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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조준경에서 한시바삐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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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조준경에서 한시바삐 벗어나야 한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12.02 1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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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바삐 벗어나야 한다. 적에게 노출된 위치는 표적이 된다. 누군가 지금쯤 조준경을 들여다보면서 방아쇠에 들어간 손가락에 힘을 줄 것이다.

그러기 전에 어서 피해야 한다. 그러나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이제는 뒷걸음질도 필요 없다.

그냥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 그래서 내 몸을 드러내서라도 달려나가고 싶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못했다. 대신 그 자리에서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주저 앉았다고 했지만 실상 소대장은 아무런 움직임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하려고 해도 할 수 없었다. 그 전 상태 그대로 엎어져 있을 뿐이었다.

자신이 엎어져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다시 냄새가 올라왔다. 몸 하나 까딱할 수 없는데 코로 들어오는 역겨운 냄새는 속을 뒤틀었다. 먹은 것이 없는데 무언가 위로 올라오고 있다.

아까 막았던 손으로 다시 입을 막으려고 했으나 이번에는 손도 움직일 수 없다. 의식은 있는데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자 가위눌리는 꿈속에 처박혔을 때처럼 소대장은 비참한 생각이 들었다.

꿈속에서 빠져나오기만 하면 되는데 괴롭기만 할 뿐 꿈의 상태는 계속되고 있다. 이럴 때는 아픈 부위를 세게 꼬집어 보면 된다.

그러나 꼬집을 수 있는 손가락을 피부로 가져갈 수 없다. 같은 피부인데 그래서 거리도 10센티 미터도 안되는데 피부에서 피부로 옮기기가 그렇게 어렵다.

그러기만 하면 예민한 피부가 반응하면서 아픔으로 꿈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포기해야 하나. 그러려고 하는데 그 순간 참았던 속에 있던 것이 울컥하면서 위로 솟아올랐다.

땅속에 있는 물이 갑자기 어떤 통로를 만나 빠져나오는 것처럼 순식간에 토사물이 입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이번에도 역한 냄새가 났다.

나오면서 동시에 냄새를 뿌렸다. 어지간히 이골이 난 냄새였으나 새로운 냄새는 또 다른 새로운 냄새 위에 더해졌다. 냄새가 냄새를 덮는 형국이었다.

소대장은 냄새를 피해 겨우 몸을 돌렸다. 그러자 눈이 떠졌다. 그러고 보니 계속해서 눈을 감고 있었던 모양이다. 테이프로 붙여 놨다가 떼는 것처럼 무슨 딱 하는 소리가 나더니 눈이 떠졌고 그 사이로 무언가 보였다.

처음에는 희미하다가 점차 밝아 지더니 식별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그것은 파란색이었고 하늘이었다. 하늘은 어제와 같은 모습이었다. 구름 한 점도 피어 있었다. 뭉게 구름이 저쪽으로 흘러갔다. 아마도 북쪽일 것이다.

소대장은 누워 있으면서도 방향을 감지했다. 자신이 가야 할 곳을 아는 것은 죽음으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는 왔던 곳으로 다시 가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부하들이 있는 곳에 도착하면 그는 살았다는 안도감을 가질 수 있다.

그곳이나 이곳이나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것은 마차가지였으나 이곳은 직감적으로 아래쪽 보다 더 위험했다. 살기 위해서 그는 아래로 가야 한다고 중얼 거렸고 아래는 그가 말한 남쪽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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