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sight
전체뉴스 의약정책 제약산업 의사·병원 약사·유통 간호 의료기 한방 해외의약뉴스
최종편집 : 2019.8.22 목 19:35
연재
297. 초우(1966)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발행 2018.12.08  11:02:20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구글 msn

사랑에 울고 사랑에 웃는 청춘남녀들의 이야기는 뿌리가 깊다. 깊은 뿌리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므로 오늘날에도 이런 공식은 여전하다.

정진우 감독은 <초우>에서 울고 우는 남녀들의 애잔한 사랑 이야기를 밀도 있게 그려 호평을 받았다.

사랑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없지만 문희와 신성일이 펼치는 사랑 대결은 남녀 심리를 교묘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를 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남녀의 사랑은 영화가 끝나기도 전에 끝장났다. 남자가 여자를 개 패듯이 패고 하룻밤 잠자리 끝에 내팽개쳤기 때문이다.

여자는 그래도 여전히 남자와 이루지 못한 사랑을 영원하게 해달라고 꿈꾸고 있다. 남과 여의 속성이 적나라해서 리얼리티가 살아 있다.

영화의 도입부로 먼저 들어가 보자. 이야기가 시간 순서대로 흐르기 때문에 뒤부터 더듬어 볼 필요가 없다. 대저택에 문희가 살고 있다.

집의 딸쯤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 집의 하녀다. 식모로 밥을 해주고 청소를 한다. 주인은 불란서(프랑스 아닌 불란서인 것은 영화 대사를 그대로 옮겼기 때문이다.) 대사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도 여자와 남자가 우연히 만난다. 남자는 여자가 대사의 딸이라고 믿는다.

여자와 만나기 위해서는 남자의 신분이 그와 비등해야 한다. 하지만 남자는 그렇지 않다. 하루 벌어 먹고사는 세차장 공장의 잡부다.

넘볼 수 없는 여자를 넘보기 위해 남자는 가면을 쓴다. 비 오는 날 2시 그들은 시청 앞 광장에서 만난다. (차가 별로 없다. 오늘날도 그런 날과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근사한 차를 타고 온 것을 보고 여자는 그가 어떤 남자인지 궁금해한다. 사장 아들이라고 남자는 허풍을 떤다. 불란서 대사의 딸과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큰 회사의 사장 아들이라면 꿀리기보다는 서로 대등한 관계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제 신분 차이는 사라졌다. 생긴 것도 선입관 때문인지 대사 딸 같고 사장 아들 같다. 나이도 엇비슷하고 서로 호감이 있는 것으로 보아 데이트 상대로 어울린다.

그 남자는 한 여자를 정리한다. 대사의 딸이 아닌 그녀를 만나기 전 동거하는 여자다. 둘의 관계는 사랑해서라기보다는 여자의 돈과 남자의 힘 때문에 유지됐다.

남자는 대사의 딸을 위해 과감하게 돈을 버린다. 미련 없이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이제 그는 빈털터리다. (남자는 양다리를 걸칠 만큼 이중적이지는 않다.)

그러니 항상 돈을 꾼다. 사장 아들로 신분세탁을 했고 그에 걸맞는 겉치레가 필요하다. 좋은 차와 좋은 옷은 필수다. 아직까지 여자는 남자의 정체를 모른다. 둘은 만나서 미래를 약속하고 점점 깊숙한 곳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번에는 장충단 공원이다. 일기예보를 애타게 기다린 보람이 있다. 비가 오고 있다. ( 여자는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며 비오는 날 두 시에 만나자고 한다. 여자는 이미 사랑은 비를 타고 온다는 것을, 우산속의 여자는 아름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여자의 레인코트가 잘 어울린다.)

배호의 배경음은 들리지 않지만 안개 낀 공원의 풍경은 을씨년스럽기보다는 로맨틱하다.

허세가 강한 남자는 이번에는 직접 운전대를 몰고 오는 대신 운전기사를 고용한다.( 기사는 동료 잡부다. 두둑한 일당으로 일일 채용에 성공 했다.)

남자의 정성은 지극하다. 이렇게라도 해서 사랑을 쟁취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두 사람은 행복하다. 차가 고장 나서 낭패를 겪어도 웃음꽃은 지지 않는다.

하루 종일 있어도 밤까지 있고 싶고 날을 새서도 같이 있고 싶은 것이 사랑 남녀의 공통된 현상이라고 보면 저녁에 떨어지는 이들의 하루는 아쉽기만 하다.

여자는 헤어지면 집 앞의 세탁소에 맡겨둔 시장바구니를 찾는다. 남자는 공장의 사장에게 갖은 구박과 심한 욕설을 듣는다.

다른 사람이 맡겨 놓은 차를 사장 몰래 끌고 나가기 때문이다. 혼나도 싸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남자는 모욕을 참지만 어떤 때는 차를 닦는 것이 아니라 차를 닦게 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큰소리친다.

대사의 딸과 결혼하면 못할 것도 없기때문에 남자의 소리가 순 거짓말은 아니다.

그즈음 여자는 가게에서 시장바구니를 챙긴다. 세탁소 앞에는 언제나 아줌마가 나와서 꺼진 연탄난로에 연신 부채질이다.

그러면서 들면 깨지고 붙이면 꺼지는 연탄에 화풀이를 한다. 세상은 가짜가 진짜로 둔갑한다고 하소연 한다.( 여자는 그 말을 한 귀로 흘린다. 복선이다.)

꼬리가 길면 잡힐 때가 있다. 술집을 돌며 돈을 꾸는데도 한계가 오자 남자는 어느 날 여자에게 실토한다. 포장을 뜯고 가면놀이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각오다.

‘나는 사장의 아들이 아니고 일용직 잡부다.’ 그는 절규한다. 피투성이 얼굴로 남자는 여자에게 자신의 진짜 신분을 밝힌다. 더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 데이트 때마다 매번 차를 훔쳐 올 수도 없고 비싼 옷을 입을 수 없기 때문이다.

버틸 때까지 버티다 한계에 다다르자 실토라는 정면돌파를 선택한 것이다. 저 푸른 초원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비는 남자를 세상의 어떤 여자가 가차 없이 차 버릴 수 있을까.

세단을 몰고 클래식을 듣고 50원짜리 커피를 마시는 부잣집 아들이 아니고 삼류대학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일당 30원의 공장 직공인 이 남자의 고백을 들은 여자는 자신도 진짜가 아닌 가짜라는 사실을 털어 놓는다.

그 때 하늘도 노했는지 천둥과 번개가 치고 바람이 세게 분다.

남자의 반응은 어땠을까. 여자처럼 이해하고 용서한다고 고개를 끄덕일까. 우리 사이에 돈과 지위가 무슨 소용이냐, 사랑만 있으면 된다고 그녀를 세게 껴안아 주고 위로해 줄까.

질문이 길어지면 반어라는 것을 독자들은 알 것이다. 무서운 표정의 남자는 여자를 오뉴월 복날 개 패듯이 팬다. 머리채를 잡고 질질 끌고 간다. 세탁소 집의 빨래을 해서 번 돈으로 사준 와이셔츠를 찢고 그것으로 그녀의 뺨을 이리저리 내리친다.

구질구질한 여자의 과거를 뒤늦게 알았을 때 보통의 남자들이 하는 행동을 그 남자가 따라 하고 있다. 한바탕 거센 폭력이 흐른 뒤 신이 내린 선물인 것처럼 낡은 오두막 한 채가 있고 짚더미 속에 태초 이전의 한 쌍이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다.

매달린 메주덩어리가 부는 폭풍우 소리와 흔들이는 문짝과 묘한 이미지를 형성한다. 그야말로 토속적 에로티시즘이 물씬 풍긴다. ( 이때 문희의 얼굴과 피부가 그렇게 얻어터졌는데도 말끔하다고 의아해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결말이 해피했느냐고. 오, 노.

남자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바람처럼 보이지 않고 여자는 세탁소집에 들러 예의 시장 바구니를 챙긴다. 여자는 그래도 남자를 사랑하고 남자는 그런 여자와는 반대의 길을 갔다.

관객들은 남자에게 더 비난을 쏟을 것이고 여자에게 질렀던 손가락질을 거두겠지만 이 문제는 누가 더 비난받고 덜 비난 받아야 하는 문제는 아니다.

사랑에 다른 사람이 개입해서 판단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현명한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 한국

감독: 정진우

출연: 문희, 신성일

평점:

: 출세욕이 강한 남자와 남자의 대시에 끌리는 여자의 순정. 모든 사랑이 그렇듯이 끝나기 전까지는 좋았다. 거짓이 드러났을 때 보이는 행동에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제목 <초우>는 패티 킴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허스키 짙은 그녀가 부르는 노래가 배경음이다. 아주 애절해서 듣는 이의 오장을 녹여낸다.

고독이 몸부림 칠 때 갈 곳 없는 나그네의 꿈은 사라진다니, 이 얼마나 시적인 가사인가. (한 번 들어 볼 것을 권한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들어도 좋고 끝난 후에 그렇게 해도 좋다. 우리 가요사를 풍부하게 했던 이런 노래도 있었구나, 감탄 한 번 해보는 것도 나쁠 것이 없겠다.)

노래만 들어도 그런데 화면 속 장면까지 더해지면 관객들은 눈시울을 적시기보다는 이루지 못하는 남녀가 마치 자신이라도 되는 양 애타는 가슴을 남몰래 쥐어짜기 마련이다.

그 시대 서울 거리의 풍경과 옷차림은 눈여겨 볼만하고 술집에서 벌이는 남녀의 춤판과 적나라한 관계는 오늘날보다 더 세련됐고 우아하기까지 하다.

흑백의 정서가 도드라진다. 문희가 정원의 가로등 기둥을 붙잡고 돌거나 큰 나무에 기대서 눈을 감거나 우산을 빙빙 돌릴 때면 어디선가 많이 본 장면 같은 기시감이 들지만 그래도 보기에 좋다.

담장의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손을 잡고 벌이는 남녀의 수작은 저러다 떨어지면 다치겠다는 걱정이 드는 대목이다.

문희는 이 영화로 연기력을 인정받았고 신성일은 젊은 청춘의 아이콘으로 입지를 굳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매 값을 뿌리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얼마 전에 재벌 2세가 직원을 야구방망이로 폭행하고 수표를 뿌려 공분을 샀는데 매 값은 그 시절에도 있었다.

남자의 동거녀였다가 차였던 여자는 남자를 청부업자를 동원해 마구 구타하는데 그때마다 매값 뭉치를 던진다.

재벌의 갑질은 이처럼 뿌리가 깊으니 뽑기가 어렵다. 차이코프스키 음악을 들먹이고 아듀나 하우두유두 등 외래어를 써먹어야 먹물 같은 인상을 주던 당시 젊은이들의 풍습이 나의 지난 과거를 보는 것 같아 쓴웃음이 절로 난다.

젠더 감수성이 있는 관객이 본다면 조금 기분 나쁜 장면들도 있으나 시대가 60년 대 임을 감안해야 한다. '영',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신성일의 목소리를 흉내냈던 그 시절을 그리워 할 사람이 제법 있겠다.

< 저작권자 © 의약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bgusp@newsmp.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 까지 쓸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너무 심한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이죠.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기자윤리강령이메일무단수집거부
RSS HOME BACK TOP
발행소 : 서울 구로구 경인로 661 104동 1106호  |  전화 : 02-2682-9468   |  팩스 : 02-2682-9472  |  등록번호 : 서울아 00145
발행인 : 이 병 구  |  편집인 : 송 재 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현구  |  등록일자 : 2005년 12월 06일  |  발행일 : 2002년 6월 23일
의약뉴스의 콘텐츠를 쓰는 것은 저작권법에 저촉 됩니다. Copyright ©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mp@newsm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