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멀리서 지켜본 것은 쳐다만 봐도 옻을 타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날 모기불을 놓다가 그만 옻나무 가지가 들어간 줄 모르고 연기를 마셨지요.
며칠간 밤낮으로 설치고 가려움으로 떨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 이후 옻나무처럼 생긴 나무 근처에는 갈 생각도 가지도 않았지요.
가을이 되면 주렁주렁 보석처럼 열린 열매를 멀리서 곁눈질 했는데 그때마다 서늘한 기운이 온 몸에 닭살이 돋곤 했습니다. 위장병에 탁월한 효험이 있는 옻나무는 누군가에게는 독이 됩니다. 좋은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옻나무/이재무
어릴 적 나는, 토담집 한 귀퉁이
십수 년 우리집 가난과 함께 자라온
옻나무가 무서웠다 살갗만 살짝 스쳐도
온몸에 두드러기가 일던 그 괴괴한 나무의 서늘한 눈빛과
무심코 눈이라도 부딪는 날이면
어김없이 밤마다 진저리치는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어느 해인가
할머니의 가슴앓이로 다리 한짝 잃고도
아버지의 진기 빠진 근력을 위해
팔 한짝 선뜻 내주던 은혜였던 나무
그리고 그 다음해의 늦봄
해수병의 당숙 기어이 속옷으로 쓰러뜨리던
성성한 이파리로
그늘을 넓혀 이십여 평 양지의 마당
삼키어가던 식욕 좋던 그 나무가
어릴 적 나는, 왜 그리 무서운 금기의 나무였는지
지금도 추억 떠올리면 종아리에 소름꽃 핀다
옻타지 않는 이에게 더없이 약되면서
옻타는 사람에겐 더없이 병되던
은혜와 배반의 이파리로 엮어진 나무
그 시퍼런 이중성의 표정이
근엄한 판검사의 얼굴로 닥지닥지 열리는 것을
어느 날 나는, 법정의 방청석에서
오돌오돌 떨며 그러나 똑똑히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