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청 뿐만 아니라 정부의 업무 기조에 일관성이 떨어지는 게 사실입니다. 일을 처리하는 담당자마다 각각 틀린 잣대를 갖다대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을 시정하고 업무의 투명성과 예측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해 직원들과 뜻을 모아 ‘의약품 규제기준 연구협의회’를 만들게 됐습니다.”
지난달 초 ‘의약품 규제기준 연구협의회’(GRP-SIG, 이하 의규연)를 자발적으로 구성,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약무행정 일관성을 주도하고 있는 의약품안전과 이정석 과장(51)을 만났다.
이 과장은 민원업무의 일관성은 행정의 기본이라고 말한다. 민원서류를 하나 떼더라도 똑같은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는 것. 물론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이 과장의 말처럼 현실에서는 아직도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의규연은 이러한 행정업무상의 눈높이 차이를 해결하고자 만든 실천모임이다. 현재 의약품안전과와 의약품평가부에서 허가와 안전성·유효성 평가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직원 16명 구성됐다. 이들은 매주 수요일 오전 2시간씩 모여 의약품 안전관리에 필요한 각종 현안에 대해 회의를 갖고 눈높이 맞추기에 머리를 맞대고 있다.
“시작한지 채 한달도 안됐지만 업계와 국회 등에서 벌써부터 함께 참여하고 싶다는 의견을 보내오고 있습니다. 향후 모임이 자리잡히는 대로 이들에게도 가입을 개방해 스터디(Study) 그룹으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입니다.”
전북 전주출신인 이 과장은 서울대 약대 출신으로 지난 83년 복지부 약사공무원으로 입사해 의약품관리과 과장 등을 거쳐 지난 3월부터 의약품안전과 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약국 경영보다는 행정이 제 적성이 맞는다는 판단이 서더라고요. 이후 군을 제대하고 약사공무원 생활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올해로 벌써(?) 약사공무원 생활 22년째를 맞는 이 과장은 식약청 내에서도 가장 바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인터뷰를 위해 의약품안전과 사무실을 찾았을 때도 직원들과의 회의(?)로 30분 이상을 기다렸을 정도. 그도 그럴 것이 이 과장이 맡은 업무는 생명과도 직결되는 의약품의 안전을 책임지는 막중한 자리다.
기다리는 동안 한 직원에게 물었다. “과장님 바쁘시죠?” 그런데 날아오는 대답이 걸작이다. “우리과 직원들도 과장님 얼굴보기 힘들어요.”
실제로 이 과장은 밤 10시 퇴근이 일상화됐고 일이 많을 때면 주말 출근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의 가족의 반응이 궁금했다.
“저만 그런 게 아니에요. 직원들 모두 일이 있으면 당연히(?) 주말에도 나와야 하는 걸로 생각하는데요. 아내는 벌써 거의 반쯤 포기한 것 같아요. 아들놈들이 고2, 중3인데 서로 바쁘다보니 거의 신경 쓸 겨를이 없네요. 아내에게 제일 미안하죠.”
의약품안전과 직원들 사이에서 그의 별명은 조선 전기의 재상 한명회다. 얼굴 생김새도 생김새지만, 칠삭둥이로 태어나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자리에까지 오른 한명회의 노력과 깐깐하기로 소문난(?) 그의 업무처리가 닮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직원교육 때마다 강조하는 것이 공무원으로서 공(公)과 사(事)를 구분하라는 것입니다. 공무원은 업무처리과정에서 자기 생각이 중요치 않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 과장은 현재 보다 높은 곳(?)을 위해 새로운 도전을 준비 중이다. 올 하반기 국비장기교육이 예정돼 있는 것.
“현재 미국 등의 학교와 연구소들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1년 반의 일정으로 그동안 부족한 부분에 대한 공부와 함께 선진 약무행정과 보건정책에 대해 연구하고 돌아올 계획입니다. 아직 일정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유학 장소가 정해지는 대로 출발할 예정입니다.”
그는 인생의 목표나 모델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욕심은 끝도 없고 욕심대로 모두 이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자신에 충실하다면 그만한 대가는 당연히 따라오기 마련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국내 제약업계도 이젠 홀로서기를 할 때가 됐습니다. 스스로에 대해 책임지고 경쟁력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약품안전관리 시스템이 갖춰 간다는 생각이 들 때 생활의 보람을 느낀다는 이정석 과장이 던지는 국내 제약사들에 대한 조언이다.
의약뉴스 박주호 기자(epi0212@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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