌써 물 건넌지 오래됐다. 대신 곤란한 감정과 불안감이 자신을 엄습해 오는 것을 느꼈다.

휴식 시간에 그는 장군에게 다시 다가가서는 한참을 얼쩡거리다 침을 튀긴 것에 대한 용서를 한 번 더 구했다.

장군은 이번에도 너그럽게 나는 그것은 벌써 잊었는데 아직도 그 얘기냐고 약간 핀잔을 주었다.

상대에 대한 지나친 비굴이나 아첨은 어떤 때는 상대를 기분 나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이반은 알지 못했다.

장군도 이제는 참을 수 없었던지 신경질적으로 아랫입술을 깨물고 말았다. ( 장군이 아닌 다른 사람이 그랬어도 이해할만 하다.)

▲ 갑자기 터져 나오는 재채기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장소도 가리지 않는다.
▲ 갑자기 터져 나오는 재채기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장소도 가리지 않는다.

그 모습을 본 이반은 잊어버렸다면서 그 눈에 원한이 서린 것을 보고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장황한 해명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집에 돌아온 그는 아내에게 사실을 말했고 아내는 별 것 아니라고 하면서도 직접 찾아가서 사과하지 않으면 예절도 못 차린다고 오해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 부창부수가 따로 없다.)

다음날 이반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당사자에게 사과하러 가는 옷차림에 걸맞게 새 관복을 차려입고 면도도 말끔하게 했다.

장군의 접견실에 도착한 그는 기억하실지 모르나 어제 극장에서 제채기한 사람이 자신임을 다시 한번 되뇌면서 침 튀긴 것을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을 하고 마침 참이었다.

그런데 장군은 이번에는 장군답지 않게 화를 버럭 냈다.

‘그래서 어쩌자는 거죠.’

이반의 실망이 어느 정도 인지 독자들은 짐작할 것이다. 실망한 이반이 여기서 물러났을까, 아니면 사과를 제대로 받아 줄 때까지 끈질기게 장군을 물어뜯었을까.

이반은 장군이 화가 났다는 것을 모를 만큼 눈치가 없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장군의 내실까지 들어가 외람된 말씀이지만 감히 장군께 폐를 끼친 것에 대한 참회의 감정을 이실직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군은 화를 내는 대신 울상을 지었다.

뭐든지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고 했다. 이반은 아내와 오래 행복하고 장수할 수 있었음에도 짧은 생을 마감했다.

적당히 물러서고 적당히 수습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 <관리의 죽음>은 안톤 체호프의 비교적 초기 명작이다. 분량은 너무나도 짧아 이 독후감 분량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함에도 그가 왜 단편 작가의 최고봉이라고 찬사를 받는지 <관리의 죽음>은 명확하게 보여 주고 있다.

사소한 일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얼마나 허망하게 결말을 짓는지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이런 일들을 겪을 수 있다.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나면 그것이 재채기가 됐든 기침이 됐든 적당한 선에서 앞사람에게 예의를 지키면 된다.

앞사람도 그 이상을 원하지 않는다. 그 역시 재채기를 하고 재채기의 생리는 예고 없이 입에서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족을 더하면 이반은 장군을 오만한 인간이라고 보고 사과하는 대신 편지를 쓰기로 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이야기를 써야할 지 몰라 또다시 장군을 찾아가는 우를 범한다.

‘각하, 저는 어제 와서 폐를 끼친 사람입니다.’ (놀리려는 생각은 전혀 없고 존경심 때문이라고 장황하게 떠들어 댄다.)

장군은 군인답게 짧고 강한 어조로 이렇게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꺼져. 꺼져버리라고.’

그 순간 이반의 뱃속에서 무언가가 터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상태로 그는 집에 돌아와 관복도 벗지 않은채로 소파에 누었다.

‘그리고...죽었다.’

그의 죽음은 발작적인 코의 점막 자극 때문이 아니었다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것이어서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돌연사로 정의돼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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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 2023-11-03 17:22:42
이게 기사 ... 부끄럽지도 않나요. 작품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