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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8. 조명이 켜지고 사자들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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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8. 조명이 켜지고 사자들이 나왔다
  • 의약뉴스
  • 승인 2013.09.11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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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사파리 여행이 끝나자 선물가게가 나타났다. 늘어져 있던 사자가 늠름하게 서 있다.

우리에 갇힌 사자보다 더 용맹해 보이는 인형사자. 차라리 인형으로 지내는 것이 더 좋았나 보다.( 다음은 도종환님의 사자 서커스라는 시이다.)

 

사자서커스/도종환

조명이 켜지자 일곱 마리 사자가 차례차례
걸어나왔다 조련사 존 캄파롱고의 왼손 채찍이
땅에 떨어질 때마다 사자들은 정해진 의자에
앉거나 모양을 지어 질서 있게 움직였다
조련사 손짓이 바뀔 때마다
뛰어넘기를 할 차례인지 불붙은 구멍 사이를
빠져나가야 하는지 용하게 알아차렸다
어떤 때는 아직도 용맹스러운 이빨과
짐승의 목을 죄던 발짓이 남아 있는 듯 포효했지만
그것도 훈련받은 몸짓이었다
캄파롱고가 꼬리를 번쩍 들어올리면
불알을 달랑달랑 흔들며 엉덩이를 움직였다
박수가 쏟아질 때마다 나는
무대 뒤 그들의 철창을 떠올렸다
먹이와 채찍으로 저렇게 길들여지기까지
얼마나 굶주렸을 것인가 그 생각을 했다
철창을 쥐고 흔들어보다 얼마나 절망했을 것인가
길들여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우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이제 없다고
서서히 죽어가는 야성의 크기와 바꾸는


몇 덩이의 고기를 찢어 입에 넣으며
그래도 살아 있는 동안은 배를 채우고
짝짓기를 하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얼마나 자신을 달랬을 것인가
작아지자고 고양이처럼 순해지자고 들판의 냄새와
빛나는 질주의 기억과 거칠 것 없던 목소리를
지워버리자고 이렇게라도 살아야 한다고
비굴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말고 살아 있어야 한다고
얼마나 몸부림쳤을 것인가 철창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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