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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6 00:17 (금)
[기자수첩] 남한산성에 갇힌 인조, 그리고 대한약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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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남한산성에 갇힌 인조, 그리고 대한약사회
  • 의약뉴스 이찬종 기자
  • 승인 2022.05.25 05:5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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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1637년 겨울, 남한산성에 갇힌 인조는 성을 포위한 청나라 대군에 둘러싸여 고립무원의 상황에 빠졌다.

타개책을 내놓아야 할 대신들은 뜻을 하나로 모으지 못했고, 두 파로 나뉘어 끝없이 논쟁을 이어갔다.

김상헌으로 대표되는 척화파는 청나라와의 타협은 있을 수 없다며 끝까지 결사 항전할 것을 주장했고, 최명길로 대표되는 주화파는 청과의 협상을 통해 전쟁을 끝낼 것을 주장했다.

결국 이 논쟁은 어떠한 결론도 내지 못하고 인조가 청나라 황제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삼전도의 굴욕으로 끝을 맺었다.

비대면 진료와 약 배달이라는 의제에 맞서는 대한약사회의 모습은 남한산성에 앉아 타개책을 고민하는 인조의 모습과 닮았다.

대규모 자본과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등에 업고 밀려오는 약 배달 법제화 움직임에 약사회는 뚜렷한 해법을 내지 못하고 있다.

약사회는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 돌입하며 투쟁에 나서겠다고 선언했지만, 출범 후 한 달 가까이 흐른 지금까지 어떠한 방향성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이 와중에 약준모와 실천약 등 약사단체들은 지난 22일, 서울 용산역 광장 앞에 모여 집회를 열고 정부의 비대면 진료ㆍ약 배달 법제화 움직임을 규탄했다.

원론적인 대면 투약 원칙을 고수하고, 약 배달은 절대 불가하다는 주장을 견지하며 끝없이 투쟁을 말하는 이들의 목소리에서는 결사 항전을 주장하던 척화파의 향기가 느껴졌다.

척화파는 조선 사회에서 충신으로 남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는 변화하는 세계 질서를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로 평가됐다.

이미 세계의 패권이 청나라로 넘어간 상황 속에서도 척화파가 구시대적 이념만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척화파들이 조선 사회를 위해 희생한 충신으로 남은 뒤 조선은 외부 문물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현저히 늦어졌고, 결국 세계무대에서 약소국이 돼 외세에 흔들렸다.

약사사회가 놓인 상황도 어찌보면 병자호란 때의 조선과 같다.

코로나19로 시대의 흐름이 바뀐 상황에서 대한약사회는 나아갈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고, 약사단체들은 투쟁만을 주장하며 원론적인 이야기만 이어가고 있다.

이대로 남한산성에 갇힌 인조와 같은 행보를 이어간다면 대한약사회에 남을 것은 결국 또 하나의 삼전도의 굴욕일 것이다.

이 흐름을 끊기 위해서는 대한약사회가 약사단체들의 목소리에 앞서 가장 먼저 약국 현장에서 환자들과 만나며 일상을 보내는 일반 약사들의 삶을 생각해야 한다.

이대로 경제 논리에 모든 것을 내어주며 머리를 조아리는 굴욕을 겪게 된다면 그 과정에서 일반 약사들은 플랫폼에 종속되고, 더욱 팍팍한 약국 경영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이를 막기 위해선 원칙만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유연한 태도로 먼저 비대면 진료와 약 배달에 대해 알아가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의협이나 다른 보건의료단체들은 이미 포스트 코로나 상황 속 비대면 의료체계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약사회 역시 지금이라도 약사회만의 대안을 만들기 위한 준비에 나서야 한다.

대안 없는 협상은 실패한다. 그렇기에 근본론자들의 목소리에서 벗어나 이른바 전향적인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대한약사회는 남한산성에 갇혀 백성을 외면하고 명분 논리에 빠진 인조가 아니라 앞장서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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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진 2022-05-27 10:06:04
쓰신 칼럼 잘 읽었습니다. 칼럼에 대한 대답을 약공에 기고문으로 올렸습니다.
https://www.kpanews.co.kr/article/show.asp?category=H&idx=233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