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4-04-17 06:17 (수)
그가 거기에 있다는 근거는 없었다
상태바
그가 거기에 있다는 근거는 없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07.18 07: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왜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지 않은가. 뒷덜미를 누가 잡아당기는 것 같은 상황 말이다.

실제로는 아닌데 그런 기분이 들면 무언가 잘못한 것 같은 뉘우침 이 순식간에 밀려오기도 한다. 나 역시 그런 마음으로 뒤를 돌아봤다.

갑자기 몸을 돌린 것은 아니고 사냥꾼처럼 천천히 먹이에 다가가듯이 그렇게 움직였다.

그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은 물론 혹시 있을지 모를 등골을 오싹하게 한 정체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행동 때문에 다른 사람이 놀라는 것은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설사 그것이 괴물이라도 말이다.

괴물 아닌 사람이 만약 뒤에 있다고 치자. 그러면 그 사람은 획, 돌아선 나 때문에 크게 놀라고 그 사람 등골 역시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 와중에도 나는 배려를 생각하면서 뒤로 몸을 서서히 움직여 어둠 속을 응시했다. 그러나 그것의 정체는 없었다. 괴물이든 사람의 형상이든 살아 있는 생명체는 어디에도 없었다.

어둠에 눈이 익어 제법 익숙해진 상황이 지속됐다. 그러나 주변의 사물은 새로울 것이 없었다. 바위며 나무며 잡풀들이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을 뿐이었다.

다만 그것들은 비에 젖어 있어 조금 빛을 띠기도 했는데 아직 어둠 속이어서 밝다고는 할 수 없었다.

허탈한 마음에 나는 기대했던 것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에 맞는 그런 기분을 느꼈다. 그렇다면 무엇이 내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을까.

등골의 정체를 확인하지 못한 나는 그냥 멍하니 서 있었다. 바람이 잦아들었다고는 하지만 비가 온 뒤여서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고 저절로 닭살이 돋았다.

그러고 보니 등골의 변화는 날씨의 변화 때문인지도 몰랐다.

나는 텐트로 들어와서 잠시 앉아 있었다. 밖의 움직임이 수상하다고 지레짐작한 것은 혹시나 절대자가 와 있지 않은가, 하는 섣부른 판단도 있었다.

아무 곳이나 있고 언제나 있는 절대자를 기대한 것은 내 잘못이 아니었다.

앞서 누누이 이야기했듯이 내가 짧은 휴가를 설악산에서 보내는 것은 절대자를 만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가 거기에 있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지구 어디인가에 있는 것은 분명했으나 그곳이 어디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행선지를 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도 세상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절대자가 산의 어디인가에 프랑켄슈타인처럼 숨어 있을 수도 있었다. 아니면 프랑스 해변에서 수영하거나 대영박물관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있을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러함에도 나는 절대자가 설악산에 불쑥 나타나서 이야기를 들어 줄 것을 믿었다. 그것은 나의 직감 외에 다른 아무 근거도 없는 것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믿음이 확신으로 변해 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