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다음엔 “그런데 너는 고작 이 점수로 수도권 대학에 원서라도 넣겠냐?”는 잔소리가 나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런 달갑지 않은 비교는 고개 숙인 남편도 예외는 아니다.
“오늘 대학 동창을 만났는데 제 남편이 승진해 승용차를 바꾸고, 밍크코트를 사줬다고 자랑하더라고요.”
그 다음 더 심한 말이 튀어나오기 전에 담뱃갑을 들고 슬그머니 자리를 뜨는 남편의 뒤통수를 향해 아내는 더욱 목소리를 높인다.
“학창시절엔 내가 더 잘나갔는데, 당신 만난 나는 이 꼴이 뭐야?”
오래 전, 모 교장선생님은 자녀 교육에 대해 사담을 나누는 중,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것이 있냐고들 말하지만 길고 짧은 모양이 비교되는 것은 솔직한 심정”이라고 털어 놓아 가식 없는 그분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과거 경찰서 청소년선도위원으로 활동하던 시절, 부모가 모두 생존한 가정의 자녀들이 탈선하는 이유의 대부분은 지나친 편애 때문이라는 사실을 상담을 통해 확인한 적도 있었다.
영안실에 조문을 갔을 때 부친 혹은 모친의 영정 앞에서 자녀들이 고성을 지르고, 심지어 칼부림까지 불사하는 이유는 거의가 비교당하지 않는 수준에서 균등하게 유산을 차지하겠다는 데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일까?
인간은 상호 비교당하기를 원치 않으면서 안 좋은 일에는 농산물을 거리낌 없이 인용하곤 한다.
최근 들어 금값이 4배 이상 올랐다는 기사는 호기심 정도에서 끝나지만 추석 명절에 태풍이나 이상 기온으로 사과·배 등 제사상에 오르는 농작물 가격이 오르면 물가 인상의 주범으로 낙인찍힌다.
올해는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려 전국적으로 고추 농사가 흉작이니 김장철에 얼마나 물가 인상 요인으로 매스컴의 방망이를 맞을지 벌써부터 안쓰럽다.
요즘 방송과 인터넷엔 이해할 수 없는 신조어들이 심심찮게 등장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곤 한다.
‘개똥녀’란 대중교통인 전철에 애완견을 안고 탄 젊은 여성이 강아지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고 내린 것을 비판하는 뜻임을 TV를 통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된장녀’는 쉽게 이해가 안 갔다.
내가 어린 시절, 벌에 쏘이거나 모기에 물릴 때마다 할머니는 된장을 발라주셨기에 그 방향으로 상상을 해봤지만 생뚱맞게도 ‘사치품으로 온 몸을 치장한 여인’을 뜻한다고 한다.
외국 배우처럼 외모를 화려하게 꾸며봤댔자 집에 가면 된장찌개나 먹는 서민이 아니냐는 비하의 의미일 것이다.
한 때는 ‘시집 못 간 노처녀가 가장 좋아하는 채소는?’무엇이냐는 퀴즈에 ‘왕고추’라고 대답하더니 최근엔 경제적인 능력이 없어 싸구려 식당만 찾아다니는 남자를‘고추장남’이라고 한단다.
인천 사람을 ‘짠물’, 지나치게 절약하는 구두쇠를 ‘왕소금’이라고 칭하는 말은 과히 귀에 거슬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설렁탕에 없어선 안 될 ‘깍두기’를 조폭의 대명사로 부르고, 인물이 잘나지 못해 그렇지 않아도 늘 열등감과 주눅이 든 여자에게 거침없이 ‘호박 같은 여자’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듣기조차 민망하다.
만 원 권 화폐를 ‘배추 한 장’이라고 칭하는 것은 애교로 봐줄 수 있지만 머리카락이 단정치 못하게 헝클어져 있거나 정상인과 다르게 곱슬머리를‘배추머리’라고 웃어대는 것도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자신의 곱슬머리를 늘 가슴아파하고 얼마나 민감하게 관심을 가졌던지 ‘머리칼엔 한 쪽으로 결이 있다’며 그림까지 그리며 설명해 주던 사춘기 소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농업인의 땀이 배어있고, 우리가 세계 최고의 발효식품으로 자부하고 있는 전통 음식을 보잘 것 없거나 안 좋은 일, 혹은 신체 비하에 더 이상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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