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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4 23:04 (수)
348. JSA(2000)- 야속한 역사의 수레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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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8. JSA(2000)- 야속한 역사의 수레바퀴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8.26 0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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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더라도 앞으로 가야 할 것이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다. 그런데 이것은 평행선이 최선이라는 듯 움직일 줄 모른다. 간혹 앞으로 가나 결국 뒤로 밀려 제자리걸음이다.

금방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가고 서로 불가침 조약 체결은 따논 당상인 것처럼 보인 것이 불과 이년 전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어떤가. 적대적이다 못해 금방 전쟁이 터져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황이다.

허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다시 좋은 세상이 온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될까. 만약 그런 기회가 온다면 이번에 오는 기회는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겠다.

판문점에서 남북과 미 대통령이 다시 만나 평화의 도장 꽉 찍기를 바란다. 그래서 판문점은 진실을 감춤으로써 평화가 유지되는 곳이 아니라 진실을 드러내 평화와 통일이 되는 곳으로 기억돼야 한다,

남북이 원하는 건 각자 주장이 끝나면 사건이 흐지부지되는 것이다, 라는 박찬욱 감독의 <JSA>의 영화 대사가 더는 통용되지 않아야 한다.

판문점은 남북이 각자 주장을 받아들이고 통일을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곳이다, 라고 바뀌어야 한다.

그런 희망 느닷없이 가져 보는 것은 판문점 평화의 집과 그 인근의 비무장 지대가 이 영화의 배경이기 때문이다. 그곳에 남북 병사가 마주 보고 대치하고 있다.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적대하기 위해서다. 판문점은 비참한 곳이다. 이곳 병사들은 잠복과 철수 그리고 근무로 적의 수상한 동태를 살핀다.

이수혁 병장(이병헌)은 제대 말년이다. 몇 달 후면 그리던 고향 앞으로 돌아간다. 남성식 일병(김태우)이 같은 근무조다. 둘은 호흡을 맞춘다.

북에는 오경필 중사(송강호)와 정우진 전사(신하균)가 카운터 파트너로 나선다. 이 병장은 오 중사를 형이라고 부른다. 남 일병은 정 전사를 동생으로 여긴다. 계급이 아닌 나이를 따져 보니 그렇다.

이들은 어찌어찌해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수시로 들락날락하면서 친해진다. 적에서 형, 동생 하는 사이가 됐다.

닭 씨름도 하고 서서 마주 보고 밀치기도 하고 상대방을 웃음 짓게 만드는 무언가를 서로 주고받기도 한다. 서로에게 빠져도 단단히 빠졌다. 일이 터지기 딱 알맞은 군기 없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온 중립국 스위스의 소령(이영애)은 자신이 스위스인임을 증명하기 위해 빅토리녹스의 아미용 나이프를 꺼내 보이며 웃고 있다.
▲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온 중립국 스위스의 소령(이영애)은 자신이 스위스인임을 증명하기 위해 빅토리녹스의 아미용 나이프를 꺼내 보이며 웃고 있다.

결국 사단이 났다. 작별 파티를 준비하다 북한군 병사가 죽고 다친다. 총소리에 비상이 걸린다. 양측은 확전을 피하기 위해 허공에 대고 맞사격 하다 끝난다.

사상자가 많이 생길 경우 전쟁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다행히 적당한 선에 멈춘다. 진실을 감춰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사건 조사를 위해 중립국 스위스에서 소령( 이영애)이 조사에 나선다. 소령은 인민군 장교 출신의 딸로 한국에서 산 적은 없지만 배워서 한국말을 능숙하게 구사한다.

조사 과정은 험난하다. 서로 비난하고 상대측 잘못을 부각시키려 애쓴다. 앞서 판문점의 어떤 곳인지는 말했다. 흐지부지되고 유명무실해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조사가 진행되면서 소령은 네 사람이 서로 친하게 왕래했음을 안다. 두 개의 보고서 파일을 앞에 놓고 진실을 말해 달라는 소령의 말에 젊은 피가 흔들린다.

더구나 그 대가는 지뢰 밟은 자신을 살린 오 중사의 신병과 관련된 문제다. 결국 소령은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한발 다가선다.

이 영화는 작품성은 물론 흥행에도 성공했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판문점 상황과 실제 비무장 지대 근무를 실감 나게 표현했다.

지뢰를 밟고 오래 서 있는가 하면 편지 뭉치를 실로 매달로 던지는 장면등은 어릴 적 꿈꾸던 가상 현실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러면 어떠냐, 영화적 완성도나 장치로 손색이 없는 것을.

2015년에 재개봉 했다.

오랜만에 다시 보는 영화는 그동안 사건이 많이 벌어져서인지 놀랍다기보다는 앞으로 한 발도 전진하지 못한 소원한 남북관계 때문에 보는 내내 답답했다.

박 감독의 JSA 2가 나온다면 두어 발 앞으로 나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 담겼으면 좋겠다.

국가: 한국

감독: 박찬욱

출연: 이병헌, 송강호

평점:

: 살기 위해 외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나 노동당이나 수령 만세 같은 기괴한 장면이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에 가까운 것으로 보여 오 중사를 연기한 송강호의 당황하면서도 애처로운 표정에 이심전심의 마음이 물들 수밖에 없다.

내가 그라면 그 상황에서 오 중사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더할 수도 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이 병장의 마음은 또 얼마나 착잡할까.

그러나 그럴 필요 없다. 그것이 인간의 마음인 것을, 사람의 아들로 태어난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를 방어할 권한과 책임과 의무가 있다. 그들은 스스로 그것을 증명해 보였을 뿐이다.

한편 전방 비무장 지대는 해마다 시야 확보를 위해 불을 지른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도 나오는데 필자가 근무할 당시는 불 지르는 행위를 화공작전이라고 불렀다.

불길이 일고 여기저기서 지뢰가 펑펑 터지는 장면을 보고 듣는 오감은 소름이 돋는다.

해마다 같은 장소에서 불길이 일고 터지기를 반복하는 것은 얼마나 많은 지뢰가 깔려 있는지 그 숫자를 가늠하지 못하게 한다.

현란한 카메라 액션보다는 지뢰 제거가 얼마나 위험하고 까마득할까 잠시 생각했다.

별 하나 소장이 교전 당시 책임자였던 소령의 조인트 까는 장면이 나온다. 한 마리도 못 죽였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소령은 평소 그런 상황이 오면 그렇게 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것이므로 명령대로 수행했을 뿐이다.

소장 역시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을리 없었겠지만 워커발을 휘두른 것은 그 자신에게 떨어질지 모를 책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해 본다.

김광석이 부른 ‘이등병의 편지’가 배경 음악으로 깔리는 북측 벙커에서 남북의 군인들은 무엇으로 살았는가, 자문해 본다.

필자의 답은 시키는 대로 살지 않고 마음이 가는 대로 살았다, 이다. 그런 군대 생활이라면 목숨은 아니어도 군기교육대 정도는 감내할 만하다.

가슴 한쪽에 적의의 감정 대신 한민족의 따뜻한 인간애가 흐른다면 분단 반세기, 오욕과 고통의 세월쯤은 훌쩍 뛰어넘을 수 있다.

그런 마음으로 서로를 괴물이나 괴뢰로 부르는 대신 형이나 동생이라고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외쳐보자.

남이 쳐 논 그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빠져나오지 못한지도 어언 70년이다. 참으로 긴 세월이다. 수렁에 빠진 역사의 수레바퀴를 꺼내야 할 때다. 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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