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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약사대회 여는 권태정 시약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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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약사대회 여는 권태정 시약 당선자
  • 의약뉴스
  • 승인 2004.0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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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40매) '일과 사랑 회무열정 그리고 인생'
3월 서울시약 8000여 회원이 모여 약사대회를 연다. 장소는 잠실체육관이다. 조만간, 아주 오랫만에 약사들의 함성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살아 있는 약사들의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는 권태정 시약당선자를 만났다.

약국에는 200여 개는 족히 될 것 같은 난 화분들이 아직도 노랑 하양 빨강 분홍 등 화려한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고 특유의 아주 좋은 난향내를 진하게 풍겼다.

이런 축하를 받기 위해 선거에 나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자리를 옮겨 인터뷰는 3시간 넘게 진행됐다. 권 당선자는 인터뷰 내내 '믿음과 신뢰'라는 말을 강조하면서 선거과정에서의 일들로 인터뷰를 풀어갔다.

- 이제는 당선이 실감이 나나. 선거과정에서 못 다 한 말들은 없나.

" 한 달 여가 지났으니 이제는 덤덤하다. 하지만 이번 선거가 회원의 승리이고 영광이라는데는 이견이 없다. 힘든 게임이었지만 회원들의 위대한 선택이 오늘의 권태정을 있게 했다.

지금 이 순간 나를 지지한 회원이나 반대한 회원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고 있다. 나를 믿지 못하는 약사들에게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 급선무다. 나는 약사들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겠다.

( 잠시 상념에 잠기더니 선거과정의 일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아! 왜 할말이 없겠나. 하지만 이제는 좀 정리하면서 말해야 겠다. 한번은 약국을 방문했는데 전혀 모르는 약사 한 분이 점심이나 먹고 다니라고 밥값을 주기도 했다.

어떤 분은 권태정이는 체격도 우람하고 얼굴도 험상굿게 생겼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보고 나니 아니더라며 열심히 하라고 손을 덥석 잡기도 했다.

지금 공개하는 것이지만 격려하는 이메일 팩스 전화 등을 수도 없이 받았다. 나는 이미 그때 당선을 확신했다. 당선 후에도 그 분들은 나에게 축하전화를 해주었다. 그런데 목소리가 선거운동 할 때보다도 덜 기쁜 것 같다며 아쉬워 했다. 너무 차분한 것 아니냐고도 했다.

어떤 분은 난과 함께 열심히 하라는 손수 글씨를 쓴 편지를 보냈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나는 한 분 한 분의 당선 축하를 받으면서 내 인생은 이제 개인의 인생이 아닌 약사들의 인생이라는 것을 무겁게 느꼈다. "

-그래도 이겼으니 많이 기쁘지 않나.

" 당선되는 그 순간은 정말 기뻤다. 이제 끝냈구나! 하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 다음 부터는 공약했던 사항들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하는 것에 신경이 곤두섰다. 내가 공약한 것을 100% 지킬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반드시 지키겠다는 각오를 갖고 있다."

- 낙선했지만 선전했던 정명진 이영민 후보와는 만났나.

" 위로의 전화를 했으나 통화하지는 못했다. 한 번 만나 허심탄회하게 이런 저런 말들을 하고 싶다. 거듭 말하지만 낙선한 분들이 못났다거나 내가 잘나고 똑똑해서 당선된 것이 아니다. 전략과 전술에서 승리한 것이다."

-만나서 할 이야기는.

"낙선자나 나나 다 50대 중반이다. 선거가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할 나이는 아니지 않는가. 당선이 됐다면 좋았겠으나 낙선했다고 해서 낙담할 필요가 없다. 잘 모르는 부문은 물어도 보고 자문도 받을 생각이다.

이영민 후보 선대 본부장이었던 권건주씨가 과로로 입원했다는 말을 듣고 강남성모병원으로 병문안 갔었다. 그 분이 반갑게 맞아줬고 좋은 말을 많이 해줘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이영민 후보와는 70학번으로 오래된 친구다. 나는 선거기간 중 한번도 상대 후보를 음해하지 않았다. 상대편도 마찬가지다. 페어플레이를 한 후보들에게 감사한다."

- 다 지났으니 어떤 전략이고 어떤 전술이었는지 설명해 줄 수 있나.

" 나는 편법을 쓰지 않는다. 원칙과 정도를 향해 정해진 길을 갔다. 뒤진다거나 앞선다고 참모들이 시시각각 보고했으나 나는 어느 순간도 게의치 않았다. 초지일관 밀어 부쳤으며 내길이므로 내가 간다고 정해놓고 그렇게 갔다. 처음부터 도와주기로 한 사람들은 끝까지 나를 도와줬다.

나는 그들에게 단 한번도 자리약속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말 후보인 나보다도 더 열심히 해줬다. 그것이 전략이고 전술 아닌가. 어느 여대가 어디로 갔다거나 누가 어떤 말을 했다는 등의 보고는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다. 그보다도 나는 회장에 당선된 뒤의 일들을 생각했다. 준비된 회장의 모습 그것이 바로 권태정의 모습이었다.

결과는 하늘에 있었다. 나는 회원이 주인이다 라는 생각으로 약국을 다녔다. '동문 줄 세우기' 백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나는 미리 감치 간파했다. 동문선배가 누구 찍으라고 하면 그 자리에서는 알았다고 해도 결국은 안찍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은 어떻게 만났나. (잠시 화제를 돌렸다. 권 당선자의 거침없고 당당한 소신은 잠시 뒤에 다시 듣기로 했다.)

" 대학 3년때 처음 만났다. 나와 4살 차이였다. 당시 남편은 직장에 다니면서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다리는 시숙모가 놨다. 한 번 만나 봐라! 해서 만났는데 그것이 이렇게 질긴 인연이 될 줄은 몰랐다. 처음 만남은 그렇게 지나갔다. 그 뒤 1년 후에 다시 만날 기회가 생겼다. 당시 나는 약대 학생회장이었고 가면무도회를 준비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동료들이 대개 남자친구가 없었다.

나는 지금의 남편에게 친구들을 부탁했고 한 20여명쯤 조달된 것 같다. 시댁 쪽은 나에게 관심을 갖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남편의 구애도 계속 이어졌다. 결혼은 졸업 후 했다."

- 누가 일등공신인가.

"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나를 도와준 분들이 다 일등공신이다."

-한 명이라도 실명을 대달라.

" 장동선 동문회장이다. 언니처럼 때로는 어머니처럼 대해줬다. 어려울 때 용기를 줬고 실의에 빠졌을 때 격려했다. 힘이 생겼을 때 자만하지 말라고 제동을 걸었다. 지금 이 자리를 빌어 그 분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또 한분을 거론한다면 정운삼 감사님이다. 그 분 역시 나의 훌륭한 스승이었다. 지난 4년 회무기간 동안 단 한번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 가장 약이 되는 쓴소리를 해줬다. 그 분은 술수를 부릴 줄 모르며 직선적이다. 단백하다고나 할까. 정 감사님께 깊은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 또 기억나는 사람은.

" 민들레회다. 보이지 않고 표시나지 않았지만 민들레 회원들은 권태정이는 '일은 똑부러지게 한다'고 입소문을 냈다. 민들레회는 내가 시약담당부회장 시절 각구 여약사회장들이 모여 만들었다.

4년 전인가. 태국에 갔을 때 앞으로 형제처럼 지내자고 굳게 언약했고 그 결실을 오늘 본 것이다. 민들레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어디서나 빛이 나지 않는가. 민들레 이름 때문에 당선됐다고 우스개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열심히 해줬다.

그들은 24개 분회 곳곳에서 활동했다. 조병금 씨 같은 분은 참 열심히 했다. 10여 년 동안 같이 희로애락을 겪었는데 선거기간 짧은 시간에 누가 무슨 소리를 한다고해도 권태정이를 믿을 수 밖에 없었다. 각 시도 부지부장협의회인 우정회 활동도 컸다. 지방에 있으면서 서울 지인들에게 많은 전화를 해줬다. 권태정은 할 수 있고 할 만한 일꾼이라고 앞장서서 홍보했다."

- 미래를 보는 눈이 있다고 생각하나.

" 그런 편인 것 같다. 미래를 정확히 예측한다. 그리고 나는 조직원을 존경한다. 약사회 수장은 조직원을 존경하면서 미래를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회원을 두려워 해야 하고 20개 약대를 모두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분업 후 지금의 상황을 나는 정확히 예측했다. 그게 나를 지지한 또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대약을 믿어라, 무슨 투쟁이냐' 고 힐난할 때 나는 오늘의 상황을 정확히 간파했다. 지금 보니 권 후보 말이 맞다고 하는 분들이 많았다. 조직이 강해야 회장이 힘이 생긴다."

-선거과정 중 많은 공약을 했는데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뭔가.

" 서울시약사대회를 여는 것이다. 시기는 3월말이 될 것이고 장소는 잠실체육관이다. 약사들에게 꿈과 희망과 비전을 심어주는 일을 권태정이가 반드시 해내겠다. 세부적인 일은 인수위가 할 것이다."

-인수위 멤버는 정해졌나.

' 아직 공개하기는 이르지만 선거 때 나를 도와준 분들이 일을 할 것이다.'

-인수위가 임원이 되나.

"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인수위 활동만 하고 회무는 보지 않는 분도 있다. "

-부회장 5명은 누구 누구 인가.

" 아! 아직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 부회장 5인에 현재 있는 의약분업정책단을 유지하고 한약정책단을 신설할 것이다. 한약이 매우 중요하지 않나. 임명되는 부회장은 맡은 위원회를 회장이 하는 것처럼 책임감을 갖고 해낼 것이다."

-전영구 시약회장과는 화해 했나.

" 화해고 뭐고가 어디 있나. 한 때 불편한 관계에 있었지만 그때도 바로 그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봤다. 당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전영구 회장은 대약회장과 시약회장 양쪽의 출마를 놓고 동문간 이견차이로 고민을 했고 시약회장 재출마도 고려한바 있다.) 하지만 대약회장 후보로 결정된 후 그리고 후보 단일화 후에는 나를 진정으로 도와줬다.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다 지난 일이다.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동지도 없는 것 아니냐. "

- 문재빈 후보와 전영구 후보중 누가 단일후보가 되기를 바랬나.

" 두 사람 다 장단점이 있다. 단일 후보 역시 하늘의 뜻에 따라 결정된다고 봤다. 하늘의 뜻은 준비된 사람을 말한다. 그런데 두 사람 다 대약회장이 되기 위한 준비가 부족했다. 어떻게 시간을 써야 하는지를 몰랐고 조직관리도 안됐다. 하늘이 쪼개져도 내일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그런 자세가 부족했다."

-원희목 문재빈 후보중에서 누가 당선되기를 바랐나.

" 두말할 것도 없이 문재빈 후보다. 하지만 문 후보는 처음부터 역부족이었다. 분회장 선거면 몰라도 대약 선거전에서는 확실히 준비가 안됐다."

- 왜 문재빈 후보를 바랐나.

" 세상이 나와 문재빈 후보와의 관계를 다 알지 않나. 원희목 후보 스타일로 봐서는 대화와 타협이 어렵다고 생각했다. 회원의 권익을 위해서는 문 후보가 낫다는 생각을 했다. 옆에서 지켜본 원 당선자는 전혀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넓게 봐야 하나 그런 시각이 좀 부족하다.

특히 분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깨질 것만 염려했지 그로 인해 약사들이 받을 고통은 도외시 했다. 수년전 원 당선자를 봤을 때 뛰어난 정책력은 인정했다. 하지만 정부에 맞춰만 주려는 회무에 강한 회의를 느꼈다. 역설적으로 내가 회장이 된 것이 원희목 당선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

- 원 당선자와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 많은 사람이 그 점을 우려하고 있다. 12월 9일 이전에는 두 사람이 다 참모였다. 하지만 지금은 수장이다.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일수 없다. 상대편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약사 생존의 문제다."

-당선 후 두 사람이 만났나.

" 못 만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내가 대약 회장으로 원 당선자를 극진하게 예우 하겠다고 말했고 원 당선자 역시 서울지부장의 위상을 세워주겠다고 화답했다. 영원한 적이 없고 영원한 동지 없다고 말하지 않았나. 가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적이 더 큰 동지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원 당선자와 회무를 하는데 있어 걱정하지 않는다.

서로 곡해 하는 부분이 있다면 만나서 확인한 후 결정하기로 했다. 내가 살아온 길이 이렇다. 남이 이렇게 이렇게 말하니 그렇다고 믿는 스타일이 아니다. "

-원 당선자도 전국약사대회를 열겠다고 했는데 김이 빠지니 3월 대회를 연기해 달라고 요청하면 어떻게 하겠나.

" 아! 말도 안된다.( 이 대목에서 권당선자의 목소리가 커졌다.) 나는 오래 전에 준비했다. 이것은 회원과의 약속이다. 그런 제의를 받은 적도 없지만 받는다 해도 나는 즉각 거절할 것이다."

- 만약 3월에 전국약사대회를 한다고 하면.

" 그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것은 준비가 돼야 한다. 그는 3월 전국약사대회에 대해 전혀 준비한 것이 없어 할 수가 없다. 4월 총선 전에 약사들의 살아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내가 3월에 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다 때가 있고 시기가 있다. 총선이 끝난 다음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 많은 비용이 드는데 어떻게 모으나.

" 약사 공익을 위한 것이므로 제약사에 협찬을 떳떳하게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하는 일에는 절대 제약사에게 손을 빌리지 않겠다. 그래도 부족하면 회비로 충당할 생각이다."

-'권태정 하면 투쟁'이 연상되고 이런 의식 때문에 오버액션 하지는 않나.

"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 큰 결정을 하기 전에 많은 참모들의 의견을 들을 것이다. 스스로 나를 묶어 투쟁만 하는 그런 시약회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겠다."

권당선자는 인터뷰 중 어떤 질문이 오더라도 즉각 대답했다. 그의 성격처럼 앞뒤를 재지 않았다. 그에게는 많은 후배들이 따른다. 호랑이 라고 무서워 하면서도 따르는 것은 초지일관 원칙과 정도를 지키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여기저기 정당에서 가입하라는 권유를 받고 있으나 정치에는 아직 뜻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뭐가 되고싶은가? 3년 후 대약회장에 도전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나는 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인생의 즐거움은 약국에 있을 때 이며 환자들에게 복약지도를 할 때" 라고 여유있게 받아 넘겼다.

단순하고 명쾌한 그가 3년 후 대약회장을 대비한 인기회무를 할 이유가 없다는 뜻으로 들렸다. 권 당선자가 보여줄 시약 회무 3년의 활동상이 눈에 선하다.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bgusp@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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