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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 장남(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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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18.07.02  09:3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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덮어놓고 아기를 낳던 시절에는 장남의 위치가 상당했다. 집안의 대들보 역할은 으레 그의 몫이었다. 모든 식구들이 장남의 성공을 위해 뒷바라지에 매달렸다.

그런 만큼 장남의 두 어깨에는 짐이 가득하다. 그 짐은 덜어지기는커녕 자꾸 쌓여만 간다. 죽을 똥 살 똥 아등바등 살다보면 어느 새 부모는 늙고 병들기 시작한다. 효도라는 것을 해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다.

장성한 동생들 뒷바라지 하는데도 벅차다. 아무리 성공한 장남이라 해도 주렁주렁 달린 식구가 많으면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 그렇다고 그냥 무시할 수도 없어 장남의 고뇌는 깊어만 간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은 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이두용 감독의 <장남> 은 이런 장남(신성일)의 무게에 대한 이야기다. 다행히 이 집의 장남은 그걸 견딜만한 위치에 있다. 컴퓨터 회사의 반도체 성공의 주역으로 신문에도 날 정도다. 사장의 신임을 듬뿍 받고 있고 곧 부사장으로 승진도 예약해 놓고 있다.

탄탄한 중산층은 이제 상류층의 사다리를 타는 일만 남았다. 그 즈음 시골의 부모님이 상경하는데 댐 건설로 집이 수몰되기 때문이다.

노부부는 꽉 막힌 서울거리가 답답하지만 잘 사는 큰 아들 때문에 웃음꽃이 떠나지 않는다. ‘84 국제무역박람회’구경도 가서 장남이 만든 회사 제품도 보고 아주 신이 났다. 하지만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자식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둘째(김희라)는 천하의 개망나니다.

술 취하면 등에 업은 아기가 자지러지는 것도 아랑곳 없이 마누라를 오뉴월 복날 개 패듯이 팬다. ( 특이한 것은 맞는 아내도 그렇게 싫지만은 않은 표정이다. 부어터진 얼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웃음꽃이 만발한다. 밤 새 맞고도 새벽같이 일어나서는 신랑 속 쓰릴 것을 걱정해 해장국을 끓인다. 그런 그녀에게 남편은 날달걀로 얼굴을 마사지 해준다. 천생연분이 따로 없다.)

변변한 직장도 없고 맨 날 술 취해 있으니 둘째의 집안 꼴은 안 봐도 뻔하다. 그런 그도 부모님은 끔찍이 챙긴다. 애가 아파서 찾아뵙지 못했다는 처에게 애는 또 낳으면 되지만 부모는 한 번 가면 그만이라고 철썩 소리가 나도록 뺨을 후려친다.

막내아들은 심성은 좋지만 쪼들리기는 마찬가지다. 여자 친구는 임신했지만 형편상 결혼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다. 시집간 두 딸은 자식을 대추나무 연걸리 듯이 주렁주렁 매달고 있고 최근에는 쌍둥이를 낳았다. 3년 새에 5섯 이나 낳았으면서도 또 낳겠다고 기세가 등등하다.

어쩌다 식구들이 한 집에 모이면 방안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미어터진다. 큰 며느리(태현실)의 복장이 터질만하다.

장남이 출세 비슷한 것을 한 것은 다 장인, 장모가 유학까지 시켜준 덕분이다. 그런데 장남은 처가는 신경을 쓰지 못하고 오직 시부모님과 시동생들 걱정만 한다. 결혼기념일도 잊는다. 상황이 이 쯤 되면 갈등이 화산처럼 폭발해야 자연스럽다.

과연 영화는 시나리오대로 흐른다. 기분 좋다가도 터지고 터졌다가도 봉합되는 일상이 되풀이 된다.

어느 날 시어머니가 손빨래를 해서는 안 되는 며느리의 비싼 실크 옷을 빨았다가 아주 혼쭐이 난다. 옆에서 지켜보는 남편은 안절부절 못하고 두 노인네는 입맛을 쩝쩝 다시면서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한다.

이런 와중에 장남은 10년 전에 집을 짓기 위해 사둔 100평 땅에 집을 짓기 시작한다. ( 그 땅은 그 새 50배나 뛰었다고 한다.)

2층 한옥이 완성되면 장남은 식구들을 다 불러 모아 한 집에 살 작정이다. 회사 챙기랴, 집 짓는 거 보랴, 부모 형제 모시랴 장남은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다.

다행히 커가는 두 자식들은 모난 곳이 없는 성격이다. 어느 날 장남은 회사일로 제주도로 반년 정도 떠나 있게 된다.

제주 밤바다는 푸른빛 이라기보다는 거센 파도 때문에 온통 흰색이다. 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이런 때는 모두 불길한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의 사망 소식이 들려온다. 공항에 가보지만 비행기는 뜰 수 없다. 뒤늦게 서울에 온 아들의 눈에 아파트 꼭대기 층에서 곤돌라에 실려 내려오는 어머니의 관이 보인다.

쇠줄로 매달려 내려오기 싫다는 어머니의 유언은 지켜지지 않았다. 간암에 걸려 곧 죽을 아버지는 베란다 한 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

관이 내려오고 어머니가 소원하던 완성된 틀니는 주인을 찾지 못하고 관처럼 땅에 떨어졌다. 늙으면 죽어야지, 입에 달고 살던 어머니는 그 말대로 그렇게 됐다.

임종도 지키지 못하고 어머니의 관에 엎어진 장남과 상복을 입고 모여서 통곡하는 식구들의 모습은 신파극의 절정을 이루지만 비판받기 보다는 흐름이 너무 자연스러워 되레 칭찬해야 마땅하다.

언젠가 집은 완성될 것이고 부모 없는 집에서 형제는 화목하게 살 것이다.

국가: 한국

감독: 이두용

출연: 신성일, 태현실

평점:

: 큰 아들 신성일과 둘째 아들 김희라가 묘한 대조를 이룬다. 큰 형은 잘 생기고 점잖고 돈도 많고 학식도 있고 사회적 지위도 있다.

둘째는 형이 갖고 있는 이 모든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니 천덕꾸러기 신세다. 언제나 형과 비교되는 그는 이런 말을 한다.

'난 머리가 나쁘게 태어났다, 다 엄마 책임이다.'

형 반만 닮아 보라는 어머니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그가 외국에 나가기 위해 쫄랑대다 주저앉고 집짓는데 십장 노릇을 하다 아버지에게 싸대기를 맞고 남산 거리서 포장마차를 하면서 궁상을 떨고 일당으로 받은 돈을 가지고 와서 아내 앞에 자랑하다 심사가 틀려 주먹질을 하면서 알량한 집기를 부술 때면 그가 없었으면 영화는 산으로 가거나 도랑에 빠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언제나 부모 말에 예, 예 하던 장잠이 버럭 화를 내는 장면은 이 영화가 그저 그런 삼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준다.

어느 날 장남을 보고 기쁜 어머니는 한 마디 한다. 아니, 말이 나온 김에 여러 마디를 보탠다.

'뭘 씹어 먹게 틀니 해주고 둘째 살림살이 도와주고 막내 결혼자금 대주고 오촌 당숙 혼례 찾아보라'는 말에 아버지가 직접 기른 상추쌈을 반찬으로 밥을 먹다 말고 미친놈처럼 발광을 한다.

관두라고 이제 진절머리가 난다고 나에게 짐을 그만 지우라 고함을 치고 숟가락을 팽개치고 벌떡 일어선다.

그가 효자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효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어머니를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는 불효를 저지르고는 뒤돌아보지 않고 차를 타고 밥이나 먹고 가라는 늙은 어미를 뿌리치고 떠난다.

박람회 뒤풀이에서는 외국 바이어들과 함께 기생집에서 흥겹게 노는 장면은 애처가 흉내를 내는 그의 고달픈 인생이 어떤 것인지 단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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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bgusp@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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