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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운현궁의 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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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운현궁의 정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4.17 15: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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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에 비치는 정오의 햇살이 눈부시다. 조선 말 정치의 중심지였던 이곳은 이제 그런 번잡스러운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간혹 관광객들만이 감쪽같이 사라진 지난 역사의 흔적을 되짚을 뿐이다. 간혹 일본인들의 모습도 보이는데 이들은 자신들이 한 때 조선을 지배했던 시대를 그리워하면서 자외선을 막기 위해 손으로 하늘을 가린다.

흥선대원군의 둘째아들 명복은 12살 때 조선 26대 임금에 오른다. 어린 임금은 정치를 몰랐으므로 아버지가 섭정했다.

대원군이 머물던 운현궁의 사랑채로 불리는 노안당에는 조정 대신들이 하루종일 들락날락 거렸다. 이곳에서 흥선은 당파를 뛰어넘는 인재등용과 서원철폐, 법률제도 정비로 중앙집권적 정치기강을 마련했다.

하지만 경복궁 중건으로 백성들의 고혈을 짜냈으며 쇄국정치를 고집해 조선왕조의 몰락을 재촉했다.

임오군란,갑오개혁 등의 혼란이 한동안 지속됐고 하야와 재집권의 롤러코스트를 타기도 했다. 한 때 청나라도 납치되는 불운을 겪는 등 그 시기 조선은 이미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기울고 있었다.

대신들의 논의는 나라를 살리는데 기여하지 못하고 외세에 이리저리 밀리는 빌미를 제공했다.

노안당을 한 바뀌 돌면 안채에 해당하는 노락당이 나온다. 1866년 15세 때 고종은 여기서 뒤에 황후의 명칭이 붙는 16세의 민비 즉 명성과 혼례를 한다. ( 잘 알다시피 명성황후는 일본의 자객들에 의해 1895년 경복궁에서 처참한 운명을 맞는다. )

운현궁에는 이밖에도 이로당이 있고 수직사며 유물전시관이 마련돼 있다. 조선궁궐의 면모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입장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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