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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 꽃잎(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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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19.03.16  18: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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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음악은 약방의 감초와 같다. 늘 따라 다닌다. 장선우 감독의 <꽃잎>을 보고나서 음악 몇 곡을 잇따라 들었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김추자의 ‘꽃잎’은 역시 김추자라는 찬사에 걸맞게 일품이었다. 그 노래를 주인공 이정현이 오빠 친구들 앞에서 흥얼거리는 모습 또한 보기에 좋다.

(아마도) 무등산을 배경으로 그녀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이 때만해도 그녀는 행복했다. 꿈 많은 사춘기 소녀였다.

영화가 나오고 3년 후인 1999년 그녀는 가수로 데뷔했다. ‘와’를 들었다. 손가락에 마이크를 달고 부르는 노래는 빨랐다. 같은 음반에 수록된 ‘바꿔’도 이어서 들었다.

테크노 여전사라는 별명이 딱 어울렸다. ( 이 글을 쓰는 지금 이정현이 외과의사와 결혼한다고 연예신문들이 전하고 있다. 당시 미성년자였던 그녀가 했던 연기가 너무 세고 강렬해서 이후 삶이 궁금했었다. 부디 잘 살고 있기를 바랐는데 그렇게 돼서 다행이다. ) 남진의 가슴 아프게는 노랫말이 구슬펐다.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도 빼놓지 않았다. 노동자들이 역시 조용필이라고 했다. 이 노래는 1980년 발표됐다. 노래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그랬다. 그 노래가 사방에서 불려 질 때 광주에서는 피의 학살이 진행되고 있었다. <꽃잎>은 그 당시 처참했던 현장의 기록이다.

어린 여자애가 모퉁이 하나 들고 서성인다. 거지꼴 형상이다. 막노동 꾼( 문성근)이 그녀를 겁탈한다. 그리고 걷어 찬다. 하지만 그녀는 갈 곳이 없다.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도 다시 허물어지는 창고 속으로 파고든다.

아이는 반미치광이다. 때로 정신이 들기도 하지만 대개는 먼 곳에 시선이 머물러 이승이 아닌 저승의 세계를 구경하고 있다.

수시로 화면은 교차된다. 흑백의 필름이 나올 때는 금남로의 모습이다.

일단의 군인들이 탱크를 몰고 있다. 착검한 소총으로 시위대를 몰아 부친다.

군홧발 소리가 요란하다. 콩을 볶는 듯 한 굉음은 총소리다. 사람들이 쓰러진다.

가차 없이 자빠져 붉은 피를 흘린다. 그녀도 거기에 있다. 흙구덩이 속에서, 트럭의 시체 더미 속에서 용케도 살아 나왔다.

하지만 엄마는 죽었다. 강제 집집 당한 오빠가 의문사 당해도 살아난 용감한 엄마가 총에 맞았다. 그녀는 생각한다.

집에 있으라는 간청을 들었더라면 그래서 엄마 따라 가다 넘어지지만 않았더라면 그래서 앞서 가던 엄마가 뒤돌아 오지만 않았더라면 엄마는 어쩌면 죽지 않고 살았을 지도 모른다.

혼란스럽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다. 공사판의 인부는 인정사정 없다. 술을 먹고 패고 겁탈을 수시로 한다. 그래도 그녀는 오빠라며 그의 곁에 머문다.

시간이 지나면서 남자는 여자를 이해하려고 조금은 노력한다. 거울 앞에 선 그녀를 위해 큰 거울을 사기도 하고 꽃신을 선물하기도 한다.

몸에 맞지 않는 커다란 옷을 입고 마주 앉아 겸상을 할 때, 그는 애처로 왔고 그녀는 입에 물고 있던 밥을 연달아 품어 냈다. 그녀는 아팠다. 몸은 만신창이가 됐다.

상복으로 써야 어울릴 광목천 비슷한 것을 들고 시장 좌판에 나가 구걸을 한다. 그런 그녀를 남자는 먼발치서 바라본다.

다시 5월의 광주다. 피비린내가 사방에서 진동한다. 거리는 난장판이고 군인들은 민첩하다. 시민들은 저항했고 무모하게 대들었다. 쓰러졌고 떼로 죽었다.

환영이 그녀를 떠나지 않는다. 되레 더 달라붙었다. 여자는 알몸에 상처를 낸다. 가슴을 긁고 손등을 찢는다. 볼 수 없어 두 눈을 질끈 감아 본다.

그러나 현실은 영화보다 더했다. 노동자들은 모여서 말한다. 육이오 때 보다 더 했다고. 특전사들이 총으로 쏘고 칼로 쑤셨다고. 애 밴 여자의 배와 젖가슴도 그렇게 했다고. 두부자르 듯이 그렇게. 이천 명이 넘게 죽었다고. 제나라 백성을 군인들이 죽였다고.

하지만 텔레비전 뉴스는 달랐다. 전국의 고정간첩이 광주로 몰려들었다고.

화면은 바뀐다. 젊은이들이 사람을 찾는다는 푯말을 들고 대합실을 들락거린다. 옥포에서 서천에서 대천에서 그녀의 흔적을 훑지만 아직 찾지 못했다.

그들은 그녀의 오빠 친구들이다. 그들이 찾아 나설 때 그녀는 시장에서 판잣집에서 기차간에서 자신을 학대한다. 떠도는 유령을 떨쳐 내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남자는 이제 어렴풋이 여자의 굴곡진 인생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어느 날 무덤가에서 그녀는 죽은 오빠를 불러내고 자신의 과거를 털어 놓는다.

찾는 자들이 그녀의 최종 행방을 알았을 때는 어느 이름 없는 무덤가에 옆에 있는 그녀의 작은 봉분 주변을 도는 한 남자의 쓸쓸한 뒷모습이 화면에 잡힌다.

다시 흑백 화면이 나오고 뉴스가 나오고 새로 취임한 대통령은 법질서 확립을 이야기 한다. 새 헌법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국민여러분은 그런 시대에 부응하기를 바란다고 이야기 한다.

광주를 유린한자가 용서와 반성대신 법을 들먹인다. 정의사회구현을 목소리 높여 말한다.

역사를 잊은 자, 역사를 왜곡하는 자의 현재와 미래는 어떠해야 하는가. 영화는 이런 의문을 남긴다.

이정현의 연기가 돋보인다. 그녀의 독무대. 당시 미성년자로 성인도 하기 힘든 어려운 연기를 무난히 해냈다.

그의 열연이 없었다면 이 영화의 완성도는 크게 떨어졌을 것이다. 연기라고는 하지만 보는 내내 그 어린 영혼이 받았을 아픈 상처가 어떻게 치유될 지 걱정스러웠다.

다행히 앞서 밝힌 대로 그녀는 당당한 삶을 살았고 제 2의 인생을 시작하려고 한다. 다시 노래 몇 곡을 더 들었다. 오월의 노래 등 시위 현장에서 불려 졌던 그 노래를 들으면서 청산되지 않는 역사의 슬픈 그늘을 보았다.

국가:한국

감독:장선우

출연:이정현, 문성근

평점:

: 광주는 현재 진행형이다. 당시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증언과 증거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더 많은 가려진 진실이 세상에 나와 역사의 심판대에 서기를 기대해 본다.

몇 년 전 어느 날 금남로 일대를 둘러 본 적이 있다. 차들은 도로를 메웠고 인파는 넘쳐 났고 행인들의 발걸음 빨랐다. 오후가 되자 사람들은 더 많이 모여 들었는데 마침 그날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도로는 차단됐고 춤판이 벌어 졌으며 행위극이 모여든 사람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날의 광주를 재현하는 젊은이들의 표정은 밝았다.

이곳에서 살벌했던 피의 죽음이 난무했던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혈색 좋은 얼굴에는 웃음꽃이 만발했다. 광주는 이렇게 치유되고 있었다.

무덤 속의 그 소녀도 안식에 들었을까. 그러리라고 본다.

어느 날 우연히 무덤가를 가다가 강가나 거리를 지나다가 (단발머리) 이 소녀를 만나거든 옷은 찢어지고 맨살이 드러났어도 쫓거나 쫓아가지 말고 무섭거나 무섭게 대하지 말고 그저 잠시 관심 있게 봐주었으면 한다.

이런 말을 남자가 말짱한 정신으로 하는 것은 꽃잎이 피고 또 질 때는 그 날이 또 다시 생각나 못 견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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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bgusp@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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