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3기말·후두암2기 부친 간병한 황순섭씨 사연 선정
‘2005 암중모색 희망’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 대한암협회가 올해 실시한 암극복 가족 수기 공모 대상 수상작을 발표했다.
지난 4월25일부터 20일간 ‘암을 잘 이겨낸 행복한 암환자와 가족을 찾아나섰던’ 대한암협회는 폐암3기말과 후두암2기를 동시에 진단받은 아버지를 온 가족이 한마음으로 간병을 하며 지켜낸 황순섭씨(31)의 사연을 대상으로 선정했다.
◇아버지 몸 두 곳에서 암세포가 자라다
경북 영주에서 작은 논밭을 일구며 평생을 살아온 황병태씨(63)는 손등이 소나무 껍질처럼 갈라지도록 부지런히 살아온 4남매의 아버지다. 4남매를 키우기 위해 농번기에는 농사를 짓고 겨울이 되면 동네 양계장 청소, 닭 이사, 쌀 수송, 하우스일 등을 가리지 않으셨다.
그 땀이 두아들 대학원 졸업까지 공책값이 되고 연필값이 돼주었다.. 그리고, 어려운 형편에서도 잘 자라준 자식들이 일가를 이루며 이제 막 고단한 삶의 무게를 내려놓으려는 찰나, 그에게 “암”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왔다.
나이 예순을 막 넘기면서다. 목이 붓고 피부가 간지러워 병원을 찾았던 황병태씨는 우연히 엑스레이 검사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한다. 이미 그의 몸 두 곳에서는 암세포가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이비인후과에서 먼저 후두암을 발견했다.
그리고, 몇일 후, 가족들은 놀란 가슴을 진정할 틈도 없이 종양내과로부터 긴급 호출 연락을 받는다. 의료진의 설명은 폐암3기말. 당장 치료를 받지 않으면 3개월을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2년전부터 새벽에 잦은 기침을 했지만, 누구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4남매는 건강검진을 미리미리 챙겨드리지 못한 것이 너무도 후회스러웠지만, 이미 때늦은 후회였다. 가족들은 흔들림없이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난생 처음 본 아버지의 눈물
아버지에게 암을 알리던 날, 강하게만 보이던 아버지는 그대로 무너졌고, 서럽게 우셨다. 난생 처음보는 아버지의 눈물 앞에서 4남매도 따라 울었다. 그리고, 우는 아버지를 붙잡고 비명에 가까운 설득을 시작한다.
“우리가 아버지를 살려내겠다고, 아직은 아버지를 잃을 수 없다고, 그러니, 조금만 더 저희곁에 있어달라”고.
잔정없이 무뚝뚝했지만, 어린 시절 생일 선물을 꼭 챙겨주시던 아버지였다. 새벽부터 시작되는 농사일에 몸이 천근만근이어도 늦게 오는 자식들을 하루도 빠지지않고 동구밖까지 마중나오시던 아버지였다. 농사로 꾸려가는 어려운 살림에도 4남매 수업료를 한번도 밀리신 적이 없는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를 이제는 4남매가 지키기로 한 것이다.
아버지는 자식들의 간절한 소망을 뿌리치지 못했다. 치료가 시작됐다. 시급한 폐암 치료를 위해 항암치료 6회, 그후 목과 폐의 종양을 줄이기위한 방사선 치료 35회가 이어졌다. 방사선 치료가 끝난 후엔 다시 후두암 수술이 이어졌다.
◇아버지를 외롭게 하지 말자
아버지가 하나도 아닌 두 개의 암과 열심히 싸우는 동안 가족들은 가족들대로 자신들이 할 일을 찾았다. 어머니는 아버지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큰누나 경선씨는 틈만 나면 투병중인 아버지와 간병하시는 어머니에게 필요한 것들을 살뜰하게 챙겨 병원으로 날랐다. 큰아들 순섭씨는 의료진과의 상담과 인터넷 서적등에서 정보취합을 도맡으며 아버지의 치료일정을 챙겼다. 대학원 졸업학기이던 막내 인섭씨는 수업을 빼먹어가면서도 아버지의 병원길을 한번도 빠지지않고 함께 다녔다.
당시 새댁이었던 큰며느리는 임신중인 몸으로 맛깔스런 음식을 만들어 대전과 서울을 오갔다. 사위는 백년손님이라지만, 큰사위는 전세값을 빼서라도 아버지를 꼭 살리겠다며 처갓집 식구들을 응원했다.
투병기간중 태어난 손주 재성이도 아기에게는 힘들었을 3시간 거리의 병문안을 멀미 한번 하지 않고 따라다녔다. 그렇게 그들은 투병중인 아버지를 외롭게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결코 혼자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고 싶었다.
◇뜨겁고 치열했던 싸움이 끝나고
2004년 12월, 치료가 끝났다. 다행히 폐에 있는 종양은 제한병기로 흔적은 남아있지만,
더 이상은 진행되지 않았다. 후두암 수술도 목소리를 잃지 않고 성공적으로 마쳤다.
황씨 가족이 이야기하는 암 극복의 비결은 무엇일까? 가족을 대표해 수기를 썼다는
황순섭씨는 본인의 투병의지, 가족들의 흔들림 없는 지원, 의료진에 대한 깊은 신뢰가 그 비결이라고 잘라말한다.
예순의 나이 때문에 힘들다는 항암치료를 견뎌내실 수 있을까 싶어 민간요법에 잠시 솔깃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의학적으로 검증된 치료법을 택했고, 그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백발이 성성한 머리, 외출할 때면 늘 곧추매는 넥타이
첫 눈에 보기에는 두개의 암과 싸웠던 암환자라고 도무지 믿기지 않는 아버지 황병태씨, 그는 큰아들의 수상 소식을 전해듣자 “내가 이런 얘기하면 팔불출, 아니 구불출이라고 하겠지만...”하며 자식자랑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자식은 늘 부모의 자랑이다. 하지만, 부모는 자식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열심히 투병해주신 아버지, 그래서, 이제라도 효도할 수 있게 기다려준 아버지께 너무나 감사하고 자랑스럽다는 황씨네 4남매.
항암 치료는 끝났다고 해도 여전히 돌다리도 두들기며 건너는 마음이지만, 암은 이들 가족에게 더 이상 두려움의 존재가 아니다. 아버지 본인의 강건한 의지와 가족들의 사랑이 함께하는 한, 얼마든지 해볼만한 싸움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시상식은 오는 3일 저녁 대한암협회 명예회장인 권양숙 여사의 초청으로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리는 “암을 이긴 사람들” 초청행사에서 열릴 예정이다.
정리=의약뉴스 홍대업 기자(hongup7@newsmp.com)
저작권자 © 의약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