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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 시집가는 날(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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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 시집가는 날(1956)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7.15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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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남독녀가 시집가는데 그럴싸한 신랑감이면 부모가 바라는 바다. 조선시대 판서 집안의 자제라면 여기에 해당될까.

판서가 아무리 적어도 판서 사위는 있게 마련인데 맹진사( 김승호)가 여기에 해당하니 그의 귀가 입에 걸리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그 혼사는 직접 그가 갓 쓰고 도포입고 도라지골에 가서 얻어온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시집가는 딸 갑분이는 몸 종 입분이(조미령)를 데리고 다니는데 성질이 고약해서 심부름 할 때만 필요하지 그 외는 거들 떠 보지도 않는다.

마음씨 착한 입분이는 그 것 때문에 마음 상하지 않고 시집가는데 따라가서 갑분이의 시중을 들어 주고 싶어 한다. 이병일 감독의 <시집가는 날>은 말 그대로 시집가는 갑분이의 그 날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날을 잡았으니 준비라는 것을 해야 하므로 맹진사는 분주하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혼사에만 급급하다 보니 그만 사위 얼굴을 보고 오는 것을 잊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도라지골에서 손님 하나가 묵어가는데 그가 하인에게 이런 소문을 퍼트린다. 판서 자제가 다리를 저는 장애인이라고.

하급 양반일망정 대대로 내려오는 가문이 있는 집안 인지라 맹진사댁은 가족회의를 열고 당황한 사실에 대해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 기가 찰 뿐이다. 맹진사는 사위가 아무리 명문대가 집 자손이라 할지라도 딸자식을 천치에게 팔아먹는 일종의 매매혼이라는 사실에 가슴을 치고 한탄한다.

그 소식은 갑분이에게도 들어가는데 그는 한사코 병신에게는 시집가지 않겠다고 버티니 난감하기가 이를데 없다.

 

꾀를 낸 맹진사는 입분이를 갑분이로 둔갑시켜 대신 시집보내기로 하고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혼사 준비를 한다.

드디어 그 날이 왔다. 판서댁 행차라 멀리서 보아도 위세가 등등하다. 하인들이 지고 오는 짐이 예사롭지 않고 말을 타고 오는 신랑은 늠름한 것이 장군감이다.

돈이면 돈, 권세면 권세, 인물이면 인물 어디하나 흠 잡을 데가 없다. 이런 사실을 갑분도 모르고 입분도 모르고 당연히 맹진사도 모른다.

말에서 내린 신랑의 걸음걸이가 가뿐하다. 아무리 발 언저리를 눈 여겨 봐도 저는 기색이 없다. 맹진사는 그 제서야 무언가 일이 잘 못 되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혼례를 물릴 수는 없다. 그는 급히 하인을 시켜 떠나보맨 딸 갑분이를 급히 데려 오라고 시킨다. 갑분과 하인은 헐레벌떡 집으로 달려 오지만 혼례는 예정대로 진행된다.

촛불이 가물거린다. 자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관객들도 알고 있으므로 신랑, 신부가 모를리 없다. 피할 수 없는 첫날 밤을 치러야 하므로 촛불은 내내 켜 있지 않고 어느 순간 꺼진다.

신랑은 신부에게 다가간다. 신부는 말한다.

‘난 갑분이가 아니고 종 입분 이라고. 그러니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신랑은 껄껄 웃는데 아무리 판서 자제라 해도 여유가 너무 넘쳐 새신랑 이라고는 믿기 어렵다. 적어도 초야에 이 정도의 여유를 부릴 정도면 서너 차례는 이런 경험이 있어야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신랑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이것은 내가 꾸민 꾀라는 사실을 밝힌다. 거짓 소문을 낸 것도 자신이라는 것.

하, 이 정도면 웃고 넘길 일이 아니지만 희극이라고 하니 입을 조금만 벌리고 작은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다. 신랑의 말에서 나온 그 다음 말은 놀라서 나가자빠질 지경이다.

'부자라는 자들이 부귀에 취하고 권세에 아부하는 천박한 마음에 진저리가 난다. 내가 구하는 것은 진실한 애정, 순정한 사랑이다.’

조선시대에도 이런 덜 떨어진 양반집 자제가 있었다는 것이 이상스러워 죽을 지경이다.

진정 사랑은 이런 것인가. 조선시대라 해도 마음씨만 착하면 신데렐라가 될 수 있는가. 영화는 그렇다고 대답하니 시비 걸 생각일랑 하지 마라.

시집가는 날은 영화가 나온 다음해인 1957년 도쿄에서 열린 아시아영화제에서 특별상을 수상해 한국영화로는 처음으로 외국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작품성을 외국에서도 인정했다는 말이다.

희극적이지만 매끄럽고 어설프지 않으며 이유 없이 건너뛰지 않는 노련한 연출 솜씨가 기가 막히다.

처음에 배경으로 깔리는 도라지 타령을 영화가 끝난 후 김영임이나 송소희 목소리로 들어보면 기분이 새로워진다.

오영진이 1942년 발표한 희곡 <맹진사댁 경사>를 원작으로 했다. 이후 연극이나 영화로 여러차례 리메이크 됐으며 주인공 김승호는 이 영화를 계기로 일약 스타로 부상했다.

이후 그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서민층 아버지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국가: 한국

감독: 이병일

출연: 김승호, 조미령

평점:

 

: 앞서 주인공 김승호에 대해 잠깐 언급했다. 이 영화 후 김승호는 신들린 듯한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로멘스 빠빠>(1960)에서는 로맨스를 가진 아버지 연기를 그야말로 수리 술 술 해내 한국인 처음으로 아시아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차지했다.

1961년에 나온 <박서방>에서는 역시 아버지 박서방으로 나와 연거푸 아시아영화제 남우 주연상을 거머쥐어 명실공히 아시아 최고의 스타로 발돋움했다. 1963년에 <로멘스 그레이>로 또 한 번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김승호 시대는 길게 이어지지는 못했다.

이후 영화 제작자로도 나섰으나 첫 작품 이후 실패를 거듭하다 51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1917년 7월 13일에 태어났으니 올해로 꼭 101주년이 된다.

투박하고 정겹고 인간미 넘치고 바보스럽고 우직하며 서민적 체취를 물씬 풍겼던 한국이 낳은 명배우가 죽은 날이 바로 오늘이다. ( 서평을 쓴 날과 기사가 올라간 날은 며칠의 시차가 있다.)

한편 이 영화의 최대 피해자는 갑분이가 아니고 머슴 삼돌이다. 머슴은 입분이를 판서의 자제에게 빼앗겼다.

맹진사가 갑분이가 시집가면 '입분이를 너에게 주겠다'고 굳게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슬픈 머슴을 달래기 위해 맹진사는 옥단이나 봉녀 등 아무나 골라잡으라고 했지만 머슴의 심사는 심란 할 수밖에 없다.

머슴은 머슴으로 태어난 것을 한탄해야 한다. 또 양반은 종놈에게 일구이언 하라는 법이 있느냐고 대들지 말아야 한다. 맹진사니까 봐주지 그가 아니라면 곤장을 맞아 곤죽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판서의 아내가 된 정경부인 입분이는 더 이상 삼돌이가 입에 올릴 대상이 아니다. 심심산천에서 도라지꽃을 보다 유난히 백도라지꽃이 화려하게 보이면 죽어서 도라지꽃으로 환생한 삼돌이의 혼령이 아닌지 잠시 숙연해져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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