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4-04-25 18:17 (목)
몸통은 사라지고 꼬리만이 시선에 남아 있었다
상태바
몸통은 사라지고 꼬리만이 시선에 남아 있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08.06 09: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순간적으로 나는 뒷걸음질 쳤다. 놈의 기세에 놀라 일단 일보 후퇴를 결정한 것이다. 

이런 결정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물러나면서 나는 자칫 넘어질 뻔했으나 이내 몸을 추스렸다. 그 과정에서도 눈만은 놈의 위치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시야에서 사라지는 순간 대결에서 패자는 뱀이 아닌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놈이 세운 대가리는 좌우로 움직였다. 

텔레비전 동물농장에서 보던 코브라의 그것과 흡사했다. 코브라는 물기 어려운 상대에게는 독침을 날린 다는 정보가 있었다. 

깨물기에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적에게 독침을 날려 눈을 멀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그 말이 번개처럼 머리를 스쳤다.

그래서 나는 놈이 독침을 날리면 눈을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할지 고민했다. 그러나 나는 안경을 썼으므로 그것이 보호막이 돼줄 것을 믿었다. 

안심이 된 나는 나무막대기를 조심스럽게 앞쪽으로 치겨 들고 놈을 내리칠 것인지 아니면 쫓을 것인지 그도 아니면 우회에서 도망칠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그러기 전에 나는 놈을 더 유심해 관찰하기로 했다. 세운 머리를 아직 숙이지 않고 있는 놈의 머리는 삼각형이었다. 

혀를 내미는 입이 삼각형의 뾰족한 곳이었고 양쪽 머리 부문 역시 그랬다. 눈은 초점이 없었고 입은 다물었으나 그 사이로 갈라진 혀가 날름거렸다.

나는 숨죽였고 놈도 그랬으므로 우리의 대치는 길게 이어졌다. 내가 해칠 의사가 없었음을 눈치챈 놈은 머리를 스스로 숙이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숲으로 몸의 반을 이동시켰다.

한 발 움직인 나는 놈의 꼬리 쪽을 보았다. 뭉툭한 몸의 끝에서 나온 꼬리는 짧았고 갑자기 끊어진 것처럼 몸과 잘 구분이 되지 않았다. 확실한 독사였다.

나는 이런 독사를 어릴 적에 지게 작대기로 패서 죽인 적이 있다. 마당의 한 가운데서 도랑 쪽으로 이동하던 녀석의 등을 마구 때렸다.

뱀은 죽었고 나는 죽은 뱀을 작대기에 걸쳐서 숲에다 갔다 버렸다. 집 근처에 출현하는 독사는 죽여야 마땅했으므로 나는 생명을 죽였음에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었다.

당연히 해야할 일을 했으므로 가족을 지켰다는 뿌듯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런 사실을 나는 아버지는 물론 온 가족에게 알렸고 동네방네에 소문을 퍼트렸으며 학교에서도 떠벌였다.

독사를 죽일 만큼 내 소년 시절은 강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두 번째로 맞닥뜨린 녀석을 그 때처럼 때려죽일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의 고민을 털어놓기 위해서였다.

망설임 끝에 나는 녀석을 살려 두기로 했다. 이 깊은 설악산의 어느 곳에서 그가 나는 물론 다른 사람을 해칠 것으로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태계의 한 축으로 건전한 자연환경이 유지될 수 있도록 녀석이 한 몫 단단해 해 줄 것을 기대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독사는 몸을 더 돌려서 이제는 몸통의 꼬리 쪽만이 나의 시선을 사로 잡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녀석을 잡아보고 싶었다.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촉감을 온몸으로 느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잽싸게 놈의 꼬리 위쪽을 잡아챘다. 그렇게 한 것은 꼬리가 너무 짧기도 했지만 도마뱀처럼 잘리거나 미끄러져서 쉽게 손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