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평원에는 최전방(?)에 서 있는 부서가 몇 개 있다. 변창석 부장(사시 36회·45)이 속한 송무부 역시 그런 부서다. 부득이하게 법정에서 의료기관과 치열한 논리전을 벌여야만 한다. 심평원에서 변 부장의 존재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심사 관련 소송, 의사의 자의적 판단 많아”
심평원을 상대로 한 의료기관의 소송은 대개 ‘심사삭감취소청구’나 ‘요양급여비용불인정처분’ 등이다. 심평원의 승소율은 지난해말 기준으로 95% 이상. 총23건 가운데 현재 2건은 진행중이며, 1건은 패소했다.
“의료기관이 제기하는 소송은 대개 심사기준에 관한 것이다. ‘기준 해석’을 둘러싼 논쟁 탓이다. 그러나 의사가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식약청 허가사항인 약제 고시 등을 무시하거나 잘못 해석하는 사례도 있다.”
변 부장은 심평원과 의료기관간 시각차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청구한 진료비를 삭감 당하는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경제적 불이익뿐만 아니라 의사의 명예도 손상이 간다고 판단한다. 반면 심평원에서는 심사기준에 따라 조정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심사기준이 모든 요양기관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다만 가장 합리적인 해결을 위하여 심평원도 노력하고 있고 그 내부에 진료비심사평가위원회를 운영하는 것도 그러한 취지라고 그는 덧붙였다.
◇“6천900원 짜리 표본소송도 있어”…“一步不讓”
의료기관의 개별적인 이해관계보다는 의약분업과 관련한 제도와 관련하여 의사단체를 주축으로 소송이 제기되기도 한다. 심사조정액이나 환수액의 크기와는 무관하게 한마디로 제도자체에 대한 문제제기 성격이 강하다는 말이다. 변 부장은 이를 ‘표본소송’이라고 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9월 선고된 과잉약제비 소송이다.
당시 모 의원은 심평원이 약제비를 아무런 근거없이 환수했다며 6천965원에 대해 환수취소처분 소송을 제기했고, 재판부는 패소판결을 내렸다.
복지부는 물론 심평원은 이런 종류의 소송에서는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고 있다. 패소할 경우 심사기준이나 행정행위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이런 부담은 변 부장도 마찬가지다. 개인이 아닌 조직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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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적 판단…재판장 설득이 제일 고역”
변 부장은 올해 들어서야 본격적인 소송을 수행하고 있다. 입사는 지난해 4월이었지만, 업무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현재 직접 수행하고 있는 소송은 척추수술과 관련된 심사조정사건과 단지증으로 인한 정형외과 수술과 관련된 심사조정건 등 4건이다.
이런 탓에 그는 늘 소송준비에 매달려 있다. 일주일에 한번 이상은 법원에 들어간다. 소송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각 부서에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
부서의 실무진과 시간이 맞지 않아 곤란할 적도 있다. 서로 바쁜 것이다. 어떤 경우는 너무 귀찮게 하는 게 아닌가 싶어 조금 미안한 생각까지 든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러나 제일 힘겨운 것은 역시 재판장을 이해시키는 일이다. 의학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탓이다. 그런 재판장을 이해시키지 못하면 소송의 결과도 장담할 수 없다.
◇“심평원과 의료기관은 파트너”
변 부장은 의료기관이 심사조정의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다시 말해 심평원의 존재이유는 의료기관과 국민이고, 의료기관의 존재이유는 환자라는 말이다.
일부 심사기준의 모호함 때문에 소송을 제기하는 의료기관도 있을 수 있다. 이는 심평원과 의료계가 함께 노력해야 할 몫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변 부장은 다만 의료기관에서 적극적인 의사표명을 해야 한다고 했다. 정당한 시술을 했다면 그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심사기준이 모호하다면 비판과 함께 정책 대안도 제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심평원과 의료계는 건강보험제도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할 파트너다. 심평원은 진료비 과잉청구 예방을 위한 사전 노력이 필요하고, 의료기관은 정책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송은 승패를 떠나 양측에게 항상 앙금만을 남길 수밖에 없다.”
법과 제도는 아무리 훌륭해도 인간 위에 존재할 수 없다. 의료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점에서 그는 법정에서 양쪽 모두를 살펴본다. 그 속에 인간이 있고, 답이 있기 때문이다.
의약뉴스 홍대업 기자(hongup7@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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