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5-07-17 18:45 (목)
384. 잘 익었는지 젓가락으로 쿡 찔어보니
상태바
384. 잘 익었는지 젓가락으로 쿡 찔어보니
  • 의약뉴스
  • 승인 2013.12.09 10: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군불에 잘 익은 고구마를 삽으로 꺼낸다. 연기를 피해 밖으로 나와 반을 뚝 자르니 그 빛깔이 선홍색이다. 먹기도 전에 침이 꼴깍 넘어가는데 맛은 먹어봐야 아는가.

젓가락으로 잘 익었는지 쿡 한 번 찔러 볼 필요도 없다. 찌르기 전에 냄새가, 그 냄새가 "나 잘 탔어요"하고 말하고 있다.( 다음은 정호승 시인의 '군고구마 굽는 청년'이라는 시입니다.)

군고구마 굽는 청년/정호승

청년은 기다림을 굽고 있는 것이다

나무를 쪼개 추운 드럼통에 불을 지피며

청년이 고구마를 익기 기다리는 것은

기다림이 익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사람들이 외투 깃을 올리고 종종걸음 치는 밤거리에서

뜨겁게 달구어진 조약돌에 고구마를 올려놓고

청년이 잠시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은

기다림이 첫눈처럼 내리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청년은 지금 불 위의 고구마처럼 타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온몸이 딱딱하고 시커멓게 타들어가면서도

기다림만은 노랗고 따끈따끈하게 구워지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구워진다는 것은 따끈따끈해진다는 것이다

따끈따끈해진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맛있어진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 맛있어본 적이 없었던 청년이다

익은 군고구마를 꺼내 젓가락으로 쿡 한번 찔러보는 것은

사랑에서 기다림이 얼마나 성실하게 잘 익었는가를

알아보려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