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4-04-27 06:51 (토)
298. 개그맨(1988)
상태바
298. 개그맨(1988)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12.25 14: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를 좀 보다 보면 저 정도 영화는 만들 수 있겠다는 자만심이 일 때가 있다.

아니 그보다 더 뛰어넘는 영화는 물론 인류 역사에 남을 위대한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야심이 생기기도 한다. 이런 생각은 삼류 나이트클럽 ‘맘모스’의 엠시라고 해서 못하라는 법이 없다.

쇼 진행의 사회자인 개그맨 종세( 안성기)가 바로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 생각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걸 실행하려고 한다. 틈만 나면 홀로 리허설을 하고 영화 제작 현장을 따라 다닌다.

기자회견 중에는 불쑥 끼어 들기도 한다. 네가 누구냐고 물으면 이런 대답을 한다.

‘언제나 여러분의 사랑 속에 쏙쏙 자라나는 귀염둥이, 개그맨 이종세입니다.’ 나중에 내가 유명한 감독이 되면 만나기 어려우니 물어 볼 것이 있으면 지금 물어보라고 너스레를 떤다.

얼마나 능청스럽게 대사를 속사포처럼 내뱉는지 붙인 콧수염이 덩달아 웃을 지경이다.

 

그 때문인지 종세는 찰리 채플린 같기도 하고 히틀러가 연상되기도 한다. (감독도 아마 그 것을 의도적으로 노렸는지 모른다.) 화장실에서 만난 감독에게는 지금찍는 영화가 뭐냐, 이런 테마가 너무 낡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핀잔을 주는가 하면 내일 오전 3시 비원옆에 있는 원다방에서 만나 촬영 스케줄에 대해 의론하자고 제의한다.

그의 가슴속에는 4000만 국민 모두가 볼 수 있는 위대한 영화 제작에 대한 갈망이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용솟음친다.

시대를 한탄하기도 한다. 언제부터 이 시대가 꿈보다 빵, 낭만보다 현금을 사랑을 하는 시대가 됐느냐고 불평을 늘어 놓는다. 사막같은 세상에서 시대의 천재 인간 이종세가 이런 시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다.

이발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천재 영화 감독이 만들어 낼 위대한 영화에 쏠려 있다. 그는 마침내 단골 이발소 주인 문도석(배창호)을 꼬드겨 영화 출연 제의를 한다.

그 역시 어머니가 영화를 좋아해 어려서부터 영화배우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카크 더글라스’ 연기를 칭찬하는 도석이 덜컥 그 제의를 받아 들이는 것은 당연하다.

이현세나 허영만  같은 만화가와 그들이 그린 대표작을 줄줄 꿰는 도석에게 종세는 문형은 훌륭한 성격배우가 될 것이라고 폼푸질을 한다. 분기탱천한 그는 아예 이발소를 헐값에 팔아 넘기고 눈 주위를 크게 찢는 쌍꺼풀 수술로 인상을 바꾸고 종세를 따라나선다.

거기에 선영(황신혜)이 합세한다. 춤 몇 번 춰 줬다고 영화관까지 따라 온 건달 3인을 옆자리 종세의 연인을 가장해 따돌린 선영은 그에게 영화 제작에 나설 것을 부추긴다. 그까짓 한 1억 원만 있으면 못할게 없다고.

자신은 천재 감독 아래 주연 여배우를 꿰차겠다는 선영의 야심은 급기야 한탕하자는 공모로 이어진다. 그 와중에도 혼자 대사를 외우고 리허설을 하는 종세. 위대한 감독으로 수상소감을 하게 되는 자리에서는 오늘의 이 위대한 상의 영광을 스텝과 케스트에게  돌리기도 한다.

선영에게는 영원한 당신의 칫솔이 되겠다는 둥 , 오늘 밤은 취하고 싶다는 둥, 심장이 멋겠다는 둥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움직이거나 소리지르면 무조건 사살하겠다는 무장 탈영병이 나타나고 얼떨결에 엠 16 소총과 실탄을 확보하는 종세.

총을 든 종세는 그것을 이용해 은행털이에 나선다. ( 탈영병이 가져온 무기는 식스틴인데 어깨에 맨 탄띠는 엠 60 탄알이다. ) 보기 좋게 강도질에 성공한 그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닦치는 대로 범행을 이어간다.

셋이 찰떡궁합만 과시하는 것은 아니다. 선영은 도석을 뚱보라고 부르며 반말은 예사고 돼지처럼 밥만 축내는 인간충이라고 인격 모독 적인 발언을 일삼는다.

 뚱보는 버티지만 애초 싸울 의도가 없었기에 그 정도 선에서 마무리 된다. 영화에 대한 애정이 싸움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금 우리는 명작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기에 바쁘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저 하늘에 슬픔이' 같은 영화가 없는 현실을  부끄러워 한다.

누가 과연 참다운 영화를 만들지? 바로 두말하면 잔소리, 인간 이종세다. 

그러나 물질 만능주의에 빠진 국민은 불후의 명작, 천재작품을 알아 보지 못하는데. 

종세는 다시 맘모스 클럽의 무대에서 섭씨 2000도가 넘는 날씨와 가정의 날에도 불구하고 가정을 박차고 나온 손님들에게 감사함을 표한다.

도석도 질세라 ‘상하이 박, 지난 20년동안 차디찬 감방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꽁보리밥을 씹으면서 오직 이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복수의 칼을 갈았다' 같은 대사를 외우면서 표정연기를 벌인다.

그런 또 어느 날 종세의 아파트에서 훔친 장물을 나누는 이들 앞에 경찰이 들이닥친다. 알고 보니 그는 경찰이 아니라 경찰을 흉내 낸 강도였다. 강도가 잡히면서 무장강도 두목이 종세라는 것이 드러난다.

그리고 모의에 가담한 도석의 신분도 탄로 난다. 이들은 욕장은 좋으나 숙박시설이 마음에 들지 않는 화진포 대신 해운대를 도피처로 정한다. 그곳에 도착해서는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도망가고 거기서 위조여권으로 멕시코로 가서 국경을 넘은다음 영화의 본고장인 헐리우드에 도착할 꿈을 그리고 있다.

제대로 영화를 만들어 보겠다는 이들의 야심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는다. 그러데 불안을 느낀 도석이 공중전화로 경찰에 자신의 범행사실을 암시하고 이를 눈치챈 경찰은 부산진역에서 대기하고 있다 이들을 덥친다.

빈 기차칸으로 도주했으나 포위된 종세 일당은 짧은 시간에 생과사의 갈림길에서 고뇌를 하는데. 이 때 종세는 죄수를 용서할 수 있고 욕한 것도 용서 할 수 있으나 사나이의 의리를 배신한 것은 용서할 수 없다며 도석에게 결투를 제의한다.

엄호사격으로 포위망을 뚫고 제 3부두에서 22시에 만나자는 작전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선택지는 결투 말고 없다. 선영이 열을 세기도 전에 도석은 돌아서서 종세의 등에 구멍을 뚫는다.

그 이전에 도석은 고장난 차를 돈도 받지 않고 고쳐준 베스트셀러 극장을 알고 있는 착한 청년, 자전거 수리공을 저격 한 바 있어 이번이 두 번째 살인이다.

그는 선영의 말마따나 총살형을 면치 못할 처지다. 그러나 영화는 거기까지는 가지 않는다. 종세의 면도가 다 끝나가기 때문이다. 

종세는 이발을 하면서 이런 상상을 했던 것이다. 종세는 말한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이 한낱 꿈속의 꿈인가. 꿈속의 꿈처럼 보이는 것인가.

국가: 한국

감독: 이명세

출연: 안성기, 황신혜, 배창호

평점:

 

: 이것은 코미디 영화다. 그냥 코미디가 아니라 아주 잘 만든 코미디 영화다. 코미디 영화의 최고봉이라고 할까. 세 명의 주인공이 무대 위에서 춤추는 장면이 있다. 

선영이 마이크를 잡고 종세와 도석이 백댄서다. '수지 큐', 노래도 노래지만 두 명의 춤꾼이 벌이는 몸짓은 현란하다 못해 나가 자빠질 지경이다. 참말로 그들의 움직임은 정말 장관이다. 

앞서서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면 여기서는 빵 터지지 않을 수 없다. 웃기는 개그맨보다 더 웃긴 영화가 바로 <개그맨>이 되겠다. 

넘어지고 이유없이 자빠지고  쥐어 패서 웃긴게 아니다. 정해진 시나리오 대로 연기면 연기 춤이면 춤 대사면 대사를 완벽히 구사하는 종세와 도석의 연기가 눈부시다. 

도석역을 한 배창호는 유명 영화감독이다. 영화감독이 감독대신 배우로 출연한 것만 해도 볼 거리인데 그의 능청 연기와 대사 읆어대기는 전문 배우 뺨치고 남는다. 물론 이 영화를 만든 이명세 감독의 뛰어남도 인정해야 겠다. 

그런데 개봉 당시에는 영화의 진가를 제대로 알아보는 관객이 드물었다. 그래서 이 영화를 일부 평자는 ’저주받은 명작‘이라고 부른다. 

왜 몰라 봤을까. 88서울올림픽의 열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일신상의 이유 때문에 경비행기로 관제탑을 박겠다는 해외 토픽에 나온 조종사 같은 마음 때문이었을까. 

어쨌든 우리에게도 이런 클래식이 있다는 것은 기분좋은 일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