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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40매)약국으로 돌아온 한석원 전 대약회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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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40매)약국으로 돌아온 한석원 전 대약회장 인터뷰
  • 의약뉴스
  • 승인 2004.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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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원 전 대한약사회장을 서대문 보성약국에서 만났다. 퇴임 후 20여일 만이다. 캐나다에 있는 딸을 보러 갔던 그는 막 비행기에서 돌아와 아직 여독이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처방전은 물론 일반 매약환자까지 자신있고 능숙하게 처리했다. 영락없는 약사 모습 그대로였다. 5만 약사를 호령하면서 약대 6년제 등 숱한 약사현안을 해결했던 수장의 모습 대신 흰가운을 입은 약사로 제자리를 찾은 것이다.

사전 예고도 없이 불쑥 방문한 기자에게 한 전 회장은 특유의 소탈한 웃음을 지으며 "참 편하고 좋다, 이렇게 좋을 수가 없어!" 라고 되풀이 말했다. 근무약사가 돌연 휴가를 가는 바람에 며칠째 약국에서 꼼짝 못하고 있다는 그는 이 나이가 됐어도 하루 처방 30-40장 처리는 문제 없다 며 숙련된 자세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기자는 그가 호탕한 성격의 보스형 대약회장이라고 평하는데 인색하지 않다. 과거 많은 회장들과 비교해 그는 다른 어떤 누구보다도 대범했으며 언제나 자신감에 넘쳐났다. 그에게는 많은 사람들이 따랐다. 그들의 능력을 나늠대로 눈여겨 보면서 제자리에 어울리는 역할을 맡겼고 그 결과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실 원희목씨가 대약회장 자리를 꿰차고 앉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한 전 회장의 역할이 컸다. 선거전에서 내놓고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중대 동문의 따가운 눈총에도 불구하고 원회장에게 힘을 싣어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부회장으로 회무를 맡겼으며 중요한 임무를 의약분업정책단장이라는 타이틀을 주고 해결하도록 했다.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23번으로 당선권에 들어선 장복심 전 여약사회장도 그가 애지중지 키운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장 전회장의 후원회장을 맡아 퇴임 후에도 인연의 끈을 이어가고 있다.

식사를 겸한 자리에서 인터뷰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기자가 무슨 말을 듣고 싶어하는지, 알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앞뒤 재지 않고 척척 답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랜만에 살아난 보스의 자세를 보는 것 같았다.

- 조금 수척해 보이는데 건강은 괜찮은가.

" 시차적응이 안돼 조금 피곤한데 문제없다. 벌써 며칠째 혼자 약국을 지키고 있다. 처방전 수 십장 정도 처리하는 것은 간단하다. 요즘은 프로그램이 잘돼 있어 장기처방 같은 경우는 그대로 복사하면 되니 별 문제는 없다.

내가 약사이고 오랜만에 약사의 일을 하니 절로 신바람이 난다. 아침 9시 30분에 나와 저녁 8시에 퇴근하는데도 피곤한 줄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약국은 너무 작아서 안되겠다.

관리약사를 두고는 생계유지가 곤란해 좀더 큰 곳으로 옮겨 볼 까도 생각중이다. 적어도 처방 50-70장 매약 50만원 정도는 올라야 약사품위 유지가 된다고 본다. 약사 1명에 전산한명, 종업원 이렇게 셋이서 생활하면 이상적인 약국 모습일 것 같다."

- 원 대약 회장은 일을 잘하고 있나.

" 잘 하리라고 본다. 그러나 타성에 젖으면 안된다. 그리고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도 잘못이다. 언론이 비판하지 않으면 안된다. 잘못하면 지적해야 바로 잡힌다. 그냥 내버려 두면 잘못된 길로 자꾸만 빠져들게 된다. 회장의 덕목은 사이드에서 일꾼을 지원해 주는 것이다. 이것이 장의 덕목이다. 내손으로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도 바꿔야 한다.원 회장이 성공한 회장으로 기억되기를 기대한다. ( 이 대목에서 한 회장은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어투로 원회장을 격려했다.)

특정대학 출신들이 끼리끼리 일한다는 인상을 주면 안된다. 지금은 임원들이 "회장님! 우리 회장님!" 하고 따르겠지만 임원이 나와서 할 일이 없으면 약사회에 애착이 떨어진다. 나와서 일하는 재미를 느끼게 해줘야 한다.

회장이 됐다고 해서 약사회가 내것인 것처럼 사유물로 인식해서는 안된다. 회장은 회원이 잠시 일을 하도록 위임해 준 것에 불과하다. 벌써부터 이런저런 소리가 들리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지부장들이나 관리하려고 하면 우스운 결과가 온다."

-대약도 그렇고 시약도 그렇고 임원들의 나이가 많은데.

" 60이 넘었다고 일을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후배를 키워야 한다. 후배를 키우지 않고 내가 앞으로 일을 독점하겠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발상이다. 약사회장은 돈을 벌고 팔자를 고치는 자리가 아니다. 그런 생각하면 절대 안된다.

회원의 위임을 잠시동안 받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정치판은 후배를 기르지 않지만 약사회는 후배를 길러야 한다. 자기와 경쟁이 될 만한 인물을 앞으로가 두려워 키우지 않는다면 이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임원 중에 새로운 인물의 등용을 기대했으나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3년 이후에도 그 자리에 있겠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 프로 임원을 키워야 한다. 권태정 시약 회장도 야심이 있다. 모르지! 문재빈 전영구도 한 번 더 도전하지 않겠나."

-대약 임원 인선에 관여하지 않았나.

" 전혀 없다. 부회장은 물론 상임위원장도 내 의견을 말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부담을 줘서는 안된다. 어차피 인선은 학연 지연을 안 따질 수가 없다. 일단 결정됐으니 그 임원들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 한다.

회장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정보독점하면 임원들 관심 떨어진다. 아! 이번 인선에서 쓸개빠진 녀석이 한 명 보이데. 약사회 떠나겠다고 기자회견 까지 해놓고선 한 두달 노니 심심했나 보지. 그런 사고 가진 사람을 임원으로 쓰면 안된다."

-캐나다는 좋던가.

" 아! 크고 공기 좋고 정말 좋더라. 푹 쉬면서 약국도 둘러보고 병원도 가봤다. 그쪽 분업제도도 둘러봤다. 거기는 보험재정이 안정돼 있었다. (우리나라처럼) 의사가 무한정 돈버는 시스템이 아니다. 만나는 환자 수가 정해져 있고 가정주치의제다. 의료전달체계를 바로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 의료개혁 기대하기 어렵다.

정책을 세우는 사람들이 외국의 제도도 보고 오고 해서 좀 바로 잡아야 한다. 보험료내고 병원가서 돈내고 약국에서 돈내고 환자는 괴롭다. 또 (우리나라처럼) 병원마다 환자가 넘쳐나는 곳도 없다.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간다. 의약품 분류체계를 다시해 일반약을 확대해야 한다. 일반약으로 치료할 수 있어야 한다."

- 재임중 기억남는 일을 말해달라.

(허! 허!) 서대문에서부터 약공 주간을 거쳐 한 20년 동안 정말 쉬지 않고 했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해올 수 있었던 것은 모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변에 적을 많이 만들지 않았다. 90년 인가. 시약 직무 대행을 할때 한약분쟁이 터졌다.

난생처음 재판을 받았는데 감옥에 갈 생각을 하니 그렇게 떨렸다. 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마음 준비도 없어서 내가 없을 경우를 생각하니 가족과 주변의 문제들이 자꾸 걸렸다. 다행히 김희중 전 대약회장은 집행유예로, 나는 그보다 조금 아래인 선고유예를 받고 검찰에서 풀려났다. 회장 재임시에는 주사제 파동을 잊을 수 없다.

회장으로 당선되는 바로 그날 지부장들과 회의를 하는 등 바쁜 일정으로 시작했다. 지금은 뭐 현안이 있나. 대체조제 성분명 처방 하루아침에 이뤄지기 힘들다. 나는 그때 준비가 사실 덜됐다. 제도적인 접근에 미흡했고 코치해줄 인재가 없었다. 주사제를 넘기자와 사수하자가 50:50으로 팽팽했다.

당시 내 판단으로는 분업의 원칙이라는 것이 의약품 오남용을 막자는 것인데 넘어가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이미 85%는 넘어가 있었지만 나머지라도 사수했어야 했다.

나는 정책파들에게 끌려 다녔다. 그러나 주사제 나가면 의원 끼지 않은 약국 다 죽는다고 4개월간 투쟁했다. 집행부는 지쳐갔고 그 후 포기쪽으로 가닦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전국임원 워크숍 회의를 하면서 분위기를 그쪽으로 몰고 갔다. 지금생각하면 투쟁했어야 했다. 비록 뻿기더라도 투쟁해서 다른 것을 얻었어야 했다. 주사제를 주고 다른 것을 얻었어야 했다는 말이다. 명분도 있었는데...( 이 대목에서 한 전회장은 아쉽다는 표현을 몇 차례 썼다. 주사제를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정책파 때문이었다고는 하지만 최종 결정은 자신이 한 것이므로 회원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지방과 김희중 집행부 친구들이 대놓고 말은 못해도 그런식으로( 포기하는 쪽으로)끌고 갔다. 그 다음 기억나는 것은 김원길 복지부 장관 시절 5.3 대책에 관한 내용이다. 회장에 취임하면서 갑자기 터진 대형악재 였다.

3세 이하 75세 이상은 분업에서 제외하자는 내용을 당시 복지수석인 이태복씨가 청와대에서 발표하기로 했다. 나는 발표 한 시간 전에서야 겨우 알았다. 이것을 막지 못하면 분업의 의미는 없어질 뿐만 아니라 집행부나 약사들에게 큰 충격일 것으로 판단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그것을 막았다. 발표에서 그것이 빠졌다. 내 임기동안 해낸 최대한의 보람이었다. ( 한 전 회장의 얼굴에 안도감이 묻어났다.)

나는 참모들에게 복지부에서 자폭하자고 했다. 장복심 부회장이 미리 가고 나중에 내가 이규진 부회장과 들어갔다. 문재빈 전영구 부회장은 청와대로 보냈다. 설득하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두사람은 이 수석에게 완전히 설득당했다. 두 사람은 아마도 이제 한석원 집행부는 끝났다고 생각한 듯 했다.

청와대서 오는 도중에 대전과 대구 등에 연락해( 한석원 집행부가 막지 못했으니 농성하라고 전화했다는 의미) 벌써 대약으로 회원들이 몰려왔다. 그때(저녁 7시경) 나는 복지부에서 발표하지 않기로 김장관의 확약을 받고 대약에 돌아오다 회관에서 문, 전 부회장과 마주쳤다.

내가 해결됐다고 말하자 두 사람은 사색이 됐다. 발표 될 것으로 알고 회원까지 동원했던 두 사람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한석원 물러나고 인수팀을 만들자고 논의까지 했을 것인데 틀어졌으니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 한 전회장은 이 순간이 두 사람을 신뢰하지 않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회상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약사회 임원이라는 사람이... 한 전 회장은 그때를 생각하며 입맛을 다셨다.)

그때부터 두 사람과 마추치는 것조차 짜증이 났다. 좋아하고 환호성을 질러야 하는데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이것이 비하인드 스토리이고 역사다.( 한 전회장은 기자를 응시하면서 이런 것을 기록에 남겨야 하지 않겠느냐, 그것이 기자들이 할 일이다고 말했다.)

그게 발표 됐으면 한석원이는 사표 냈어야 했다. 그것을 막았다. 재임중 회원들에게 해준 분업의 최대 실적이다. (회원들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집행부는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그리고 또 기억난다면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약사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지지했고 당선되지 않았나. "

-수고한 임원 한명을 대달라.

" 원희목 회장은 정책적인 일에 관해서는 열심히 일을 해줬다. 총회석상에서도 말했지만 김대업 정보통신위원장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자신은 욕을 먹어도 한석원 집행부가 잘 갈 수 있도록 정말 헌신적으로 일했다.

인간적으로도 나를 따랐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한번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아직 원희목 집행부에서 일은 하지 않지만 언젠가는 합류할 것으로 본다. 그러면 간혹 원회장과 부딪히는 부분도 생길 것이다. 모든 정책에서 그는 정말 사심없이 일을 하므로 섣불리 쓰기도(원회장이 기용하기도) 힘들 것이지만 인재는 인재다.

남수자 박해영 두 사람은 다 그만의 장단점이 있다. 똑똑한 걸로 보면 남수자가 더 한데 대인관계 등에서는 박해영이 앞서 부회장으로 최종 낙점된 것 같다."

한 전 회장은 대화 도중 수시로 허! 허! 웃었다. 지나고 나면 다 그립고 아쉬운 것이 인생이라고도 했다.

회장에서 물러나는 것이 시원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다는 말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김희중 전 회장이 물러났을 때 원로로서 서운 하지 않을 정도로 극진한 대접을 했다. 독자적으로 홀로 결정하고 도장 찍다 이제 아무런 할 일이 없는 것의 쓸쓸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파대회장 자리를 맡긴 것도 그같은 이유 때문이다. 주위 사람들이 의아해 할 정도로 챙겨주고 온정성을 다 바쳤다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계획인가.

" 당분간 약국에 있을 생각이다. 얼마나 편한가. 이제 비로서 자기 자리를 찾은 느낌이다. (잠시 허공을 보더니) 대약회장 해서 팔자 고치려는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한 전회장은 원회장이 성공한 회장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것 같았다.)

놀고 싶고 쉬고 싶다. 약사회장은 약사회원만을 위해야 한다. 국회의원이나 다른 뜻을 가지고 지위를 이용하면 회원들이 불쌍해 진다. 회비가지고 자기 지역 가서 돈쓰고 다니는 것, 이런 비용이 다 회비로 나간다. 회장이 정치 생각가지고 있으면 회원은 손해다."

- 퇴임 후 원회장은 만났나.

" 아직 못 만났다. 약사회관을 다 뜯어 고치는 모양인데 아마 다음주면 정리될 것 같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 새로운 마음으로 회무에 임해주기를 당부하고 싶다. 약사지위 향상이나 존경받는 약사상, 신바람 나는 약사사회 만들기 등의 구호는 추상적인 것이다.

회원들이 동참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제 '시작이 반'이니 열심히 해주기를 기대할 뿐이다.일반약을 확대하는 일에 신경써야 한다. 슈퍼에 던져줄 것은 과감하게 던져줘라. 약국은 드럭스토어가 돼야 한다. 그것이 미래 약국의 모습이다.

처방전만 받는 약국 이것이 무슨 약국인가. 약국보조권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다음 카운터 추방운동 해야 한다. 아무런 준비나 대책없이 카운터 추방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한 전회장은 인터뷰 내내 약사회원들에 대한 걱정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회원의 회비로 운영되는 약사회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간절했다. 호탕하게 웃으며 돌아서는 그의 뒷 모습이 결코 작아 보이지 않았다.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bgusp@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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